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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구 가는 길 / 박 상 진

유세영 기자 | 기사입력 2024/02/21 [18:27]

양구 가는 길 / 박 상 진

유세영 기자 | 입력 : 2024/02/21 [18:27]

양구 가는 길

 

박 상 진

 

  

  봄을 재촉하는 작달비 그쳐 돋을볕 눈부신 새벽 

  춘천에서 양구로 향하는 길, 요즘 보기 드물게 찻길 저 멀리 연통에서 모락모락 연기가 피어오르는 오래된 휴게소 하나를 발견했다.  호기심에 이끌려 들어간 휴게소에서 장작을 때는 낡고 녹슨 난로와 이른 시간임에도 가게 정리에 분주하신, 사람 좋게 생기신 초로의 아주머니 한 분이 반갑게 맞아주신다.  춘천에서 양구 가는 길에 마지막 남은 휴게소, 그마저도 찾는 손님이 드물어 문 닫을 날만 기다리고 계신다며 낯선 손님의 등장에 반색으로 맞아 주시면서도 숨길 수 없는 허한 웃음을 지어 보이신다.  귀한 첫 손님이라는데 야박하게 둘러만 보고 나올 수가 없어 뭐라도 하나 팔아드려야 되겠다 싶어 이리저리 둘러보다가 구석진 진열대에서 뽀얗게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는 오래된 테이프들을 발견했다.  나 아니면 누가 요즘 이런 테이프를 팔아드릴까, 까닭모를 사명감이 발동하여 진열대를 찬찬히 살펴보았다. 뽕짝 메들리, 민요디스코, 디스코 천국, 신나는 관광버스 등 구닥다리 휴게소에 어울릴법한 트로트 일속 중에서 딱 하나 남아 있는 발라드 테이프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테이프 1집의 빛바랜 표지를 장식하고 있는 첫 번째 곡은 김광석의 <이등병의 편지>, 군부대가 많은 전방 지역에서 얼추 구색에 맞는 노래를 고른 셈이다.  이른 시간 난데없이 등장하여 가게 구석에서 먼지를 털어가며 열심히 테이프를 고르고 있는 내가 짠해 보였는지 아주머니께서 물으신다.

 "처음 보는 아저씨인데, 이 동네 분이 아니신가봐요?"

 

  멀리 서울에서 왔다는 낯선 과객의 등장에 반가워하시는 아주머니와 이런저런 세상사는 이야기를 나누고 문 밖을 나서려니 발걸음이 쉬이 떨어지지 않는다.아주머니의 말씀처럼 어쩌면 곧 문을 닫게 될, 그래서 다시는 못 보게 될지도 모를 낡고 오래된 휴게소와 그 휴게소에서 해질녘 노을빛처럼 곱게 저물어 가시는 아주머니에게 싸구려 호기심으로 들렀다 서둘러 나가는 도회의 낯선 객이 차가운 등을 보인다는 것이 못내 마음 무겁다. 

  하나의 시대와 작별하는 일이요, 왠지 염치없고 눈물 나는 일 같아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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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 상 진 

   [ 약 력 ]

   - 예술시대작가회 회원, 한국예총 회원

   - 서울시교육청 명예교사, 국민건강보험공단 자문위원, 한국중장년고용협

     회 직무전문면접관, MBC-TV 리포터, 시사만평 작가, 캘리그라퍼 등

   [ 수 상 ] 

   - 한국예술가총연합회 예술세계 수필 부문 신인상

   - 한국문학예술 작사 부문 신인상

   - 국가보훈부 전국문예공모전, 동대문문화원 문예공모전, 사충신호국기념

     사업회 전국문학상, 제1회 계간 우리글 짧은 시 문학상 등

   [ 저 서 ] 

   - [태양의 깃털] 공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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