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고

벚꽃 일기 / 이한명

유세영 기자 | 기사입력 2024/04/15 [19:32]

벚꽃 일기 / 이한명

유세영 기자 | 입력 : 2024/04/15 [19:32]

벚꽃 일기

 

이한명

 

 

  내 봄날에도 한 번쯤 팝콘 터지듯 그런 날 있겠지.

 

  신간 시집을 택배로 부치고 

  돌아오던 길은

 

  벚꽃이 

  하천을 따라 난 둑을 넘어, 벌써 

  정서진에 들어서고 있다.

 

  코로나 팬데믹이 돌려놓은 사회 구석구석의 생활 방식은 우리를 위기감에 빠뜨렸지만,

  새봄은 또다시 파도를 타듯 군항제를 들썩이더니, 어느 날은 육십령 재를 넘어온 상춘객들을 취하게 하고 끝내 도회지로 들어와 외로이 가로등 옆을 기댔지.

 

  ‘꽃 피는 봄이 오면 꽃놀이 한번 가자’ 하던 

  그 사람은 어디로 가고 

  생살 찢듯 피워 올린 눈물의 꽃 

  이렇게 쓸쓸히 바닥을 뒹구는데, 

  그 사람은 없고 꽃가지만 늘어지는데,

 

  지난해에도 그 지난해에도 앨범을 장식한 사진 중에 더욱 유심히 바라보게 하는, 

  꽃들.

  그 봄에는

  참 많이 고우셨었구나.

 

  우리 부모님은 개복숭아꽃은 알아도 벚꽃은 한 번도 못 보고 돌아가셨다.

  이렇게 지천으로 내린 하얀 꽃들도 어떤 이에겐 슬픔일 수 있듯이

  봄이 봄은 아니듯

  꽃이 꽃은 아니듯.

 

  //내 어머니가 그러했듯

  ​저 먼 별 아득한 벼랑에 걸어 둔

  슬픔은 씻고 

  연어의 삶같이 거슬러 오시라

 

  삼짇날 모태의 흙이 부드러우니

  지친 덕장의 겨울은

  그로 인해 다시 태어날 것이다

 

  샹데리아 불빛너머 웅크린 

  요양원 근처

  세상밖으로 떠나간 어머니의 동그란 휠체어 바퀴는 

  봄 악장의 도돌이표처럼 잘도 돌아오는데

 

  ​갈참나무 아래 묻어둔 도토리의 꿈은

  해설피 피었는지

  파스텔톤 따스한 봄 빛

  첫 차를 타고 떠난 섬진강 바람에 분주하다//

     <다시 쓰는 봄>, 시집 『그 집 앞』 중에서

 

  그래, 이왕 세상에 얼굴을 내밀었으니

  한번 멋지게 웃어보자.

  보는 이들 가슴마다 축포를 터뜨리듯 펑펑 꽃을 피워 보자.

  그리하여,

  싸늘한 도회지 가로등 밑을 따뜻한 빛으로 채워 보자.

 

  벚꽃은 저마다 횃불을 높이 들고 희망과 꿈이 있던 그 시절의 성화 봉송 길을 달린다.

  낙동강 하굿둑에서 시작하여 정서진 아라뱃길에 그 완주의 깃발을 꽂은 633km 종주길.

  저 벚꽃 행렬.

 

  돌아올 길이 참 멀구나.

  꽃가지 사이로 난, 봄 길이

 

  먼 훗날 다시 쓸

  오늘의 봄, 길.

 

 

 

 

 

본문이미지

▲이한명

‘1993년 동인시집 『통화중』, 경향신문, 국방일보등에 시를 발표하면서 작품활동  

’<문학광장> 신인상 수상 시부문 등단 

‘강원일보 DMZ문학상, 경북일보 객주문학대전, 영남일보 독도문예대전 등 공모전 수상, 보령해변시인학교 전국문학공모전 대상 수상  

’2015 대한민국 보국훈장 수훈

’현재 격월간 문예지 <문학광장> 편집위원으로 활동중이며 

‘시집으로 『 카멜레온의 시』 , 『그 집 앞』이 있다.

 

  • 도배방지 이미지

광고
광고
광고
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