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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루라기 / 이덕대

유세영 기자 | 기사입력 2024/04/03 [10:49]

호루라기 / 이덕대

유세영 기자 | 입력 : 2024/04/03 [10:49]

호루라기

 

이덕대

 

 

 예전에는 겨울이 깊어 밤이 길어지면 골목길을 지나는 동네 야경꾼의 딱따기 소리가 잠든 마을을 지켰다. 마치 무슨 나무 방망이가 부딪치는 소리나 둔탁한 타악기 소리 같기도 한 야경꾼의 딱따기 소리는 이른 새벽에도 골목길에서 두런두런 말소리와 같이 들려왔었다. 제사라도 모시는 집은 대부분 그들을 불러 음식을 나누었다.

 한국전쟁이 끝난 이후 어려웠던 시절, 도둑이 많아서였을까. 아니면 불안한 사회질서를 이용한 일종의 정치적 통치술이었을까. 아마 두 가지가 혼재되어 있었을 듯도 싶다. 호루라기든 딱따기 소리든 잠을 이루는데 무섭기는 마찬가지였다.

 동네 청년들은 나무를 다듬어 만든 딱따기를 하나씩 들고 밤 10시가 넘으면 골목길은 물론 고샅길까지 돌면서 “야경이요” 하고 소리쳤다. 이들은 어지러운 발자국 소리와 함께 날카로운 기계음 호루라기를 불기도 했다.

 그 시절에는 호루라기가 귀했다. 금속으로 만든 호루라기는 운동회 때 달리기 출발 신호나 아이들의 행진 동작을 맞추기 위해 선생님들이나 가지고 있는 신기한 물건이었다. 70년대 들어 플라스틱으로 만든 호루라기가 대량으로 만들어지기 전에는 소풍이나 운동회 때 산 조악한 양철 호루라기도 애지중지하면서 아이들 앞에서 뽐내며 불고 다녔다.

 

 이제는 거의 사라진 호루라기 소리지만 지금도 호루라기 소리는 사람을 흥분시키기도 하고 진정시키기도 하는 묘한 면이 있다. 축구심판의 호루라기가 그렇다. 신작로를 따라 등굣길이나 하굣길을 걸을 때도 누군가 호루라기를 불면 저절로 발이 맞추어지고 대오가 정렬되었다. 호루라기 소리는 경고 소리이자 경계의 소리로 인식되고 사용되었기 때문일 게다.

 도둑도 쫓고 화재예방도 하면서 딱따기를 딱딱거리고 호루라기를 불며 마을 고샅길을 돌던 청년들의 야경 소리가 아련하다. 동네에 잔치가 있거나 제사라도 든 날은 야경꾼들의 목소리가 더욱 호기 있고 우렁찼다. 호루라기 소리로 음식을 얻기도 했다.

 정권 유지와 권세를 잡기 위한 모략과 암투가 횡행하는 세상에는 진정으로 나라를 위한 용기 있는 호루라기가 필요하다. 호루라기 분 사람에게 왜 쓸데없이 호루라기를 부냐고 혼내는 사회는 자유와 민주가 죽은 국가다.

 호루라기 소리는 세상의 혼탁함을 정리하는 소리고 악으로부터 삶을 구하는 정의로운 소리다. 호루라기를 부는 사람은 한 조직의 구성원이 내부에서 저질러지는 부정과 비리를 외부에 알림으로써, 공공의 안전과 권익을 지키고 국민의 알 권리를 보호하는 사람이다. 깨어있는 사람이고 깨어나야 한다고 부르짖는 사람이다. 

 금수강산이 꽃대궐이다. 국민의 심부름꾼을 다시 뽑는다. 그들이 꿈꾸는 나라가 호루라기를 불 필요가 없는 나라이길 소망한다. 설령 그런 나라를 만들 자신이 없으면 호루라기 부는 사람을 제대로 보호라도 했으면 싶다.

 아직은 호루라기가 있어야 하는 나라 같아 안타깝다. 세상이 어지러울 때 야경꾼과 호루라기 부는 사람을 어떻게 대접해야 하는지 진정으로 생각해 보아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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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덕대

공군사관학교 졸업 및 공군대령 예편

경남일보 칼럼니스트(2018~현재)

김포문학상 수필부문 신인상(2017)

한국수필 신인상(2021)

한국수필 올해의 좋은 수필 10

  [감나무 가지에 걸린 달빛으로 자라기선정(2023)

한국수필가 협회 및 김포문협 회원

에세이집 [감나무 가지에 걸린 달빛으로 자라기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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