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그리워하고 있었던 내 이름이 휘어지는 모양 공기에 굴려질 때의 소리 고운 온도와 스며드는 순간을 아득하게 기다리긴 했지만
나누고 싶지 않은 내 것 중에 이름보다 아끼던 것 없었고 긴 기다림의 매듭을 아무에게나 쥐여줄 수 없었지만
내 이름에 소망을 달아주다니요 이토록 좋은 날까지 주다니요
진창일수록
사람이 사람에게 손을 대는 일은 참 쉽게 동서남북 아쉽지 않게 솟구치건만 마음 하나 가져다 대고 싶은 마음은 나침반을 놓아도 쉬이 찾지 못하네
오염된 줄 알면서도 담근 발을 가만히 그림자에 그림자를 숨기며 조용히 눈은 울면서 복종은 성급히
사람으로 태어나 마음 댈 곳 하나 있다면 볕 없이도 시들지 않겠네
입김 너머의 빛을 따라 걸으리
겨울이 큰 보폭으로 올 때쯤이면 입김에 떠밀리는 불빛들 어김없이 저만치 물러났기에 뭉개지는 신호에 불확신을 품고서 앞으로 가야 할지 말아야 할지
사람들을 흉내 내곤 싶지 않아 찬 숨을 참고 참다 집으로 뒷걸음질을
며칠 전 뿜어진 첫 입김 너머에 나긋한 당신의 눈빛 불긋한 포천의 불빛 눈으로 만져지던 광폭의 작품 한 점
직진할수록 따라오는 낭만에 발자국은 선명해져만 가네
붉은 사람이 보내는 신호
비좁은 검은색 상자 안에 멀뚱히 서 있는 붉은 사람 비를 저리 맞으면서도 꿈쩍 않는데
표정은 빼앗겼는지 지웠는지
뼈도 없고 살도 없고 혈관만 남아 있는 저를 이루고 있던 것들을 찾지 못하는 붉은 사람 마음 조금 얻게 된다면 울기라도 할 텐데
다시 꽃밭
움칠거리는 마른 꽃가지들을 보며 조만간 저들의 세상이겠구나 싶다가 담배 한 개비 태우고 나니 목이 마른 내가 보였다
식은땀에 젖어 하루를 맞이하면 깊은 속까지 말라서일까 머리도 손도 미끄럽지 못하고 눈에서는 흘렀으면 싶은 게 흐르지 않는다
댐의 수문이 열렸을 때처럼, 그렇게 죽은 잎들을 토해낸다면 어여쁜 꽃이 새로 피어날 것만 같다
▲차소영 2021 시사문단 신인상 당선 2022 한국문학예술 신인상 당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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