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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외 4편 / 차소영

유세영 기자 | 기사입력 2024/02/07 [23:00]

이름 외 4편 / 차소영

유세영 기자 | 입력 : 2024/02/07 [23:00]

이름

 

 

그리워하고 있었던

내 이름이 휘어지는 모양

공기에 굴려질 때의 소리

고운 온도와 스며드는 순간을

아득하게 기다리긴 했지만

 

나누고 싶지 않은 내 것 중에

이름보다 아끼던 것 없었고

긴 기다림의 매듭을

아무에게나 쥐여줄 수 없었지만

 

내 이름에 소망을 달아주다니요

이토록 좋은 날까지 주다니요

 

 

 

 

 

 

진창일수록

 

 

사람이 사람에게 손을 대는 일은

참 쉽게

동서남북 아쉽지 않게 솟구치건만

마음 하나 가져다 대고 싶은 마음은

나침반을 놓아도 쉬이 찾지 못하네

 

오염된 줄 알면서도 담근 발을 가만히

그림자에 그림자를 숨기며 조용히

눈은 울면서 복종은 성급히

 

사람으로 태어나 마음 댈 곳 하나 있다면

볕 없이도 시들지 않겠네

 

 

 

 

 

 

 

입김 너머의 빛을 따라 걸으리

 

 

겨울이 큰 보폭으로 올 때쯤이면

입김에 떠밀리는 불빛들

어김없이 저만치 물러났기에

뭉개지는 신호에 불확신을 품고서

앞으로 가야 할지 말아야 할지

 

사람들을 흉내 내곤 싶지 않아

찬 숨을 참고 참다

집으로 뒷걸음질을

 

며칠 전 뿜어진 첫 입김 너머에

나긋한 당신의 눈빛

불긋한 포천의 불빛

눈으로 만져지던 광폭의 작품 한 점

 

직진할수록 따라오는 낭만에

발자국은 선명해져만 가네

 

 

 

 

 

 

붉은 사람이 보내는 신호

 

 

비좁은 검은색 상자 안에

멀뚱히 서 있는 붉은 사람

비를 저리 맞으면서도

꿈쩍 않는데

 

표정은 빼앗겼는지

지웠는지

 

뼈도 없고 살도 없고

혈관만 남아 있는

저를 이루고 있던 것들을

찾지 못하는 붉은 사람

마음 조금 얻게 된다면

울기라도 할 텐데

 

 

 

 

 

 

다시 꽃밭 

 

 

움칠거리는 마른 꽃가지들을 보며

조만간 저들의 세상이겠구나 싶다가

담배 한 개비 태우고 나니

목이 마른 내가 보였다

 

식은땀에 젖어 하루를 맞이하면

깊은 속까지 말라서일까

머리도 손도 미끄럽지 못하고

눈에서는 흘렀으면 싶은 게 흐르지 않는다

 

댐의 수문이 열렸을 때처럼, 그렇게

죽은 잎들을 토해낸다면

어여쁜 꽃이 새로 피어날 것만 같다

 

 

 

 

 

 

▲차소영

2021 시사문단 신인상 당선

2022 한국문학예술 신인상 당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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