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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예보 / 정이흔

유세영 기자 | 기사입력 2024/01/17 [20:02]

일기예보 / 정이흔

유세영 기자 | 입력 : 2024/01/17 [20:02]

일기예보 / 정이흔

  

 

잠에서 눈 뜨면 거실로 나가 팬트리 안 어딘가에 걸어 두었던 해를 꺼내서 창밖에 멀리 보이는 산등성이에 걸고,

구름도 꺼내서 해 옆에 펼쳐 놓는다

 

어느 날은 붉고 작은 해를 꺼내고 아침부터 새하얀 구름을 걸지만, 

오늘은 흐릿한 해를 꺼내고 짙고 어두운 회색빛 구름으로 골라야 한다

그래서 전날 일기예보를 미리 확인해야 한다

 

회색빛 구름을 고르는 날은 혹시라도 비(雨)가 필요할지도 모르니 비도 팬트리 문 가까운 앞으로 진열해야 한다

 

해와 구름은 태엽을 끝까지 감아야 한다

그래야 하루를 이상 없이 운행할 수 있다

 

해와 구름을 늘어놓으면 그제야 비로소 아침이 시작된다

하늘에 걸린 해는 스스로 운행을 시작한다

나의 아침도 시작된다

 

햇빛이 내려앉는 저 건너 밭에는 

멀리서 보아도 새파란 이름 모를 잎들이 고개를 쳐든다

이제 그들의 아침도 시작인 모양이다

 

조용하던 도로 위에도 서서히 차량이 몰려들고 

제각기 바쁘게 갈 곳 찾아 움직이면 회색빛 도시의 아침도 시작된다 

 

내가 흩어서 걸어 놓은 회색빛 구름 사이로 어디선가 나타난 비행기가 줄을 긋는다

구름도 점점 회색을 잃어가고 있다

어쩌면 해를 다시 바꿔서 걸어야 할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되면, 준비했던 비는 필요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일기예보가 또 틀린 것 같다

 

매번 하는 짓이 그렇다

 

 

 

 

 

▲정이흔

제21회 시인투데이 시부문 작품상 수상

짧은 소설 모음 <초여름의 기억> 출간

단편소설집 <섬>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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