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고

내 안의 이치 / 이 현 지

유세영 기자 | 기사입력 2021/06/21 [02:03]

내 안의 이치 / 이 현 지

유세영 기자 | 입력 : 2021/06/21 [02:03]

내 안의 이치 / 이 현 지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다재다능한 사람이다. 

그는 그림을 잘 그릴 뿐만 아니라 회화, 철학, 시, 작곡, 조각에서 뛰어났다. 

문학은 물론이고 이과 쪽에서도 그 재능을 보였는데, 수학, 물리학이 있다. 

다빈치는 당시에 금기되었던 해부학에서도 능했다. 

신이 곧 세상의 중심이었던 중세시대는 인간의 몸을 연구하는 것이 

신의 권능을 엿 보는 것과 같은 행위로 취급을 받았기 때문이다. 

만약 그가 조금 더 나중인 르네상스에 있었다면 해부학에서 엄청난 발전을 이뤘을지도 모른다.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그의 모든 재능을 다 꽃 피우지 못 했던 건 시대의 척도에 맞지 않았기 때문이다. 

중세는 신의 척도에 맞춰 세상이 움직였다. 

 하지만 그 다음에 온 르네상스는 척도 도구가 인간으로 바뀌었다. 

척도란 만물을 비교하는 시각이다. 신의 척도는 인간은 신의 피조물일 뿐이다. 

그것이 인간으로 바뀌었다는 의미는 인간 생명 또한 더 소중해 졌다는 것이다. 

현대의 척도는 르네상스 때와는 조금 다르다. 

 21세기의 척도는 대학이다. 

대학을 나와야 직업을 얻고 돈도 벌어서 내가 하고 싶은 것들을 할 수 있다. 

만약 나오지 못하면 할 수 있는 것들의 폭은 좁아질 것이다. 

척도 도구는 하나 일 수가 없다. 사회의 척도에 따라 척도 도구는 제각각이다. 

나 같은 학생들은 시험 점수와 그 외의 진학에 도움이 되는 것들이 척도 도구다. 

사회가 요구하는 척도에 맞춰 살아가기 위한 수단인 셈이다. 

 척도는 우리가 맞게 살아기기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개개인의 삶에 적용할 수도 있다. 

우리가 평소에 느끼는 감정, 기쁘거나 슬프거나 행복하거나 화내는 것들의 척도 또한 잴 수 있다. 

그 기준에 따라서 나는 불행하게 살 수도, 행복한 삶을 살 수도 있다. 

그건 자기 자신이 만들어 가는 기준이다. 

자기가 만든 발전 지향적인 척도를 가지고 사회를 살아간다면 

우리는 하고 싶은 대로, 원하는 바로 세상을 살 수 있을 것이다.   

 

2021년 6월 19일

 

 

이현지

서울 상봉중학교3학년

 

 

 

 

  • 도배방지 이미지

광고
글자람터 많이 본 기사
광고
광고
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