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렴
김서하
전라북도 전주에 다녀올 때마다 늦은 아침 식사를 해결하기 위해 콩나물 해장국집을 들를 때가 있다. 콩나물국밥은 깍두기, 오징어젓갈, 무장아찌, 세 가지의 조촐한 반찬으로 간단한 한 상이 차려지는데 바쁜 시간과 칼칼한 목을 풀어주기에 안성맞춤인 음식이다. 콩나물과 청양고추 약간의 다진 오징어와 파 마늘 등의 기본양념 외에 별다른 내용물이 들어있지 않은 말 그대로 콩나물국에 밥을 말아 내놓는 간편한 음식으로. 종업원들이 주문한 음식을 가져오면 손님은 특이하게도 대부분 콩나물국밥에 구운 김 반 봉지를 뜯어 찢어 넣고 잘 섞어서 먹는다. 맛소금과 기름을 발라 구운 김이 담백한 콩나물국밥에 들어가면 텁텁한 맛이 날 것 같다는 생각은 선입견이다. 깔끔한 콩나물국밥과 구운 김이 만들어 내는 의외의 조합에 고개를 갸웃거리며 한 그릇을 다 비우곤 한다.
콩나물국밥을 주문하고 난 뒤, 토렴하는 주인을 가만히 바라볼 때가 있다. 주문과 동시에 미리 뚝배기에 담아 두었던 흰밥을 채망에 담아 펄펄 끓는 국솥에 넣었다 꺼내며 뜨거운 국물과 대여섯 번 정도 섞고 쏟아내기를 반복하면서 흔들었다 꺼내고 다시 넣었다 꺼내는 동안 밥알은 적당한 온기를 품는다. 이러한 토렴은 시간에 쫓기는 손님들이 뜨거운 국물에 입안이나 입술이 화상을 입지 않게 배려함과 동시에 미리 담아 둔 밥이 퍼져 밥알에 국물이 잘 배어들어 감칠맛이 나게 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흔들었다 꺼내기를 여러 번 반복하는 동안 차갑게 식은 밥알은 온기를 품게 되고 국물도 떠먹기 좋은 따끈한 온도가 된다. 그 행동을 볼 때마다 손님이 먹기 쉬운 적정온도를 찾기 위해 주인이 겪었을 시행착오가 떠올라 고마운 마음으로 뚝배기의 바닥이 드러나도록 국물 한 방울도 남기지 않는다.
남녀가 만나 혼인 서약을 하며 시작되는 부부생활, 펄펄 끓는 사랑으로 맺어진 관계라도 다툼은 있다. 서로 자라 온 환경이 다르다는 것으로 자주 부딪히게 되는 신혼 시절, 남편과 치열한 감정 대립으로 서로의 마음을 다치게 한 적이 많았다. 가족을 위해 수고하는 남편에게 따뜻한 응원의 말 대신 불만 가득한 냉정한 독설을 던지곤 했다. 한동안 결혼생활의 적정온도를 찾기 위해 남편과 나는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어가며 너무 끓어오르거나 차갑게 얼어버리기를 반복했다. 빙점과 온점을 오르내리며 꽤 많은 시간이 흐르고 난 후에야 여름에도 따뜻한 커피를 마시는 남편과 한겨울에도 아이스아메리카노를 마시는 나는 마침내 서로의 취향을 존중하게 되었다.
사소한 다툼으로 이혼까지 고려하며 상담실을 찾는 부부들이 간혹 있다. 내담자들의 들끓는 심정을 식혀주기 위해 내가 겪었던 신혼의 에피소드를 이야기해주며 부부가 서로 마음을 다치지 않고 살려면 곳곳에 도사리고 있는 불같은 감정을 서로 식혀주고, 식혀가며 살아가야 한다는 조언을 해준다.
따뜻해서 술술 넘어가는 국밥처럼 처음부터 수월한 관계도 있겠지만 모든 관계는 이해와 오해를 주고받으며 관계를 개선해 나가려는 무던한 노력 없이는 편안해지지 않는다. 오늘의 날 선 감정을 그대로 끌고 간다면 좌충우돌은 늘 문 앞을 서성이며 호시탐탐 불안한 관계를 파고들 것이다. 사소한 오해가 주워 담을 수 없는 쏟아진 물이 되기 전에 뜨거운 이해와 냉정한 오해를 적절하게 토렴한다면 불신으로 가득 찬 냉랭한 관계도 다정한 사이로 변화될 것이다.
▲ 김서하 건국대 문학치료학과 박사과정 수료 2012 평화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제14회 산림문학상 대상 수상 시집《나무의 세 시 방향》,《가깝고 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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