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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화 향기를 기다리며 / 이덕대

유세영 기자 | 기사입력 2024/01/25 [10:15]

매화 향기를 기다리며 / 이덕대

유세영 기자 | 입력 : 2024/01/25 [10:15]

매화 향기를 기다리며

이덕대

 

 

 도심의 공해 속에서도 꽃향기는 마음을 편안하게 한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계절의 변화와 해의 길이는 인간의 의식에 선악과 고통의 크기로 작용했다. 겨울은 암흑이고 절망이었다. 반면 봄은 빛이자 희망이고 새로운 생명의 탄생을 의미했다. 그 중에서도 봄꽃, 추운 겨울을 이겨내고 이른 봄에 피어나는 꽃들은 특별한 사랑을 받았다. 

 옛 선비들은 겨울 눈 속에서 피는 매화를 즐겼다. 매란국죽 중에서 매화를 제일로 쳤던 것도 엄혹한 시간을 이겨낸 선비의 절개 같은 고고함을 사랑했음이다.

 

 차가운 삭풍이 헐벗은 가지 끝을 쉼 없이 두드려도 계절의 변화와 땅의 기운이 바뀜을 느끼며 매화는 꽃망울을 터트린다. 지조 있는 선비들은 이런 매화를 꽃으로 보기보다 자신의 신념이나 정치적 동반자로까지 생각했다.

 우리나라의 유명한 매화로는 강릉 오죽헌의 홍매화인 율곡매(栗谷梅), 안동의 도산매(陶山梅) 등이 있고, 매화가 소문난 산청에는 이름하여 산청 삼매(山淸 三梅)가 있다.

 고려말기 문신인 원정공 하즙(元正公 河輯)이 심었다는 원정매(元正梅), 정당문학 벼슬에 오른 이가 심었다고 해서 정당매(政堂梅)와 영남학파의 거두였던 남명 조식선생이 심었다는 남명매(南冥梅)가 그것이다. 연전 포슬눈이 겨울을 막 밀어내듯 내리는 날 마침 문수암이라는 작은 암자를 찾아 가던 길에 운 좋게도 산청 삼매 향을 맡는 호사를 누린 적이 있다.

 

 서양에서는 추운 겨울을 이겨내고 봄이 오면 맨 먼저 피는 꽃을 아몬드 꽃이라고 생각한다. 아몬드는 프랑스어다. 고독과 절망 속에서 살다 프랑스에서 생을 마감한 후기 인상파 화가 빈센트 반 고흐가 사랑하는 동생 테오 아들에게 준 마지막 꽃 그림이 프로방스 지방의 겨울을 딛고 피는 ‘꽃피는 아몬드 나무’ 그림이었다.

 추운 겨울을 견뎌내고 이른 봄에 꽃망울을 터트리는 봄꽃은 생명이자 환희다. 프로방스 아를에서 절망적인 삶을 이어가며 암울하고 힘든 시간 속에서도 태어난 조카로부터 새 생명과 희망을 느꼈음이었을까.

 그는 아를에 머물면서 많은 꽃나무 그림을 그렸지만 그처럼 밝은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분홍색과 흰색의 아몬드 꽃을 그린 것은 처음이었다. 고통이 붓을 잡게 했지만 희구하는 것은 평안이었을 것이다.

 

 겨울이 이대로 가나했더니 다시 동장군이 맹위를 떨치고 세계 곳곳에서 일어난 분쟁의 고통은 너무 힘들고 길다. 그래도 곧 입춘이니 남녘 바닷가에는 살바람 속에서도 양지뜸 고샅길은 물론이고 논틀밭틀 매화 떨켜가 분분히 부풀겠다.

 청정하고 고결한 매화향이든 꽃말이 희망인 아몬드 꽃이든 오는 봄날에는 활짝 피어 온 세상의 악취를 씻어주길 염원한다. 종교와 이념은 참으로 무자비하고 전쟁의 아픔은 쉬이 사라지지 않는다.

 

 

 

 

▶이덕대

공군사관학교 졸업 및 공군대령 예편

경남일보 칼럼니스트(2018~현재)

김포문학상 수필부문 신인상(2017)

한국수필 신인상(2021)

한국수필 올해의 좋은 수필 10

  [감나무 가지에 걸린 달빛으로 자라기선정(2023)

한국수필가 협회 및 김포문협 회원

에세이집 [감나무 가지에 걸린 달빛으로 자라기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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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간승리 2024/02/01 [09:42] 수정 | 삭제
  • 매화가 제일 먼저 오는 경남진주에 살고 있는데...금년은 유난히 매화 가 기다려집니다 ~^^
  • 하늘닭 2024/01/26 [12:33] 수정 | 삭제
  • 입춘도 아직 열흘 여 남았는데 이 공간에는 벌써 겨울을 밀어내는 매화향이 온 방안에 가득 스며드는 듯~ 향기로운 글 즐감했슴다. 브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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