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비 / 정이흔
비가 내린다 계절 잊은 비가 내린다
계절 잊고 버티던 애꿎은 플라타너스 잎을 아무 생각 없이 그냥 흩어 흘려보낸다
아무리 손사래 치며 버텨봐야 눈 하나 꿈쩍 않는다
겨울비가 내린다
한여름 나무를 장식했던 두 손으로 하수구 입을 틀어막으며 버텨 봐야 소용이 없다 어차피 끝난 생이다
겨울비는 그저 갈 길을 거들었을 뿐이다 결코 겨울비가 보낸 것은 아니다
겨울비에게 잎을 팔아먹은 손은 플라타너스 나무다 자기에게 양분 주던 잎마저 쓸모를 다하니 떨구었을 뿐이다
그저 겨울을 날 생각뿐이다 잎이야 어떻게 되든 말든 나무만 살면 그만이다
그것 참 이기적인 나무다
단지 자기가 살기 위해 겨울비와 야합한 치졸한 나무일뿐이다
▲정이흔 한국미술협회 정회원 제21회 시인투데이 작품상 시부문 수상 <저작권자 ⓒ 시인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댓글
|
많이 본 기사
오늘, 시 많이 본 기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