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파에 부서지고 상처받은 영혼이 파고드는 곳 빗장이 없는 초록 대문 떠나기도 다시 시작하기도 하는 둥지
▲김승은 시인 한국사진문학협회 정회원 계간 <한국사진문학> 제8회 신인문학상 법보신문 신행수기 대상수상 농업기술자협회 서울연합 사무처장
[감상] 아주 어린 시절의 우리 집 대문은 사립문이었다. 그때는 꽤 부농이었기 때문에 사립문이 컸고 마당이 넓어 낟가리를 몇 개씩 쌓아도 맘껏 뛰어놀 수 있는 공간이 있었다. 어렸기 때문에 더 넓게 생각되었는지는 모르지만. 새마을운동이 시작되고 지붕이 슬레이트로 바뀌고 집안에 펌프가 생기고, 대문은 여닫이 양철 대문으로 바뀌어 가운데 빗장을 지를 수 있게 되었지만 쪽문 하나는 늘 열려 있었다. 삼대가 사는 집이라 식구가 늘 열 명 안팎이었고 집을 떠나 있는 누군가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듯 자식이 집을 떠나면 부모는 대문을 닫지 못하고 언제까지나 기다린다.
김승은 시인의 ‘어미품’에서는 얼마나 오래 열어 두고 기다렸기에 푸른 이끼가 앉았을까. 빈 조개껍데기가 활짝 열어 놓고 자식을 기다리는 빗장 없는 초록 대문이라니 참 예리한 시선이다. 풍파에 부서지고 상처받은 영혼이 파고드는 곳, 힘들수록 더욱 그리워지고 찾아가고 싶은 고향의 어미품이다. 저 초록 대문으로 “엄마” 하며 들어서는 자식을 반갑게 맞이하는 머리 허연 어머니들을 상상해 본다. 빈 조개껍데기를 어미품과 열어 놓은 대문으로 환치시킨 시인의 시선이 참으로 따스해, 보는 이의 마음도 따스함으로 잘박하게 적셔지는 고운 작품이다. (양향숙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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