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룡완 헤어샵
예시원
혜수가 일하던 미용실은, 역전 밑으로 쭈욱 내려오면 아리랑호텔이라는 호텔도 아닌, 그렇다고 모텔도 아닌 애매한 숙박업소를 낀 사거리 한쪽 귀퉁이에 자리 잡고 있었다. 동네가 낮 시간 오전에는 손님이 한산했고, 오후가 돼야 이 업소 저 업소에 다니는 아가씨들이 슬금슬금 모여, 수다를 떨고 머리도 하는 미용실도 동네 사랑방도 아닌, 애매한 공공의 장소가 된 지 오래된 그런 곳이었다. 가게가 그렇다 보니 M시에서 이렇다 하는 놈팽이들과 이름만 대면 뚜르르 알려진 돈쟁이들이, 시도 때도 없이 업소 여자들의 입방정으로 도마 위에 올려졌다 내려졌다 토막 쳤다 붙여졌다 했다. “야 이 가시나야 어제 그 머스마 그거 누고? 그 남자 딱 내 스타일이던데 내 좀 빌리 주머 안 되나?” 혜수는 두 시간째 씹던 껌을 뱉을 생각도 없이 다시 오물거리며, 미시단란주점에서 일하는 정애에게 은근히 남자 소개를 강요해댄다. “아이고 언니, 그 머시마는 안 된다. 그 머시마가 얼매나 못됐는지 아나? 완전히 개 날라리 백수에다 바람쟁이다.” 정애는 삼류 나이트클럽에서 춤출 때 헤드뱅잉(head banging)하듯, 미친 말처럼 머리를 푸더덕거리며 만류를 해댄다. “아이고 가시나야, 안 그래도 니 머리는 파마를 자주 해서 머릿결도 안 좋은데, 고마 좀 흔들어라 가시나야. 그건 그렇고 그 머스마가 어데가 어때서 그라노? 내가 보기엔 아 순진하게 생깄더만. 우째 보머 좀 멍청하게 보이기도 하고” 혜수는 아직도 껌을 오물거리며 얄망스럽게 가위질을 해댄다. 가뜩이나 혜수의 ‘딱 딱’ 소리를 내며 질겅거리는 껌 소리 때문에, 신경이 쓰였던지 머리 커트하던 손님이 꽥 하고 소리를 지른다. “고마 좀 머리 하는 데나 신경 쓰지, 뭐 자꾸 딴 데 쳐다보면서 사람 심란하게 하노? 그 카다가 가위로 내 귀나 자르면 우짤라고 카노?” 혜수는 드디어 단물이 다 빠져버린 씹다만 껌을 탁 뱉어 휴지통에 던지고 한숨을 포옥 내쉰다. “언니 미안해요. 나도 나이가 돼 가니까 자꾸만 남자 생각이 나네요. 언니가 좀 이해해 줘요” 머리 커트를 하던 중년의 여인은, 거울을 통해 혜수의 얼굴을 쓰윽 쳐다보더니 키득거리고 웃는다. “혜수씨 시집가고 싶나 보네. 와? 사귀는 남자 없나? 올해 나이가 몇이고?” 잔뜩 볼이 부어있던 혜수는 반색을 하며 중년의 손님에게 바짝 달라붙는다. 그 중년의 여성은, 정애가 일하는 미시단란주점 앞에 있는 아구찜 식당 주인이었다. 중년의 푸짐한 육덕과 함께 잔뜩 부푼 물아귀처럼, 농염한 육체의 물이 올라 있었다. “언니, 참한 남자 하나 소개 시켜 주면 내가 꼭 보답할게요. 괜찮은 남자 하나 소개시켜 줘요” 머리를 헤드뱅잉 하듯 흔들며 만류를 하던 정애도, 눈이 똥그랗게 돼 혜수와 아구찜 식당 여주인을 쳐다본다. 혜수는 다시 한숨을 포옥 내쉬며 신세타령을 늘어놓는다. “내 나이가 올해 서른 하고도 다섯인데, 남자도 남자지만 이놈의 미용실 원장님과 이상한 계약을 해놔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해 다른데 가지도 못 합니더. 우짜머 좋겠십니꺼?” 혜수는 지금 일하는 백조미용실에서 5년째 시다부터 출발해 미용사가 되기까지 근무했고, 미용실 원장인 미자와 ‘헤어디자이너 자유직업소득계약서’를 작성했었다. 그 계약서 제6조 제3항에는 ‘을은 갑과의 계약종료 후 적어도 1년 이내에 동종업계(같은 구 또는 동) 타 가게로 전직할 수 없으며, 갑 매장 반경 4km 내에는 개점할 수 없다.’라고 규정돼 있었고, 혜수는 고객기록 유출시 손해배상을 한다는 약정서를 원장에게 작성해 주었다. 백조미용실 원장인 미자는 M시에서 미용학원을 다니며 미용기술을 배웠고, 부산에서 제법 유명한 미용실에서 삼년간 일하며, 시다부터 출발해 겨우 머리를 만질 수 있을 때 한 남자를 만났다. 우연히 생긴 건 말라비틀어진 멸치처럼 생긴 찌질이 같은 남자 손님의 머리를 만져주었는데, 그 남자가 머리 손질한 게 아주 마음에 든다고 칭찬을 하며 저녁을 쏘겠다고 미자에게 추파를 던졌다. 멸치대가리는 미자를 데리고 부산 서면에서 제일 유명한 갈비집에서 저녁을 걸게 먹은 후, 코스로 나이트클럽과 함께 모텔로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첫 만남에서 첫 관계를 가지다니. 그런데 알고 보니 그 남자는 부산에서 제법 유명한 알부자네 둘째 아들이었다. 고등학교 때부터 밴드부에서 색소폰을 불고 다녔던 여학생들의 히어로였다나 어쨌다나. 생긴 거 하곤 완전히 다르게 여자 다루는 솜씨가 프로급이었다. 특히 밤에 하는 남녀상열지사는 수준급이어서 포르노 배우 뺨칠 정도의 기술을 터득하고 있었다. 처음 만나 첫날밤 진저리를 치며 황홀함을 맛본 미자는 이제 그 남자 없으면 사는 낙이 없을 지경이 되었다. 멸치대가리는 곧 일본을 거쳐 프랑스 유학을 준비 중이라고 했다. 미자에게도 외국에 나가 미용기술도 배우고 여행도 함께 즐기자고 은근히 제안을 해왔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 유학이라는 게 정식 코스를 밟아 학위를 취득하는 과정이 아니라서, 멸치대가리네 부모님이 허락을 해주지 않고 학비도 대줄 수 없다는 것이었다. 이제는 둘 사이가 떼려고 해도 뗄 수 없는 찰떡반죽 같이 돼버렸고, 밤의 황홀함에 길들여진 미자는 가지고 있던 걸 모두 탈탈 털어 유학인지 여행인지 그 경비를 부담하기로 했다. 사실 둘 사이가 그렇게 돼 버린 건, 멸치대가리의 프로급 여자 다루는 솜씨도 솜씨거니와 미자만이 가진 남다른 특이한 것도 있었다. 미자의 깊은 계곡 옹달샘이 남자들이 가장 바라고 바라는 그런 명기였던 것이다. 남자의 프로급 솜씨에 달아 오른 미자의 옹달샘이 옴죽거리면, 멸치대가리의 육봉을 낙지나 문어의 빨판처럼 깊이 흡입하며 자극시켰기 때문에 둘은 황홀경에 빠졌다. 결국 둘은 여행도 아니고 유학도 아닌, 애매한 삼개월간의 일정으로 일본을 거쳐 프랑스 미용아카데미 수료증을 손에 쥔 채 국내로 돌아오게 되었다. 물론 멸치대가리는 미자가 아카데미에서 공부하는 동안, 백마 탄 왕자가 되어 서양의 노랑머리 흰 얼굴의 미녀들과 희희낙락거리며 재미를 보고 돌아다녔다. 국내로 돌아온 뒤 한동안 막막했지만 이게 또 웬일인가. 아무 데도 소용없을 줄 알았던 외국의 미용아카데미 수료증이 국내 미용업계에서는 대단히 가치를 높게 평가하고 인정해주는 것이었다. 멸치대가리와 미자는 부산 시내 변두리에서 시작해, 1년 만에 서울 강남으로 진출할 수 있게 되었다. 삼년간 악착같이 돈을 모았지만 서울의 텃세가 워낙 심하고 점포 임대료를 도저히 감당할 수 없어, 지금까지의 경력과 자금으로 M시로 돌아와 미용실을 내게 되었다. 일본과 프랑스 미용 아카데미 수료와 부산과 서울 강남의 경력들이, 지방도시 M시에서는 젊은 여성 고객들의 취향에 맞아 손님들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았다. 가게는 순식간에 번창했지만 좋은 일에는 마(魔)가 따른다고 했던가. 돈 좀 만지니 그놈의 서방인지 남방인지 멸치대가리가 말썽이었다. 멸치대가리는 미자가 미용실 일에 매달릴 때, M시에서 온갖 여자들과 염문을 뿌리며 카사노바 노릇을 하고 다닌 것이다. 백조미용실에 한 떼의 여자들이 찾아와, 서방인 멸치대가리를 찾아내라고 난리를 치고 고소하겠다며, 울고불고 소동이 난 뒤 미자는 멸치대가리와 갈라서고 말았다. 유부남인 걸 속이고 총각행세 하던 멸치대가리는 결국 쇠고랑을 차고 교도소에 들어갔고, 한 떼의 여자들이 미자의 머리채를 쥐어뜯고 흔들어 대는 통에, 미자는 그동안 번 돈을 사기를 당한 여성들에게 다 털어주고 말았다. 그 난리통에 미자네 백조미용실은 한산한 변두리 가게로 전락하고 말았지만, 그래도 가게는 악착같이 버티며 운영하고 있어서 어느 정도 악몽에서 벗어날 수 있었고 경제적으로도 다시 안정을 찾아가고 있었다. 그래서일까 미자는 언제부터 사람을 믿지 않는 버릇이 생기게 되었다. 혜수와의 계약도 혜수가 어느 정도 기술을 익혔을 때 따로 나갔을 때, 자신의 가게와는 충돌이 안 생기도록 미리 단도리를 해 둔 것이었다. 혜수와 미자 사이가 벌어진 것도 결국 남자 문제로 시작된 것이다. 한번 남자 때문에 된통 쓴맛을 본 미자는, 혜수의 그 헤픈 남자 그리움증 때문에 이만 저만 신경 쓰이는 게 아니었다. 미자는 혜수를 동생처럼 생각해서 아무 남자에게나 헤프게 정을 주지 말라고 사사건건 참견을 했던 게 화근이었다. 다시 봐도 나이트클럽이나 전전하는, 백수건달 제비족 같이 생긴 남자가 미용실에서 머리를 손질하고 간 다음 날부터, 혜수는 상사병 앓는 사람처럼 멍하게 정신을 못 차리는 것이었다. 결국 그 남자가 다시 미용실을 찾아온 날 둘은 기어이 사고를 내고 말았다. 전날 저녁에 일찍 퇴근하고 나갔던 혜수는, 다음날 한낮에 칠렐레 팔렐레 잔뜩 풀어헤친 옷매무새와 쑥대머리로 가게에 나타난 것이다. “야 이 가시나야, 니 어제 그 머스마하고 잤제? 저기 미칬나? 기어이 사고를 쳤는가베?” 앙칼진 미자의 다그침에 혜수도 지지 않고 꽥 소리를 질렀다. “언니 니가 뭐꼬? 니가 와 내 남자 문제까지 일일이 참견이고? 내도 다 알아서 한다. 고마 좀 해라” 미자는 기가 막혀서 손으로 가슴만 툭툭 쳐댔다. “나도 모리겄다. 인자 일 났으니까 니가 알아서 해라. 그만큼 남자 조심하라고 당부했건만 나도 모리겄다” 결국 그 일로 둘 사이는 벌어졌고 혜수는 백조미용실을 그만 두었다. 문제는 백조미용실을 그만둘 때, 혜수가 관리하던 단골 고객카드를 모두 찢어버리고 나온 것이다. 혜수는 미용실을 그만둔 후, 그곳에서 500m 거리에 있는 장미미용실에서 다시 일을 하게 되었다. 배신감과 함께 마음에 상처를 받은 미자는, 혜수를 경업금지약정에 따라 백조미용실에서 4km 내에서 미용업무에 종사해서는 안 되고, 미자가 입은 정신적 고통에 대한 위자료를 지급하라는 소송을 제기하였다. 혜수도 가만있지 않고, 미자에게 퇴직금을 지급하라고 소송을 제기하였다. 한 동네에서 단골들은 미자와 혜수를 번갈아 찾아다니면서, 서로 화해하고 고소를 취하하라고 권유했지만 둘 사이는 너무 멀게 갈라져 있었다. 미자는 미자 대로 혜수가 근무약정 종료 후, 백조미용실에서 불과 500m 거리에 있는 미용실에 근무함으로써 경업금지약정을 위반했고, 그로 인해 심한 정신적 고통을 입었다는 것이다. “가시나 그기 뭣이 그런 기 다 있노? 지가 사람 같으머 멀리 가서 일하든가, 딱 코앞에 있는 가게서 지금 뭐하자는 기고? 사람 미치고 환장하게 만드네 정말” 혜수는 혜수 대로 난리를 치고 있었다. “지가 와 내 사생활까지 간섭하노 말이다. 지가 내 친언니라도 되나? 남이야 남자를 만나고 댕기든 뭐를 하고 댕기든 지가 와 난리고 말이다” 고소장의 경업금지약정은 근로기준법상의 근로자인 혜수의 직업선택의 자유와 근로권 및 생존권을 과도하게 제한하여, 선량한 풍속 기타 사회질서에 반하는 법률행위로서 무효라는 것이다. 운명의 장난은 그런 것인가. 교도소를 2년 만에 출소한 멸치대가리 정진은 미자에게 쫓겨나고, M시 역전 근처에서 어슬렁거리다가 혜수를 만나 살림을 차렸다. 그것도 미자가 운영하는 백조미용실 근처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장미미용실에서, 그 짓을 계속하고 있었으니 소송은 걷잡을 수 없게 되었다. 미자도 정진이 펼치는 그 밤의 황홀함을 못 잊어, 몇 번이나 다시 결합을 할까 가슴 설레게 만들어 잠시 판단이 흐려지기도 했다. 타고난 프로급 수준의 그 짓에 혜수도 진저리를 치며 낙지처럼 쫙 달라붙게 만들었던 것이다. 정진의 현란한 혀 놀림에 혜수는 아득함을 느꼈다. 목덜미를 따라 귓볼을 자극하면 짜릿한 전율을 느끼며, 두 다리를 오므리고 작은 새처럼 가늘게 몸을 떨었다. 정진은 계속 아래로 내려와, 봉긋한 두 개의 봉오리 사이를 왔다 갔다 하며, 유두를 입술과 혀로 부드럽게 희롱하고 살짝 이로 깨물자, 혜수는 더 참지 못하고 가는 신음 소리를 냈다. “아아… 십억 이십억” 더 아래로, 아래로 내려오자 혜수는 계곡 사이로 뜨겁고 끈적한 뭔가가 흘러나오는 느낌을 받았다. 이미 혜수의 옹달샘은 촉촉하다 못해 질척하게 젖어 있었다. 정진은 멈추지 않고 그대로 내려와 옹달샘에 입을 대고 깊이 흡입하기 시작했다. 달콤한 꿀물을 입술과 혀로 음미하며 천연 비아그라를 마음껏 즐겼다. “아아… 그만, 그만 어서” 혜수는 위 아래로 허리와 엉덩이를 흔들며 진저리를 치며 정진이 진격해 주길 간절히 원했다. 드디어 정진은 폭발할 것처럼 빳빳하게 하늘을 향해 치켜든 뜨거운 용두를 혜수의 옹달샘 깊숙이 진격시켰다. 혜수는 암낙지가 수컷낙지를 후리듯 정진의 목덜미와 등짝을 힘껏 잡아 당겼다. “아아… 백억 이백억” 신 새벽 첫 이슬 먹고 옹골찬 기지개를 켜는 단단한 저 꽃봉오리, 한낮의 젖감질에 그만 촉촉이 젖어 에그머니 옷고름을 풀고 말았네. 달떡쿵 쿵덕쿵 하롱하롱 꽃잎이 떨어지고 몸부림치며, 떨리는 우듬지에 하몽하몽 게슴츠레한 낮달이 걸려있네. 아뿔싸, 성급했던 손짓에 옷고름이 하나 떨어지고 말았어. 달달한 찹쌀떡 빚을 때가 좋았지, 집에 가면 머리끄덩이 잡힐 일이 걱정이네. 에이그, 칠칠치 못하게. 정진의 등짝엔 깊이 삼지창 자국이 패였다. 현란한 좌 삼삼 우 삼삼 우물우물 삼십 번을 반복하며, 혜수를 한껏 들뜨고 즐겁게 해 주었다. 괄약근 운동으로 멈춤을 몇 번이나 반복하면서 혜수를 절정에 이르게 한 뒤, 한바탕 회오리를 친 정진은 프로답게 한참이나 진격한 자세로 옴죽거리며 천천히 마무리를 지었다. 소송에서는 결국 혜수가 이겼다. 사회적 약자인 근로자의 신분을 고려해 소송이 유리하게 작용한 것이다. 재판부에서는 미자와 혜수 사이에 경업금지약정이 존재하더라도, 혜수의 미용사 업무성격에 비추어 백조미용실에서 다른 미용실로 이직하는 경우, 그 고객이 혜수를 따라 다른 미용실을 이용할 우려가 있다고 보이기는 하나, 혜수가 백조미용실에서 근무하는 동안 교육훈련을 통해, 특별한 미용기술을 전수받는 등의 방법으로 어떠한 영업비밀을 지득했다고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민법 제103조에 정한, 선량한 풍속 기타 사회질서에 반하는 법률행위로서 무효라고 보아야 하고, 이와 같은 경업금지약정의 유효성에 관한 판단은, 보호할 가치 있는 사용자의 이익, 근로자의 퇴직 전 지위, 경업제한의 기간 지역 및 대상 직종, 근로자에 대한 대가의 제공 유무, 근로자의 퇴직 경위, 공공의 이익 및 기타 사정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고 했다. 여기에서 말하는 ‘보호할 가치 있는 사용자의 이익’이란, 부정경쟁방지 및 영업비밀보호에 관한 법률 제2조 제2호에 정한 ‘영업비밀’ 뿐만 아니라, 그 정도에 이르지 않았더라도, 당해 사용자만이 가지고 있는 지식 또는 정보로서 근로자와, 이를 제3자에게 누설하지 않기로 약정한 것이거나, 고객관계나 신용의 유지도 이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미자가 주장하는 원고의 사용자로서의 이익은, 미자가 동종업계보다 더 많은 비용을 지출하는 방법으로 높인 백조미용실의 브랜드 가치인데, 이러한 이익은 고객이 미용실의 브랜드 가치를 보고 미용실을 선택한다는 점을 전제로 하므로, 혜수가 다른 미용실로 이직을 한다고 해서 이익에 침해될 수 없어, 재판부의 판단이 명확해진 것이다. 미자는 가슴 한가운데가 총 맞은 것처럼 휑해지고, 구멍을 통해 바람이 숭숭 지나가는 것 같았다. 바람 불 때 낙엽은 춤을 추지만 소나무는 깊이 시퍼런 속울음을 운다고 했다. 코끝에 와 닿는 향기로움은 낙엽의 몸짓이지만, 늑골깊이 찌르는 이 서러움은 솔잎의 따가움이다. 황량한 바람이 불 때마다 쓸쓸한 듯 떨어지는 저 낙엽은 오히려 안온함을 주지만, 소리 없이 눈치도 없이 깊숙이 와 닿은 저 소나무의 고고함이라니. 미자는 혜수와 소송을 끝으로 치열하게 살아온 생을 정리하고 조용히 은거하고 싶었다. 미자는 머리를 삭발하고 출가를 결심하게 되었다. 혜수는 미자로부터 소송에도 이겼고 정진의 사랑도 쟁취해 잠시나마 행복감에 젖어있었다. 더욱이 밤마다 정진이 해주는 환타지아 쇼는 혜수를 천국에서 뛰어노는 한 마리 사슴처럼 파라다이스를 느끼게 해 주었다. “그 봐라, 내가 뭐라 캤노? 미용사와 내 단골 고객 사이는 내 미용기술하고 서비스에 따라 많이 늘어난 것이지, 백조미용실 보고 간 기 아이다 안 카더나? 그놈의 약정인지 뭔지가 내 발목을 우찌 잡을 끼고? 발 달린 짐승이 어데를 못 가겠노? 내가 내 마음대로 취직도 못한다 말이가? 아이고 대한민국에 어데 이런 법이 다 있노?” 경업금지약정은 일반적으로 사용자에 비해 경제적으로 약자인 근로자에 대하여, 헌법상의 직업선택의 자유 및 영업의 자유를 제한하고, 그 생존을 위협할 우려가 있고, 특히 쉽게 다른 직종으로 전직할 수 있는 기술이나 지식을 갖지 못한 근로자는, 종전의 직장에서 습득한 기술이나 지식을 이용하는 업무에 종사하지 못할 경우, 그 생계에 상당한 위협을 받을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해주었다. 혜수는 결국 소송에서 이겼지만 또다시 남자로 인해 상처만 남게 되었다. 매일 밤 혜수를 달뜨게 했고 천국의 열락을 맛보게 해주던 정진은, 참새가 방앗간을 그냥 못 지나가듯 역전 사거리 주변 업소를 전전하며, 젊은 여자들에게 여전히 못된 짓거리를 계속하며 사기행각을 벌였고, 미자에 이어 혜수 마저 남자로 인한 사랑의 상처를 받고 만 것이다. 미자는 더 이상 M시와 역전사거리 근처에 머물고 싶지 않았다. 세상사 미련을 버리고 머리를 삭발한 후 출가하고 말았다. 그 후 혜수도 교회에 다니며 봉사활동으로 상처를 치유해가고 있었다. 그러나 운명의 장난은 상처받은 영혼을 위로해 주기는커녕, 오히려 더 얄궂은 운명으로 빠트리고 있었다. M시 역전사거리에서 상처를 받았으면, 미련을 버리고 그곳을 떠나 상처를 치유하고 새로운 삶을 찾아야 하는데, 먹고 살기 위해 혜수는 악착같이 M시를 떠나지 못하고 있었다. 범죄자는 죄를 지으면 항상 그 장소에 다시 나타나는 묘한 버릇이 있다. 살인이나 방화, 강간, 절도 같은 범죄 외에도, 여성들을 상대로 사기행각을 벌이던 파렴치범은 여성들이 많은 장소에 반드시 나타나게 돼 있다. 우연히 정진과 나이 어린 젊은 여자가 다정하게 팔짱을 끼고, 자유수출지역 삼각공원 앞을 걸어가던 모습을 목격한 혜수는, 그동안 신앙생활을 통해 치유돼 가던 상처들이 다시 되살아나 씻을 수 없는 죄를 짓고 말았다, 미용실 일을 작파하고 두 연놈을 따라다닌 혜수는 정진과 젊은 여자가 대낮부터 식당에서 장어를 시켜먹고 노닥거리는 걸 똑똑히 지켜보고 있었다. “저것들이 좋아 죽네, 좋아 죽어. 대낮부터 장어 처먹고 힘빨 세워 뭔 짓거리 할라 카노? 너거는 인자 죽었다. 내 손에 한번 죽어봐라. 내가 이날을 기다리고 기다렸다” 혜수는 그동안 애써 신앙생활을 통해 모든 것을 용서하고 내려놓았던 마음이, 다시금 강퍅하게 황폐화되며 두 연놈에게 저주를 퍼붓고 있었다. 대낮부터 장어에 소맥으로 얼큰하게 취한 두 연놈은 자연스럽게 주변 모텔로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그래, 잘한다, 잘해. 대낮부터 지랄하고 자빠졌제? 너거는 인자 함 죽어봐라” 혜수는 미리 준비해 온 과도를 검은 비닐봉지에 말아 쥔 채 두 손을 파르르 떨고 있었다. “정진씨, 너무 대낮 아인가예? 부끄럽어예” 젊은 여자는 은근히 추파를 던지고 교태를 부리면서도 내숭을 떨고 있었다. “이기 와 이라노? 한두 번도 아니고, 우리가 언제 밤이고 낮이고 가려가면서 연애했나? 이리 온나” 정진은 여성의 어깨를 당기며 모텔 현관을 들어서고 있었다. 옆 계단 쪽의 출입문을 통해 잽싸게 따라 들어간 혜수는 조용히 숨죽이며 기다리고 있었다. 카운트에서 받은 열쇠의 객실 번호는 302호였다. “302호… 302호” 혜수는 객실 번호를 잊어버리지 않기 위해 소가 여물을 되새김 하듯 필사적으로 중얼거렸다. “302호… 302호” 302호 객실 문이 열리고 둘은 어두운 아가리 속으로 빨려 들어가며 순식간 에 사라졌다. 쫒아가던 혜수 앞에서 ‘철컥’ 하고 문이 잠기는 소리와 함께 아득함이 느껴졌다. 대낮인데도 객실 사이를 오가는 남녀들의 거친 호흡과 묘한 교성은 소돔과 고모라였다. 그 소리들은 분노에 떨던 혜수의 몸을 달뜨게 하며 심경을 복잡하게 만들었다. 몸 따로 마음 따로 움직이게 하는 것이다. 대충 샤워를 끝낸 정진은 젊은 여자를 침대로 눕혀 선수답게 위아래를 오가며 현란하게 달궈놓고 있었다. 암낙지와 숫낙지는 그렇게 빨판을 밀착시키며 서로의 몸을 밀고 당기고를 반복하고 있었다. “아아… 십억 이십억” 정진의 손은 잘 익은 찐빵 같은 젖가슴을 떡 주무르듯 조율하고 있었다. 어느새 봉오리와 유두는 터질 것처럼 탱탱하게 부풀어 올라 있었다. 정진은 점점 허리 아래로 손놀림을 계속하고 있었다. “아, 못 참겠다. 빨리…” “조금만 기다리라 조금만” 정진은 손짓을 멈추고 혓바닥으로 깊은 옹달샘을 자극하고 있었다. 어느새 깊은 산속 옹달샘에선 맑은 꿀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정진은 자연 드림 안에서 마음껏 황홀함을 음미하고 있었고 여자는 몸부림을 치고 있었다. 혜수는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다. 묘하게도 두 연놈을 증오하던 혜수의 몸도 한껏 달뜨며, 깊은 산속 옹달샘 사이로 꿀물이 촉촉하게 흐르며 속옷을 적시고 있었다. 혜수는 정진과 나누던 뜨거웠던 시간을 떠올리며 숨이 막히는 것 같았다. “아, 정진씨…” 두 연놈은 어느새 자세를 바꿔, 24인용 텐트를 치고 있던 정진의 육봉을 여자는 마음껏 입으로 희롱하고 있었다. “좋아, 좋아… 좋아” 혜수는 순간 눈에 번갯불이 튀는 것 같았다. “저것들이 진짜 맛있게 하고 있네. 미치겠네 진짜. 저거 원래 내 건데” 숨을 가쁘게 몰아쉬는 여자 위로 정진은 진격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오빠, 어서… 아응” 혜수는 ‘오빠’ 소리에 정신이 번쩍 들면서 분노와 안타까움에 다시 몸을 떨었다. 막창 같은 입술로 내뱉던 소리다. “옵빠? 오빠 좋아하네. 저것들을 그냥” 혜수는 정진이 마지막 일격을 가하며 전진을 하려는 순간, 302호의 문고리를 잡아 당겼다. 철컥 철컥 소리만 나며 잠긴 문은 열리지 않았다. “거 누구요? 밖에 누구요?” “오빠 누구예요? 그냥 무시해요. 어서 빨리 올라와요. 아… 빨리 해줘요” 몸이 달아오를 대로 달아오른 여자는 몸부림치며 칭얼대고 있었다. 드디어 정진은 밖의 일은 무시하고, 육봉을 힘껏 여자의 옹달샘에 진격하고 전진과 후퇴를 반복했다. 몸을 바르르 떨며 여자는 모텔이 떠나가라 소리를 내고 있었다. “아아… 좀 더 세게 빨리요. 음…” 혜수도 이미 속옷이 흥건하게 젖은 상태로 문고리만 쥐고 몸이 허물어지고 있었다. 더 이상 참을 수 없게 된 혜수는 있는 대로 문고리를 잡아 흔들었다. “가만 있어봐라, 에이 정말 뭐꼬?” 빳빳하게 기립한 육봉을 덜렁거리며 아쉬운 듯 대충 옷을 걸친 정진은, 게슴츠레하게 풀린 눈으로 문을 열었다. “누기는 누구겠노? 이 쳐 죽일 것들아” 문을 왈칵 밀고 들어간 혜수는 이성을 잃고 길길이 날뛰기 시작했다. “내가 못 산다. 내 이것들을 그냥. 오늘 니 죽고 내 죽자. 고마 다 죽자” 갑자기 뛰어든 혜수의 모습에 정진은 넋이 빠져 혼비백산하고 있었다. “이, 이 와이라노? 니가 여 우짠 일이고? 가만 진정하고 내말 들어봐라” “니 말이고 내말이고 들을 필요 없다. 아이고 내 팔자야, 내가 못 산다” 울다말고 혜수는 정색을 하고 정진에게 애원조로 매달렸다. “정진씨, 우리 다시 한 번 새로 시작하면 안 될까요? 이 따위 추잡스런 년하고는 관계정리 하고 우리 다시 사랑해요. 네?” 혜수와 실랑이를 벌이던 정진은 윗옷을 걸치지도 않은 채 바지만 급하게 당겨 입고 줄행랑치기 시작했다. “가기는 어데 가노? 니 오늘 내 손에 죽어봐라” 혜수는 바짓가랑이를 왈칵 잡아당겼고, 정진은 그 자리에서 벌러덩 넘어졌다. 순간 혜수는 검은 비닐봉지 속의 과도를 꺼내 정진의 가슴과 배를 향해 찔렀으나, 깊이 들어가진 않은 채 핏방울만 사방에 꽃잎처럼 흩뿌려졌다. “아악, 사람 살려. 이 여자가 와 이라노? 사람 살려. 살인났다” 옷을 제대로 추스르지도 못한 여자는 악다구니를 질러댔다. “밖에 누가 없어요? 옴마나 사람 살려” 혜수는 쓰러져 뒹구는 정진을 두고 여자를 향해 과도를 찔렀지만, 옆으로 스치며 쓰윽 가벼운 자상만 남겼다. “엄마야 피, 사람 살려요. 사람 죽인다” 그때서야 바깥이 소란스러우며, 카운트에 있던 모텔 주인이 쫒아왔다가 아수라장이 된 302호를 보고 기겁을 했다. “아가씨 와 이라는교? 말로 하소. 좋게 해결 하소. 와 칼을 들고 이라는교? 모텔 주인은 쓰러진 정진과 혜수를 동시에 번갈아보며 손사래를 쳤다. “내가 못 산다” 허물어진 혜수는 제대로 복수도 하지 못한 채 대성통곡을 하고 말았다. 모텔 주인은 경찰에 신고를 해놓고, 혜수가 던져놓은 과도를 발로 툭 차며 소리를 질렀다. “아, 시바 남의 장사 다 말아 묵을라꼬. 이기 뭐꼬? 죽이든지 살리든지 밖에서 난리 치든지, 남의 장사집에서 이기 무슨 난리고?” 혜수는 손바닥으로 바닥을 쳐가며 더욱 서럽게 울부짖었다. “내 딱 보이까네 상황을 알겠구만. 아가씨 남자한테 차이고 분해가지고 복수할라 캤구만. 그래도 그렇지 이기 뭔교? 아이고 고마 인생 조지뿐네. 앞길이 구만리 같은 사람이. 진짜 복수는 여봐란 듯이 내가 잘 사는 기 진짜 복수요” 모텔 주인은 조금 전의 짜증스런 모습과는 달리, 울고 있는 혜수를 보며 혀를 차며 안쓰럽게 보고 있었다. 결국 혜수는 살인 미수죄로 교도소에 수감이 됐고, 가벼운 상해를 입은 정진과 여자는 보름간 병원신세를 진 뒤 퇴원했다.
“죄짐 맡은 우리 구주 어찌 좋은 친군지… 걱정 근심 무거운 짐 우리 주께 맡기세…” M 교도소 교회에서 찬송가가 울려 퍼졌다. 푸른 수의를 입은 재소자들이 고개를 떨군 채 찬송가를 부르고 있었다. 재소자 교화봉사를 하고 발길을 돌리던 혜운 스님은 문득 교회를 향해 은근한 눈길을 보냈다. 오늘따라 종교가 다른 교회에 계속 마음이 가는 건 무슨 일일까. 그곳에서 종교 활동을 마치고 쏟아져 나오는 재소자들을 보고 싶었다. 결국 미자는 M 교도소에서 푸른 수의를 입은 혜수를 만났고, 접견실에서 두 사람은 부둥켜안고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언니, 미안해요. 어쩌다 우리가 이렇게 만나게 됐네요.” “아니다. 다 내가 고집을 부려 헤어지다 보니 이렇게 된 것 같구나. 다 부질없는 이야기들이다. 부디 몸 건강하게 수감생활 잘 마치고 나와서 다시 보자구나. 나무 관세음보살” 혜수는 파리하게 깎은 하얀 미자의 맨머리를 보면서 무슨 말을 해야할지 몰랐다. “내가 그때 언니 말만 들었어도 이렇게 모진 일까지 겪진 않았을 텐데. 나 그동안 너무 힘들게 살았어요.” “그래, 다 안다. 말 안 해도. 다 잊자. 다 털어버리고 나와서 홀가분하고 재미있게 살면 되는 거다” 두 사람은 혜수가 출소한 후 다시 만날 것을 약속하고 헤어졌다. 멀리서 들리는 사찰의 종소리와 교회의 찬송가 소리가 묘하게 겹쳐졌다. 산등성이엔 붉은 석양이 서서히 내려앉는다. 버스에 앉은 혜운 스님의 얼굴에 노을이 지고, 석양을 바라보는 등에도 노을이 진다. 차창 밖이나 안이나 모두 활활 불타는 저녁이다. 석양이 기울었다 다시 해 뜰 때까지 혜운 스님은 이렇게 저렇게 그렇게 버스와 함께 흔들리고 싶었다. 기댈 언덕이 없어 벽에 기대고 있는 작은 새, 어쩌면 혜수는 돌격하다 떨어지고 돌격하다 떨어지는, 가미카제 같은 작은 새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 날고 싶다는 더 살고 싶다는 몸짓인지, 편안한 나뭇가지를 두고 직벽을 향해 비행하는 것처럼, 아무 것도 없는 저 벽속의 4차원으로 들어가고 싶었던 것일까. “그래, 어쩌면 혜수는 지칠 줄 모르고 포기할 줄도 모르는, 고집불통 같은 작은 새였을지도 몰라. 지금도 여전히 포르르 작은 날개를 파닥거리고 있잖아. 존재의 이유가 그것뿐인 것처럼. 아니지, 아마도 그것뿐인지도 모르겠다. 존재의 이유도 모른 채 주저앉아 있는 인간보다 살아있는 작은 새. 그래 새는 날아야 새지” 정진은 제 버릇 개 못 준다고, 병원에서 퇴원 후 다시 M시 역전사거리를 제 아지트로 삼고 온갖 카사노바 같은 짓을 되풀이 하고 있었다. 교통사고로 한쪽 다리를 절며 작대기를 집고 다녔으나, 집요하게 가해자를 물고 늘어져 보험금 외에도 장해보상금을 더 받아냈다. 정진은 그 돈으로 질펀하게 탕진하며 여전히 주색잡기에 빠져 지냈고, 이 여자 저 여자 집적대다 결국 남편이 있는 유부녀까지 건드리고 다녔다. 뒤쫓아 온 여자의 남편을 피하기 위해, 모텔에서 도망가던 중 급하게 차를 몰고 사거리를 빠져나가다 달려오던 덤프차에 받히고 말았다. 승용차는 휴지처럼 구겨져 박살이 났고, 정진은 말 그대로 마른 멸치처럼 납작하게 승용차 안에 구겨진 채로 발견되었다. 급하게 구급차에 실려 병원으로 옮겼으나, 허리를 못 쓰는 하반신 마비가 되어 평생 휠체어 신세를 지게 되었다. 혜수는 출소 후 혜운 스님의 도움으로 백조미용실 원장이 되었고, 정진은 나중에 장애인복지관 사무국장과 인연을 맺어, 장애인이 돼서도 여전히 연애선수로 활약을 하고 다녔다. M시를 쫓겨날 뻔했던 정진은 제 버릇 개 못주는 그 탁월한 재주(?) 덕분인지, 장애인복지관 사무국장을 꾀어내, 하반신 마비에도 불구하고 손가락으로 피아노조율(?)을 잘해서 그 사무국장이 뻑 갔대나 어쨌다나. 아무튼 홍콩까지 경유해 지구를 한 바퀴 돌려줬다고 한다. 혜수가 운영하는 백조미용실에 그 장애인복지관 사무국장과 정진이 머리를 하러 들렀다가, 혜수를 보고 놀래자빠진 정진이 급하게 휠체어를 끌고 헐레벌떡 사거리로 나서다가 달려오는 택시에 그대로 받힐 뻔했다. “야, 이 새캬 죽으려고 환장했나, 정신 똑바로 안 차리지?” 장애인복지관 사무국장은 뜨악하게 혜수를 바라보다, 말없이 정진의 휠체어를 끌고 장미미용실로 걸음을 옮겼다. “저 인간이 평생 인간 말종 같은 짓만 골라 하더이, 결국 아랫도리를 못 쓰고 병신이 됐구마는. 쯧쯧, 그래도 손구락 하나는 기똥차게 놀린다 카더이 진짠가베. 저리 참한 여자가, 우짜다가 저런 몹쓸 놈팽이 인간쓰레기 같은 놈한테 낙찰됐을꼬? 참 모를 일인기라” 백조미용실에선 싸이의 강남스타일이 경쾌하게 흘러나오고, 혜수는 헤드뱅잉으로 가끔 머리를 흔들며 현란하게 가위질을 하고 있었다. “강남스타일… 강남스타일… 헤이 섹시 베이비… 저 남자 딱 내 스타일이었는데, 내 말만 잘 들었어도 좋았을 긴데. 저리 못되게 쳐 돌아다녔으니 저 꼴 난기라. 다 벌 받은 기제. 아쉽다 딱 내 스타일이었는데” 혜수는 어느덧 가위질이 신의 경지에 이른 것처럼, 손에서 두 바퀴 팽그르르 돌리며 서부의 총잡이 흉내를 내고 있었다. “강남스타일… 강남스타일… 헤이 섹시 베이비…” 가게 밖 역전 사거리는 여전히 잘 만들어진 드라마나 영화 속 거리처럼, 신호에 따라 차량들이 달렸다 섰다를 반복하고 있고, 사람들도 일정하게 길을 건너다 서다를 반복하고 있다. 산등성이의 석양도 그때 그 시간에 맞춰 흘러내리고 있고, 거리의 어둠과 네온사인도 일정한 시간에 따라 어두워졌다 밝아졌다 계속하고 있다. 머리 손질을 하고 있던 잘생긴 꽃미남이 환한 미소를 혜수에게 보내고 있었다. 혜수도 남자 손님에게 은근한 미소를 보내고 있었다. “우리 아들 잘 생겼네… 오늘 어데 가노? 완이 애인 생깄나?” “우리 엄마도 오늘따라 기분이 좋아 보이네. 무슨 일이 있나?” 미용실의 간판은 언제부턴가 ‘박룡완 헤어샵’으로 돼 있었다. 두 명의 남자를 알게 되었고 한 아이를 낳게 되었는데, 아버지가 누군지는 아무도 모른다. 가끔 한 번씩 혜수는 손가락으로 개월 수를 헤아리다 헤드뱅잉을 하고 만다. 매일 한 번씩 휠체어에 탄 장애인이 ‘박룡완 헤어샵’ 윈도우 앞을 지나간다.
【본 소설의 내용은 호프집에서 귀동냥으로 들었던 이야기와 작가의 상상력을 각색하여 엮은 허구의 스토리임을 알려 드립니다. 작중 인물묘사와 관련하여 현실과 착오가 없으시길 바랍니다.】
▲예시원 : 작가·문학박사 〈월간문학〉짬뽕 한 그릇 〈한국소설〉짬뽕 두 그릇 등단 / 소설집『토영 통구미 아재』 시집『누가 바다의 이름을 부르는가』수필집, 평론집 다수 발간 / 한용운문학상, 한국문학상, 박남수문학상 수상 한국문인협회, 한국소설가협회, 한국수필가협회, 서울시인협회, 경남소설가협회, 경남시인협회 회원 / 한국문학비평가협회 이사, 계간『시와늪』주간·심사위원, 한국문학세상 심사위원, 문학춘하추동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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