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머슴
이한명
그날도 팔러 간 소 꼬삐 놓지 못하고 당신은 술 한잔 얼큰히 취해 돌아왔습니다.
이별을 예감한 듯 밤새 외양간을 서성이던 우리 집 큰 머슴, 정작 아침엔 눈길 한번 주지 않고 담담히 따라나서던 소제지 가는 길.
마음은 자꾸만 멍에지던 그 논길로 향하지만 몇 해 전 어린 새끼 우시장에 떼놓고 오던 그날도 이 길을 지났었지요.
우시장 기둥에 꼬삐 묶을 때 눈물이 그르렁거렸답니다. 그놈 눈에, 좋아하던 국밥 한 그릇 마다하고 막걸리 한 사발에 매인 목 축이고서 그렇게 정을 떼려 했지만 기어코 다시 꼬삐를 집으로 끌고 오신 당신.
모두가 큰 머슴 하나 팔려 간다고 슬퍼했었는데 얼마나 다행이었던지.
이쁘게 잘 마른 볏짚단 하나 여물통에 풀어놓습니다.
괜스레 미안함에 목덜미만 쓰다듬습니다.
어릴 적 어미젖을 떼고 울며 우리 집으로 오던 그해가 생각납니다. 큰 까만 눈을 바라보고 있으면 늘 그 속에 들어있는 그해의 내가 보이는 듯합니다. 자라면서 들판과 산으로 풀을 먹이러 다니던 추억이 많지요. 어느 해는 동네 아이들과 뒷산으로 단체로 소를 몰고 가서 소는 소대로 흩어져 풀을 찾아다니고 우리는 점심 대신으로 가져간 감자를 구워 먹고 놀았지요. 그러다가 해 질 녘에 소를 찾아 집으로 와야 하는데 우리 소랑 다른 집 소 두 마리랑 그렇게 세 마리가 아무리 찾아도 없었지요. 해는 져 어두운데 겁이 덜컥 났지요. 산을 내려와서 아버지께 말씀드리니 아버지는 이웃 어른들과 등불을 준비하시고 소를 찾아 산으로 가셨지요. 오랜 시간이 지나 다행스럽게도 소를 모두 찾아오셨습니다. 소가 도망간 것이 아니었습니다. 소들은 무리로부터 떨어져 나와 풀을 뜯다가 어두워지니 근처 묘지 옆에 모여 엎드려 있었답니다. 지금 생각해도 얼마나 다행스러웠는지 모른답니다. 어린 시절 호랑이나 큰 짐승들이 산에 있다고 하신 어른들의 말씀이 생각났었지요.
그 후로 어미가 되어 새끼를 놓고 그 새끼가 또 어미가 되고 그런 과정을 거치면서 우리 집 큰 머슴이 아니라 가족이 되었었지요. 이웃 마을에서 오신 진짜 머슴살이를 하시는 분이랑 1년 열두 달 불평 없이 일만 하였지요. 머슴살이를 하시는 분도, 소도 우리에게는 머슴이 아니라 가족이었답니다. 그놈 눈을 바라보고 있으면 자꾸만 눈물이 납니다. 언제인지는 모를 이별을 예감해서일까요?
▲이한명 1993년 동인시집 『통화중』, 경향신문, 국방일보등에 시를 발표하면서 작품활동 <문학광장> 신인상 수상 등단 강원일보 DMZ문학상, 경북일보 객주문학대전, 영남일보 독도문예대전 등 공모전 수상 보령해변시인학교 전국문학공모전 대상, 노계문학전국백일장대회 대상, 강원경제신문 코벤트문학상 대상, 문학광장 시제경진대회 장원, 시인투데이 작품상, 서서울호수공원 가을시화전 대상 등 수상 2015 대한민국 보국훈장 수훈 현재 격월간 문예지 <문학광장> 편집위원으로 활동중이며 시집으로 『 카멜레온의 시』, 『그 집 앞』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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