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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향숙 시인의 시선] 벼루 / 강지혜

유세영 기자 | 기사입력 2021/10/24 [02:06]

[양향숙 시인의 시선] 벼루 / 강지혜

유세영 기자 | 입력 : 2021/10/24 [02:06]

 

벼루 / 강지혜

 

바람도 담고 하늘도 담고

낙숫물이 댓돌을 뚫는 무수한 시간속에

깎이고 깎여 뭉뚝해진 저 모습

빛 바랜 세월 속에서도

제 얼굴을 잃지 않았다

 

(강지혜 시인, 한국사진문학협회 정회원)

 

 

[양향숙 시인의 시선]

오래 전에 서예와 인연이 닿아 밤마다 먹을 갈아서 작은 플라스틱 병에 담아 퇴근 후 서예실로 달려가던 시절이 있었다. 그 시절에도 손쉽게 사서 쓸 수 있는 먹물이 있었지만 내 손으로 정성껏 갈아 쓰고 싶어 한 시간쯤 벽에 기대앉아 먹을 갈았다. 그 때의 그 묵향이 얼마나 좋았는지 두고두고 그 시절이 그립기도 하다. 큼지막했던 내 벼루나 주위에서 보는 벼루의 대부분이 공장에서 찍어낸 것 같은 사각의 것이었다.

강지혜 시인의 벼루는 자연스런 돌의 모양을 하고 있다. 그 돌 안에 바람도 하늘도 무수한 세월도 담겼다고 한다. 그러면서도 제 얼굴을 잃지 않았다고 하는데 그것이 돌의 본질일 것이다.

시인은 세월이 아무리 흘러도 변하지 않는 마음이 귀하다는 것을 표현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세월이 흘러도 변치 않는 사람, 변치 않는 친구가 우리 주변에 얼마나 될까. 반대로 누군가 나를 생각할 때 변치 않는 사람이라고 몇 명이나 생각해 줄까.

아주 변함이 없기를 바라는 것 자체가 무리일 지도 모르겠다. 오랜 시간이 지나면 낙숫물에 댓돌도 구멍이 뚫린다고 하지 않는가. 변함 자체가 부정적인 것은 아닐 것이다.

 

우리는 서서히 조금씩은 변해갈 것이다. 모난 부분은 조금씩 둥글어질 것이고 먹을 갈아 미세하게 조금씩 패이는 벼루처럼 조금씩은 깊어질 것이다. 그런 변화를 진화라고 하지 않을까 싶다.

(양향숙 시인, 한국사진문학협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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