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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 신금재

유세영 기자 | 기사입력 2021/10/14 [23:54]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 신금재

유세영 기자 | 입력 : 2021/10/14 [23:54]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 신금재

 

(1)호프 가는 길

 

성탄절 휴가를 맞아 밴쿠버에 다녀오려고 뉴스를 듣고있자니 날씨는 점점 나빠진다고 하였다.

아무래도 예정보다 조금 일찍 출발하는 것이 낫겠다 싶어 정오 뉴스를 듣다가

가방을 챙기기 시작하였다.

언젠가 처음으로 밴쿠버에 가던 날, 새벽에 떠난 것과 비교하면 터무니 없이 늦은 시간이었다.

가다가 길이 안좋거나 해가 떨어지면 근처 모텔에서 자고갈 요량이었다.

그러나 그게 아니었다.

푸른 하늘에 두둥실 구름이 걸린 로키를 넘어 캠룹스에 다가도록 길은 너무 좋았고 딸 안젤라가

만들어준 한국 가요 유에스비에서는 끊이지않고 흘러간 옛노래가 흘러나왔다.

장거리 운전에 지칠만도 한데 남편은 쉬지도 않고 달리기만 하였다.

눈만 안오면 괜찮아, 하면서.

그런데 호프를 향하는 코퀴할라 산에서 그예 눈길을 만나고야 말았다.

아마도 아침에 폭설이 지나갔는지 여기저기 제설차들이 보였고 눈이 내린 뒤 녹으면서

얼어 붙었는지 도로는 울퉁불퉁 하였다.

긴장한 남편은 그래도 덜 미끄러운 가운데 쪽 중앙선 쪽으로 차를 몰아가고 있었다.

주변에는 오직 어둠 만이 정적에 잠겨있을 뿐 어느 차량도 보이지 않는데

차창 밖으로 동지가 지난 초승달이 우리를 따라오고 있었다.

차가운 초승달이 한 척의 배처럼 코퀴할라 산 등성이를 따라 넘어갈 때 무수한 작은 고기떼로

별들이 헤엄치고 있었다.

우리가 사는 디스커버리 동네에도 인디언 마을 위로 별들이 무수히 많이 보이는데 로키 산

위로 뜨는 별은 그 감회가 달랐다.

보이지 않는 이 험한 산 위에서도 매일매일 달은 뜨고 별은 지면서 우리네 인생살이가

저물어 가겠지.

남편은 위험한 길에서 운전하느라 긴장하면서 아마도 덜덜 떨지도 모르는데 철없는 아내처럼

별타령, 달타령 한다고 할 지 모르겠지만 내 나름대로의 긴장 처방전이었다.

야, 초승달이네.

어쩜 저렇게 별이 총총할까.

 

호프에 사는 친구를 만나 하루를 묵었다.

지독한 감기로 며칠 고생하였다는 친구는 오랜만에 너를 보니 감기도 떨어지네, 하면서 손을

흔들어 주었다.

메리 크리스마스 인사를 나누고 우리는 밴쿠버를 향하여 출발하였다.

 

 

(2)밴쿠버에서

 

밴쿠버로 가는 길에는 추적추적 비가 내리고 있었다.

길가 양 옆으로 캘거리에서는 잘자라지 못하는 측백나무가 줄서기를 하고 들판에는 초록빛이

가득하여 마치 캘거리 여름 풍경이었다.

밴쿠버 성당에서는 아침 성탄 미사가 끝나고 대미사 준비가 시작되고 있었다.

성가대와 오케스트라가 연주하는 성탄 음악이 장엄하게 울려 퍼지고 산타 할아버지가 아이들에게

선물을 나누어 주는 색다른 분위기의 미사가 가슴에 감동의 물결로 다가왔다.

특별히 비슷한 시기에 이민와서 캘거리에서 가까이 지내던 루치오 신학생을 만나 반가운 만남을

하고 내년에는 사제 서품을 받게 된다는 소식을 들었다.

루치오 신학생에게 주님의 은총을, 성모님의 사랑을 기도 드린다.

 

(3)시애틀의 바다와 그 물결

 

밴쿠버에서 시애틀에 사시는 다른 지인을 만났다.

마침 우리도 이번 여행에서 시애틀에 다녀올 계획이어서 그분을 따라 떠나게 되었다.

차로 미국에 다녀오던 몇 년 전, 그때 우리는 몬타나에서 미국 국경을 넘어 아리조나,

유타주를 넘어서 갔다.

이번에 넘어가는 국경이름은 peace arch, 이름하여 평화의 배.

국경 너머로 보이는 태평양 바다 위에는 한가로히 몇 척의 배들이 보였다.

저 바다를 따라가면 우리나라 동해가 나오겠지.

 

시애틀로 내려가는 하이웨이 풍경은 캐나다와 그리 다르지않게 상가와 몰들이 이어져 있고

간혹 주택들이 보이는데 겨울 나무들은 볼 수 없었다.

시애틀 시내로 들어가는 길, 다운타운을 지나가면서 불빛에 반짝거리는 마이크로 소프트 간판을

보니 이곳이 그 유명한 시애틀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들이 시애틀 관광을 오면 스타벅스 커피 1호점을 찾고 보잉사도 보고 무슨 타워도 본다고 하였다.

그러나 우리가 선택한 곳은 시애틀 바닷가였다.

우리가 찾아간 아침 바다에는 바람이 많이 불어 파도가 몰아쳤다.

지인과 어린 시절 같은 동네에 살았던 남편은 바닷가 주변 풍경이 자유공원 아래 모습과

닮았다며 어린 시절 추억의 고향으로 돌아가 한참 이야기를 나누었다.

학교 다닐 때 걸어 다닌 이야기

선생님들에게 벌 서던 이야기

 

이민와서 십 년 만에 고향을 찾아갔지만 모든 것이 달라지고 돌아올 때 인천공항에서 내려다

보이던 고향이 너무 서글퍼서 남편은 이제 다시는 고향에 가고싶지 않다고 하였다.

캘거리를 떠나와 밴쿠버에서는 고향 이야기를 별로 하지않던 그가 시애틀 바닷가에서 고향의

한 조각 파도를 보았을까.

끝도 없이 이어지는 고향 이야기에 커피잔은 식어 버리고 바다 위로 훼리호는 떠나는데 정지용의

향수가 떠올라 우리는 파도가 부서지는 바닷가를 거닐었다.

바닷가를 거닐면서 향수 노래 몇 구절을 흥얼거리니 나도 모르게 시상이 떠올랐다.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이 휘돌아 나가고,
얼룩백이 황소가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질화로에 재가 식어지면
비인 밭에 밤바람 소리 말을 달리고,
엷은 졸음에 겨운 늙으신 아버지가
짚벼개를 돌아 고이시는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흙에서 자란 내 마음,
파아란 하늘빛이 그리워
함부로 쏜 화살을 찾으려
풀섶 이슬에 함초롬 휘적시던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시애틀 바닷가

 

시애틀 바닷가에 서면

파도소리가 심장이 되어 떨려온다

어린 날 송도 바다 거닐던

조개 고개 무덤가

한 송이 산수유꽃으로 피어나던 어린 소녀

밀물이 다가오던 그 바닷가에서

엄마를 부르며

두 손을 내저었을 그 아이

내 살던 고향이 저 바다 끝으로 보이는데

갈 수 없어서

그래도 가야할 내 고향이

바닷가 언덕에 서있는데

스타벅스 일 호점도

태평양 내려다 보인다는 마린 타워도 뒤로한 채

조용히 걸어보는 시애틀 바닷가.

 

 

(4)로키 눈꽃 피는 그 길에서

 

캘거리로 돌아오는 길 하이웨이 양 옆으로 눈꽃이 피어났다.

눈꽃을 바라보니 어느 시인의 겨울저녁이라는 시가 떠올랐다.

 

'유리창으로 눈이 내리고/ 저녁 종소리 길게 울려온다./ 집은 잘 정돈되어 있고./ 여러 사람을 위하여 상이 차려져 있다,/ 어두운 길을 방랑하던 많은 사람들이/ 문 앞에 와 멈추어 선다./ 지구의 서늘한 수액(樹液)으로부터/ 은혜의 나무가 금빛으로 피어난다./ 방랑자는 조용하게 안으로 들어온다./ 아픔이 문지방을 돌로 굳혔다./ 탁자 위 맑은 밝음 가운데,/ 빛나고 있는 것은 빵과 포도주이다.'

 

 

여행은 다시 돌아오기 위하여 한다는 말을 떠올려보면서 한 해를 뒤돌아 보았다.

너무나 빨리 가버린 시간들이 아쉬워 바라다보는 창밖에 은혜의 눈꽃 나무가 환하게 웃고 있었다.

건강을 주셔서 이렇게 여행할 수 있고 어디론가 떠나서 반가운 고향 친구들을 만날수 있고 아름다운 자연을 보면서 감동할 수 있고 그 느낌을 전할수 있는 것이 은혜가 아니고 무엇이랴.

 

잘 달리던 차가 골든을 앞두고 멈추었다.

줄줄이 꼬리를 문 자동차들의 행렬을 바라보면서 큰 사고가 아니기를 바랬지만 언덕 아래로 떨어져 반 토막이 난 트레일러를 보면서 저절로 기도하였다.

 

밴쿠버에 가서도 머릿 속에는 내년에 출판되는 동인지 생각이 맴돌았다.

결국 머릿 속에 든 생각은 말로 나오는 법.

반가운 지인을 만나 저녁 식사를 하다가 동인지 후원금 모집 이야기를 하게 되었고 결국 후원금

수표를 전해 받았다.

우리와 함께 저녁 식사를 나눈 지인은 밴쿠버에서 홍삼과 버섯 사업을 하시는 분이시다.

언제나 나누기를 즐기시고 어려운 사람들을 도와주시는 그분은 이번에도 한국 방문을 하였다가 황창연 신부님이 계시는 생태마을에 도네이션을 하였다고 한다.

언젠가 황신부님이 아침 마당에 출연하여 아프리카 자이레에서 봉사하시는 수녀님들에게 닭장을 지어주고 잡은 닭을 보관하는 냉장고와 기사가 딸린 포크레인 몇 대를 택배로 보내주었다고 하셔서 감동어린 느낌으로 웃었던 기억이 난다.

 

저녁을 먹으면서 그분은 어머니 장례를 치루고 돌아오면서 유품 몇가지를 가져왔다고 하면서 사진을 보여주셨다.

그중에는 돌아가신 아버님이 평양 을밀대에서 친구들과 찍은 사진.

중국 심양에서 찍은 사진등이 있었는데 그곳을 직접 찾아가 똑같이 아버님과 같은 포즈로 찍은 사진을 보여주셨다.

그러면서 남은 생애 부모님에게 못다한 효도를 하는 심정으로 어려운 사람들에게 나눔을 하겠다고 말씀하시는 그분 표정에서 굳은 결의와 남은 삶을 대하는 각오가 결연함을 볼 수 있었다.

나눔의 실천을 몸소 하시는그분을 나는 감히 Great Business Man-대사업가-라 부르며 존경한다.

 

 

한 해를 돌아보면 아쉬움과 회한이 교차되어 얼굴 뜨거워지는 장면도 보이지만 그래도 최선을 다하며 살아온 지난 시간들에게 감사할 뿐이다.

은혜의 나무가 은빛으로 피어나는 새해 아침에 차마 잊지 못하는 그곳의 고향을 그리워하며

 

새로 주신 귀한 시간들의 노트에 또 다른 은혜의 시간을 엮어 보련다.

 

 

♣ 신금재 작가

서울 출생 

2001년 캐나다 이민 

[시집] 내 안의 아이, 당신이 그리울 때마다 

[전자시집] 사슴의 법칙 

캘거리 디카시연구소 

캘거리 문협, 캐나다 여류문협, 서울디카시인협회 정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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