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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충화의 식물시집, 《꽃이 부르는 기억》을 읽고 / 송재옥

유세영 기자 | 기사입력 2021/06/29 [20:22]

정충화의 식물시집, 《꽃이 부르는 기억》을 읽고 / 송재옥

유세영 기자 | 입력 : 2021/06/29 [20:22]

정충화의 식물시집, 《꽃이 부르는 기억》을 읽고 / 송재옥

나는 식물이 좋다. 예전에는 토종 식물에 대한 애정이 깊었는데 나이가 들어갈수록 잡식성이다. 보도블록 틈에 피는 개미자리에서부터 고산지대에 우뚝한 주목까지 좋지 않은 식물이 없다. 나의 식물 사랑은 언제부터였을까. 부끄럼 많이 타던 아이였던 어린 시절 혼자서 화단에 핀 꽃과 나무들의 이름을 다 알아내서 불러준 걸 생각하면 본격적인 관심은 아니었어도 언제부터랄 것 없이 그저 좋아했지 않았나 싶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글을 쓸 때도 꽃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인터넷이 없을 땐 도감으로 익히던 식물들을 컴퓨터 시대가 되면서는 식물 카페 등에서 정보를 얻었다. 그러다 스마트폰이 나오면서부터는 SNS가 대세가 되었다. 그래서 인연이 된 시인이 있다.

농촌진흥청 국립원예특작과학원 인삼특작부에서 식물해설가로 일하면서 카카오스토리에 식물 이야기를 연재하는 정충화 시인이다. 오랫동안 소식받기를 하던 차에 그가 작가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친구 신청까지 해서 SNS 교류를 하고 있다. 책이 나오면 꼭 챙겨서 보내주는 시인이 고마워서 어떻게 보답할까 생각하다가 짧게나마 감상문을 써 보기로 했다.


 

시집과 산문집 그리고 시화집(김정희 시인의 시와 정충화 시인의 사진이 결합된 시화집)까지 다양한 책들을 접했는데 시든 산문이든 사진이든 그의 손이 미친 예술품에는 군더더기가 없다. 멋을 낸 흔적이 없이 담백하고 순수하다.

이번에는 식물시집을 보내왔다. 달아실에서 펴낸 《꽃이 부르는 기억》이다. 예순 하고도 몇 해를 더 산 시인이 서른부터 본격적으로 식물을 사랑하게 되었다니 식물과 함께 한 세월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다소 생소한 식물시집이라는 표제가 전혀 어색하지 않은 이유도 평소에 식물을 아주 많이 사랑하는 시인을 잘 알기 때문이다.

역시 이번 책도 표지부터 남다르다. 녹색 바탕에 여백의 미를 한껏 살려서 편안하게 눈이 간다.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책을 펼치는데 사진에 심취한 세월을 보낸 그의 작품답게 보기 좋은 꽃 사진들과 함께 꽃에 대한 시 한 편씩을 넣어서 꽃과 함께 시를 읽는 낭만을 누릴 수 있게 했다. 계절 별로 1, 2부는 봄꽃 시로 채우고 3부는 여름 꽃, 4부는 가을과 겨울 꽃으로 나눈 작품이 여든한 편 실려 있다. ‘내 일생의 벗이자 스승인 뭇 풀과 나무에게 이 보잘것없는 시집을 바친다’는 시인의 말만 봐도 시인의 성향을 어느 정도 파악할 것이다. 푸나무들은 스승으로 받들고 시인이 쓴 책은 보잘것없는 것으로 낮은 마음을 보여준다. 〈변산바람꽃〉을 시작으로 해서 동백의 〈낙화〉로 끝내는데 책을 잡자마자 한 자리에서 다 읽고야 말았다. 무슨 시를 그렇게 보느냐고 핀잔 받을 일이다. 그의 시는 쉽다. 그래서 그냥 슥 읽어도 시인이 하고자 하는 말이 전달이 된다. 게다가 한 쪽에는 잘 찍은 꽃 사진이 있으니 오죽하겠는가. 하지만 어찌 그렇게 한 번 읽은 걸로 족할까. 사실은 그 시간 후로 한 편 한 편 아껴가며 책장을 넘기고 또 넘기고 줄을 긋고 접기도 하면서 책을 오염시키고 있다.


 

영춘화

콘트라베이스의 현이

겅중거리듯

낮은 음색으로 열리는

도입부

도돌이표도 없이 반복되는

계절의 악장

비로소 시작되는

봄의 서사

개나리보다 먼저 피어서 봄 인사를 하는 영춘화를 도돌이표도 없이 반복되는 계절의 악장이라고 표현했다. 시인은 클래식 음악 감상에도 조예가 깊은 사람이다. 그의 시에 음률이 빠질 수 없다. 꽃을 좋아해서 계절에 피는 꽃을 찾아다니곤 하는 나여서 책장을 넘기면서 내가 만난 영춘화를 떠올리기도 했다. 제비울미술관 담에 커튼처럼 늘어졌던 영춘화랑 길상사를 밝히던 귀여운 등불 그리고 우리 동네 초등학교 화단의 꽃까지 떠올리며 다음 장을 넘겼다.


 

성찬盛饌

-꽃다지

논둑마다 푸짐하게 차려진

봄 한 상

아지랑이가 수저를 드는

나는 방금 선시 한 편을 읽었다. 아지랑이의 성찬을 나도 수저 하나 가지고 가서 얻어먹고 싶다. 봄 아지랑이가 피어오르는 듯 아뜩한 현기증도 난다. 이어서 동강할미꽃, 매실나무 등등 봄꽃들이 줄을 잇는다. 평소에 말수가 적고(만나 본 적은 없지만 그의 글에서 느낀) 점잖은 그의 유머 감각은 어쩐지 고급스럽다.


 

주말을 집에서 보내고

돌아와 보니

숙소 뜰 앞 화단에

홀아비꽃대가 꽃 모가지를

쑥쑥 뽑아올리고 있다.

저들도 나처럼 외로웠던지

한자리에 옹기종기 모여

키재기를 하고 있다

이틀 사이에 이곳은

홀아비판이 되어버렸다

아이쿠, 이를 어쩌나. 우리 동네 와룡산에는 옥녀꽃대가 군락으로 피는데 그 동네로 보내야 하나. 잠시 나는 혼란을 겪으며 꽃향기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선운사 앞뜰에

불두화가 흐드러지게 피었습니다

보살네들 발걸음이 분주한

오월 절 마당에서

수많은 부처가

푸른 이마를 빛내며

잘 익은 볕을 찬 삼아

공양 중이십니다

큰법당 안 부처님이

부러우셨는지

연신 엉덩이를 달싹거립니다

여행을 가면 꼭 부근의 사찰을 찾아 거닐다 온다. 불두화가 필 무렵이면 사찰 뜰의 꽃에 반하곤 한다. 꽃송이가 크고 환해서 공원에서도 심심찮게 만나는 꽃이지만 그 느낌은 확연히 다르다. 사찰의 불두화는 그냥 꽃이 아니라 출가승처럼 느껴져서 나도 모르게 마음 깃을 여미곤 한다. 시인도 나처럼 그런가보다. 불두화가 늦봄 볕을 받고 핀 모습을 익살스럽게도 큰법당의 부처님도 부러워서 엉덩이를 달싹거린다고 썼다. 그러다 부처님이 화내시면 어쩌냐고? 그럴 리가. 이런 메타포도 이해 못 하신다면 부처님이 아니지. 빙그레 웃으며 봄꽃들의 향연에 빨려들다 보니 어느새 봄의 끄트머리에 왔다.


 

오월 바람이

갈아놓은 청록을

붓에 듬뿍 적신다

이윽고

필세를 모아

일필휘지로 휘갈기는

행서체의 결구들

그 끝에서

난만하게 피어나는

봄의 자구字句들

중천에 걸린 볕이

꾸욱

낙관을 찍는다

지금 글을 쓰고 있는 내 앞에는 붓꽃 그림이 한 점 걸려있다. 수필 스승님이신 손광성 선생님께서 “송재옥은 붓꽃을 닮았어.”라시며 그려주신 거다. 붓꽃을 걸어두고 매일 바라본 세월이 스무 해도 더 되었다. 붓꽃은 나의 꽃이라고 우기고 싶다. 그림을 볼 때마다 생각한다. 선생님께서 붓 든 손을 놓지 말라는 뜻에서 닮았다고 하셨을까. 붓꽃처럼 청초한 ‘오월의 신부’(손광성 선생님의 수필에 표현한 붓꽃) 같아서일지도 모른다는 착각도 하며 행복해 한다. 시인은 일필휘지로 휘갈기는 행서체의 결구들 끝에서 봄의 자구들이 피어난다고 했다. 붓꽃을 모르는 사람들도 시를 읽으면 꽃봉오리가 먹물 적당히 머금은 붓 같다는 것을 떠올릴 것이다. 꽃붓으로 일필휘지하면 어떤 획이 나올까. 상상만 해도 보랏빛 잉크가 확 번져서 내는 꽃향기에 꽃멀미가 난다. 참깨 범부채 털별꽃아재비 등등 내가 걸었던 꽃길과 함께 시를 읽다보면 여름도 지나 가을이 깊다.


 

지구에 존재하는 모래알보다

천공에 떠도는 별의 수효가 더 많다던가

그중 단 하나도 들여다볼 수 없는

그 캄캄한 무량수를 들먹이느니

지금 내 망막에 빛무리를 앉히는

꽃이나 헤집겠다

시월 산비탈마다

황금빛 성채를 쌓은

산국

저 무량한 빛의 아우라에

휘감기고 말겠다

가을이면 내가 자주 다니는 와룡산에도 산국이 많이 핀다. 시를 읽으며 나는 와룡산도 거닐고 한때 산국을 보러 갔던 강정보 강가와 계명대 교정도 내 앞뜰인 양 데리고 온다. 산국이 피니 구절초랑 개쑥부쟁이도 덩달아 향기를 낸다. 어느새 들국화들이 서리를 맞고 담쟁이덩굴은 무성하던 잎이 다 지고 겨울비가 내리더니 이윽고 동백나무가 떨어뜨린 꽃들이 바다를 이루고 있다.


 

비움은

소멸이 아니라

새로운 탄생을 위한

도정이다

생은

버리고 나서야

비로소 완성되는

결구다

시인의 정신세계가 여실히 드러나는 마지막 시이다. 나 또한 이즈음엔 가벼워지고 싶어서 눈을 감고 마음을 비워보려고 생각 없이 앉아 있곤 한다. 비운다는 게 소멸이 아니기에 다음 계절을 기다리며 오늘 지금 여기에서 행복할 수 있는 것이다. 마음 같아서는 여든한 편의 시를 다 소개하고 싶었지만 이 중에서 비우고비우고 추려서 몇 편만 거론하는 일도 쉽지 않았다. 좋은 글을 읽고 나면 충만해진다. 비움을 말하고는 바로 채움을 말하니 어불성설 같지만 비운 마음에 들어서는 시의 향기가 마치 산길을 걸을 때 훅 하고 지나가는 어떤 꽃향기들 같다. 어질증을 일으키다가 꿈결인지 생시인지 혼돈의 시간을 지나는 느낌이랄까. 아, 이 짧은 문장력을 어찌할거나.

뒤표지에는 국립세종수목원장인 이유미 씨와 한국식물분류학회장이신 현진오 박사의 추천사가 있다. 이유미 씨는 '시인의 글 곁에 내 마음들도 하나씩 따라 적어가노라면 우리도 어느새 시인이 되어가는 길목'에 들어선다 했고 현진오 박사는 '식물을 문학 소재로 다루어준 시인에게 감사드린다'고 했다. 이제 시집의 에필로그에서 한 문장 빌려오는 걸로 글을 끝낸다. 나 역시 시인과 같은 마음으로.

‘지금도 휴일에 식물 탐사를 하러 나설 때마다 오늘은 또 어떤 식물을 만나게 될까 싶어 가슴이 두근거린다. 삼십수 년을 만나고도 이런 감정이 한결같이 유지되는 존재가 세상에 또 어디 있으랴?“

 

 

 

 

 

 

 

 

♣ 송재옥 작가 

순수문학 2000년 수필 등단 

중랑문인협회회원 

한국식물연구회회원 

제1회 평사리문학상 

방송대 통문제 장원 

중랑문학 대상 등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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