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카시집, 《우주정거장》을 읽고 / 송재옥
그런데 시작이 문제였다. 디카시 세계에 첫발을 디디고 나서 중독이 되고 말았다. 앉으나 서나 누우나 찍어둔 사진이 머릿속에 떠 다니며 어떤 메타포로 하고 싶은 말을 해야 하는지 온통 디카시 생각뿐이다. 그렇게 새로운 문학 세계에 빠져 지낸지 한달이 조금 넘었다. 그리고 오늘 디카시 문예 운동에 애쓰시는 이시향 시인의 디카시집을 한 권 받았다. 《우주정거장》 ‘애지시선 099’이다. 우주정거장이라는 제목이 특이해서 무슨 이야기가 담겼을까 하는 호기심으로 얼른 책장을 열었다. 총 3부로 구성이 되어 있다. 각 ‘밥줄’, ‘잔인한 사랑 법’, ‘앞에 벽이 보일 때’이다.
그렇다고 시인이 현실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작품, 〈그믐달〉을 보면 용접 불꽃이 그믐달처럼 가늘고 둥글게 튀는 모습을 기가 막힌 사진으로 찍어서 삶의 고달픔의 이면에서 불꽃을 별로 환치 시켜서 별을 만들며 일 할 수 있어 참 좋다고 시를 쓴다. 좋은 사진과 함께 초승달로 시작해서 그믐달로 뜨는 일생을 단 석 줄에 녹여낸 진액 같은 디카시이다. 2부 ‘잔인한 사랑법’에도 18편의 디카시가 실려있다. 사람살이에 빼놓을 수 없는 주제가 사랑이다. 이시향 시인 또한 이 사랑을 놓칠 리가 없다. 〈어머니〉라는 작품을 보면 활짝 웃고 있는 어머니 사진과 단 두 줄의 언술이 놓여있다. 아흔두 살 늦겨울 햇살이 밝게 웃는다는 짧은 글을 짧게 읽을 수 있는 독자는 없을 것 같다. 다음 장을 넘기려면 호흡이 길어진다. 밝음 속에 녹아 있는 일생의 짧고도 길었던 애환까지 읽힌다. 저 웃음은 해탈의 경지 혹은 허무의 표상이 아니겠는가.
첫사랑이 봉숭아 한 무더기의 섬이 되어서 가슴을 적시는 〈섬〉을 비롯해서 어느 한 편인들 예사로 슥 넘길 수 없다. 3부에는 스무 편의 디카시가 실려있다. ‘앞에 벽이 보일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뛰어 넘기에는 너무 높고 버거운데 걸음을 멈출 수 없을 때, 뭔가를 열심히 하는데 제자리걸음을 걷고 있는 꿈을 꾸고 나서 무거웠던 아침처럼 인생에는 자주 벽이 나타나곤 한다. 시인에게도 그런 벽이 없을 리 없다. 무겁고 혹은 어두운 삶을 선명한 사진과 철학적인 단상으로 이어서 완성된 디카시로 선을 보인다.
〈먼지〉를 감상할 땐 광활한 우주안의 모든 것이 먼지 같은 존재이다. 독자들은 먼지와 먼지 사이 행간에서 울먹이기도 하고 위안도 받을 것이다. 겨우 먼지도 안 될 존재로 이토록 애쓰고 살지만 모든 존재는 그러하니 쓸데없는 욕심을 비우고 잘 살아야겠다는 마음이 우러난다는 말이다. 디카시의 창시자이신 이상옥 선생님의 추천사를 보면 이시향 시인은 아동문학가로서 사진에 조예가 깊다고 했다. 울산 지역을 중심으로 디카시 문예 운동을 펼치는 리더라고 한다. 좋은 디카시를 쓰면서 디카시라는 신생 문학 장르를 보급하고 알리는 역할자로서 충실한 시인의 작은 책 한 권을 읽으면서 그저 고맙다는 생각이 앞섰다. 아마추어 디카시인으로서 처음 갖게 된 디카시집이 무척이나 소중하다. 디카시를 좋아하는 독자나 나처럼 아마추어 디카시인 혹은 전문 디카시인들에게도 이 책을 강력히 추천한다. 전달력이 좋은 디카시는 제목과 사진과 언술의 조합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 하는 표본이 될 것 같아서다. 아울러 선물하기에 아주 좋은 책이라는 생각도 덧붙인다. 가볍게 들고 가볍게 읽을 수 있다. 하지만 방심하면 안 된다. 가슴을 쿵 울리는 일침이 곳곳에 심어져 있는 예쁘고도 깊고 넓은 사유의 뜰을 거닐고 싶다면 서점으로 가 보시길 권유한다.
♣ 송재옥 작가 순수문학 2000년 수필 등단 중랑문인협회회원 한국식물연구회회원 제1회 평사리문학상 방송대 통문제 장원 중랑문학 대상 등 수상 ![]() <저작권자 ⓒ 시인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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