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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왕암 백고래 / 예시원

유세영 기자 | 기사입력 2024/12/26 [11:48]

대왕암 백고래 / 예시원

유세영 기자 | 입력 : 2024/12/26 [11:48]

대왕암 백고래

                                         예시원

 

 방어진 포구 골목길 안쪽으로 들어가면 세월의 흔적처럼 낡은 ‘선미식당’ 간판이 눈에 띈다. 선원들이 피로에 지친 표정으로 식당을 들어가지만 나올 때는 흐뭇한 얼굴들이다.

 “아지매 밥 좀 주이소, 그라고 오늘은 고등어 좀 내지 마이소 인자 질린다”

 새벽 동이 트기도 전에 나와서 불을 피우고 음식 장만을 하던 60대 여주인은 특유의 목청을 높인다.

 “언제는 내 음식 맛있다고 하더이만 오늘 무슨 일 있었나? 바다 사람들이 생선 안 묵으머 뭐 묵노?”

 장화를 질퍽거리며 들어온 부두 노동자는 웃으면서 손사래를 친다.

 “됐심더 대충 주이소, 그냥 해본 소리요. 하도 뱃일을 오래 했더이, 짠 내만 맡아도 구역질이 날라 캐서 그러이더”

 가자미 배 동창호 기관사로 일하는 박용만이었다. 용만은 냉장고에서 직접 소주를 꺼내 맥주잔에 가득 붓고, 숨도 안 쉬고 마셨다.

 “박 기사도 인자 술 좀 줄이지, 아침부터 무신 소주를 물마시듯 하노?”

 박용만이 태어난 곳은 방어진 반대쪽에 위치한 좁은 골목길 같은 장생포다. 어릴 때부터 아버지를 따라 다니며 뱃일에 익숙해질 무렵, 선원이 될 결심을 하고 해양고등학교에 진학을 했었다. 선미의 남편 형도의 십 년 아래 해양고등학교 후배였다. 두 사람은 한 때 라스팔마스에서 원양어선을 함께 타기도 했었다.

 “형님은 오데 갔는교? 요새는 통 부두에 안 보이데? 어데 아픈교? 웬만 하머 통통배 그거 버리고 우리캉 가자미 배나 같이 하시지 에이그”

 “말도 마라 내가 그놈의 인간, 통통배 몰고 댕기는 바람에 챙피시럽다. 잘나가던 양반이 하필이머 통통배가 뭐고”

 선미는 보글보글 끓는 구수한 된장찌개를 탁자에 올려놓으며 왁살맞게 내질렀다.

 “고마 하시이소. 내가 아침부터 벡지로 이야길 꺼내갖고 형수 속 뒤집어놨네”

 선미는 남편이 두 명이었고, 자식도 아들 두 명인데 모두 다른 남편의 자식이었다. 고향은 기장이었고, 부산에서 잠깐 살다 김해의 방그래 빵공장에 근무할 때, 전 남편 곽종갑을 만나 결혼했었다.

 운명의 장난이었다. 종갑을 만나기 전에, 지금 남편 조형도와 뜨거운 열애를 하던 사이였지만, 선미를 좋아하던 종갑이 아침 출근 시간에, 선미를 태운 봉고차를 몰고 그대로 강원도 설악산까지 도망갔었다.

 이미 사달이 난 뒤였다. 선미는 각다귀패 같은 종갑에게 생몸살 앓듯 시집가고 말았다. 그 전에 이미 형도와 사랑을 나눴던 터라, 억울한 건 오히려 곽종갑이겠지만, 종갑은 선미를 차지했다는 기쁨으로 좋아 죽을 지경이었다.

 요즘 같으면 미친개에게 물린 셈 치고 다른 길을 갔겠지만, 그땐 그런 일이 생기면 여자들에겐 치명적인 결함이 되었고, 꼼짝 못하게 옭아매는 족쇄가 되던 시절이었다. 조형도와 곽종갑이 중학교 동창이었고, 고등학교도 함께 해양고등학교에 다니다가 곽종갑은 중퇴했던 친구 사이였다.

 “먼저 남편도 냉동 기술자로 잘 나가더만, 지 버릇 개 못 준다 카더이, 천지사방으로 출장 댕기면서 가는 데마다 여자가 있고, 봉고차에 데불고 돌아 댕기쌋더만, 일찍 죽어삤어”

 선미는 자식들 때문에 과거를 숨겼지만, 나이가 들면서 비루한 옛 이야기들을 습관적으로 자주 했다. 형도는 선미가 치매가 온 게 아닐까 걱정되었다.

 “아지매 와 카는교? 아~ 들 앞에서, 자식들 들으머 우얄라꼬 그랍니꺼?"

 형도의 후배인 뱃사람들이 거들며 제지를 시켰다.

 “와? 내가 못 할 말 했나? 쟈들도 인자 다 컸다. 저거 아부지가 한 짓을 모리는 줄 아나?” 

 “아재가 그래도 젊었을 적에 의리 하나는 있었지예. 우리가 얼마나 도움 마이 받았는지 아십니꺼? 아지매도 아실 긴데요”

 박용만 기관사가 밥 한 그릇을 된장찌개와 함께 비우고, 소주를 한잔 더 했다.

 “누구? 지금 형님 말이가? 전에 그 자슥 말이가? 지금 형님은 의리 하나는 끝내줬지. 먼저 간 그 자슥은 사람도 아이라. 형수한테는 미안한 이바구지만. 아이제, 내가 또 벡지로 말을 했구만. 치아라 고마, 치아고 밥이나 묵자. 소주나 한잔 따라봐라”

 용만은 맥주잔에 가득 채운 소주를 숨도 쉬지 않고 들이켰다. 목마를 때 마시던 막걸리처럼 시원했다.

 “그놈 자슥 첨에 뭣이 심상찮어가, 형도 형님이 조심해레이 주의를 줬는데도, 손가락 하나를 뿐질러 묵더만 그 다음엔 팔띠기를 뿐질러 묵고, 그래도 정신 몬 차리더만 왼쪽 달가지 뿔라묵고, 오른쪽 달가지까지 다쳐서는 쩔뚝발이(절름발이)가 되더만, 쯧쯧 결국 그리 험하게 가뿠어. 너거도 인마 조심 하거래이, 남자는 자고로 세 뿌리를 조심해야 되는 기라”

 제일 젊게 보이는 사십대 초반의 선원이 용만에게 히죽거리며 물었다.

 “박 기사님, 세 뿌리가 뭡니꺼? 인삼 뿌립니꺼 도라지 뿌립니꺼?"

 용만은 숟가락을 들어 탁자를 세게 치며 버럭 소릴 질렀다.

 “이 자슥이 도라지 묵고 돌았나? 니 진짜 몰라서 묻나? 입 안에 혀뿌리, 손목때기 손뿌리, 거시기 조뿌리”

 어느덧 새벽 일출은 사라지고, 희붐한 해무가 바다로부터 밀려와 쓰나미처럼 부두 전체를 덮치고 있었다. 이물에서 고물까지 대롱대롱 매달린 집어등 불빛을 밝히며, 어판장에 들어왔던 동력선들이 한척 두 척 취침에 들었다.

 경매를 하느라 부산스럽게 오가던 선주와 활어차들이 떠났고, 다시 어판장은 쓸쓸한 적막감이 맴돌았다. 새벽녘 피로감에 초췌한 얼굴이던 뱃사람들은 아침부터 들이닥쳐 조반과 막소주를 들며, 걸쭉한 썰 풀이에 힘을 얻어 어기찬 뱃사람들로 되돌아왔다.

 뱃사람들이 하나 둘 휴식을 취하러 집으로 향하던 시간에, 잔뜩 어깨에 힘이 들어간 형도가 선미식당에 둥치를 밀어 넣었다. 썩어도 준치라고, 한때는 부산 남포동 일대를 누볐던 폼이 나이가 들어도 여전히 남아있다.

 “동수 아부지, 새벽부터 오데 갔다 오는교? 통통배 꺼실고 나가봐야 소득도 없시미 뭐 할라고 힘 빼는교?"

 선미는 요즘 들어 축 쳐져서 다니는 형도가 쓸쓸해 보여, 근심 어린 눈으로 말을 던진다.

 “동수는 출근했나? 아이고 요새는 어판장도 예전 같지 않네. 기웃대 봐야 건질 것도 없고. 소주나 좀 도고, 동창호 아~ 들은 왔다 갔나?"

 “방금 아침 묵고 놀다가 집에 갔심더”

 형도는 어판장에서 경매 끝에 가격을 제대로 못 받은 생선들을, 대야로 한 가득 싣고 와서 가게 안으로 들였다.

 “아이고 동수 아부지, 오늘도 돈 안 주고 그냥 얻어 왔는교? 너무 그라지 마이소. 한두 번도 아니고예"

 “공짜 아이다. 돈은 다 주고 가 온다. 형님 그냥 가이소 해도, 적당한 값은 다 쳐주고 덤으로 몇 마리 더 얹어 가져오는 기지"

 형도는 아침상을 차려주기 위해 돌아선 선미를 쳐다보니, 나이는 들었어도 아직 엉덩이가 빵빵한 게 처녀 때 몸매가 살아있었다.

 “우리 선미 엉덩이는, 옛날부터 오리 궁뎅이라서 늙어도 빵빵한 갑다. 우리 간만에 사랑 한번 어떻노?"

 “와 이 카는교? 다 늙어 가꼬. 밥 안 묵고 싶은 가베요? 이 양반이 거죽은 다 늙었어도 남자라꼬. 젊으나 늙으나 똑 같은 기라. 며느리 볼 나이가 돼도 그라머 우짜노?"

 형도는 소주를 입에 탁 털어 넣고, 슬쩍 선미를 뒤에서 콱 안아주었다. 순간 피로감으로 노구라져가던 육신에 불끈 힘이 솟았다.

 “옴마야, 이 양반이 미친나? 내 지금 손에 칼 들었소, 안 떨어지나? 오데서 아침부터 들이대노? 비빔밥 묵고 싶으머 묵고 싶다고 하던가? 손님들 들어 오머 우얄라꼬 이라는교”

 형도는 입맛을 쩝쩝 다시고, 식탁으로 되돌아와 앉았다.

 “당신은 지금 나이 타령 하지 말고, 이런 남편이 있다는 것만 해도 행복한 줄 알아라. 지금도 마누라 안아줄 수 있다는 게 얼매나 복인데”

 “인자 며느리 볼 나이에 그라는교? 내사 챙피시럽어 죽겄다”

 “아이고 참, 언제는 잠자리에서 당신이 최고라꼬 하더만”

 “누가 들어머 우얄라꼬? 아무 때나 집적거린다꼬 다 되는 줄 아요? 남자들은 지 밖에 몰라. 그리 힘이 남아 돌머 통통배 꺼실고 뱃놀이나 하지 말고, 동창호 아~ 들 하고 저 먼데까지 나갔다 오든가"

 선미의 핀잔에 짜증도 나고 겸연쩍던 형도는 버럭 소릴 질렀다.

 “그 배는 원래 내건데, 인자 와서 그 배 선원 생활 하라꼬 그카나? 말 같지도 않은 소릴 하고 있어"

 “아이고 참 내 정신 보래, 미안 하요 내가 괜한 소릴 했네. 고마 아침 자시소”

 갈수록 신산한 바닷가의 삶은, 세월이 흐를수록 나아지기는커녕 팍팍한 쇠락의 길로 접어들고 있었다. 예전엔 노련한 뱃사람들이 물때만 잘 맞추면, 중형동력선 뿐만 아니라 조그만 통통배들도 고기 귀한 줄 모르던 시절이 있었다.

 어군탐지기에 고성능 엔진까지 달아도 갈수록 올라가는 유류 가격과, 선박 해상장비들의 가격을 감당할 수 없었고, 바다를 떠나는 사람들이 늘어나서 해외에서 인력을 수입해서 일하는 실정이었다.

 형도는, 그물만 던졌다 하면 만선 깃발을 날리며, 기고만장하게 항구로 돌아오던 시절이 그리웠다. 그날은 포구의 횟집마다 흥청거렸고, 뱃사람의 아내들은 밤마다 휘파람을 불었다. 총각이나 홀아비 뱃사람도 항구의 여자들과 밤을 보낼 수 있는 호시절이었다.

 형도는 새벽에 돌아온 뱃사람처럼 한낮에는 다른 소일거리가 없어, 아침밥과 소주로 배를 채우면 야간근무자처럼 한잠 자는 게 일과 중 하나였다. 선원생활을 오래 해왔던 습관이다.

 

 동수가 다니는 조선소의 불빛도, 조선업 불황의 여파로 시련을 거친 후, 해외수주가 회복돼 어느 정도 일감 확보가 된 상태였다. 요즘은 잔업보다 정상근무만 하는 날이 많았다.

 어느덧 망개산 너매로 붉으레미한 노을이 널퍼지고 있을 때, 형도는 둘째 아들 동수와 시원한 물회와 소주잔을 기울이고 있었다.

 “봐라 동수야, 니 저기 뭔고 아나?”

 “에이 아부지는 노을이지 뭡니꺼? 제가 뭐 초등학생인 줄 압니꺼?”

 “그 기 아이고 자슥아, 저게 바로 천 년 전부터 쭉 이어지고 있었던 거라. 언제부턴지 이놈의 장생포와 방어진 바다를 잃어버린 것 같은 기라. 니가 전문학교 졸업하고 조선소 취직해서 억수로 기분이 좋더라꼬”

 “어무이가 그 카던데 아부지 젊었을 때 멋있고, 의리도 있고 깃발 날렸다 카던데예"

 형도는 노을이 가득 담긴 소주잔을 ‘카이’소리가 나도록 입에 털어 넣고 동수를 쳐다니, 아직 어린애로만 알았던 동수도 제법 청년이 다됐다. 군대까지 갔다 왔으니 짝 맞춰 장가를 보내야 할 나이가 된 것이다.

 “너거 엄마가 그카더나? 언제는 내보고 도라이라꼬 카더만. 가락은 무신 가락, 엿가락도 아이고 우동가락도 아이고”

 “그건 어무이가 농담으로 한 소리지예, 엄마는 아부지 없었시모 못 살았을 기라고 아부지 자랑을 하시던데예, 아부지 젊었을 때 해기사복 입은 사진 보니까 억수로 멋있던 데예”

 “너거 엄마가 참말로 아부지가 좋은 갑제? 동수 니도 아부지가 좋나?”

 “내는 아부지가 좋심더. 어무이도 좋고예. 어릴 때는 아부지 원망 마이 했지만 무슨 사연이 있겠지 했심더”

 그랬다. 곽종갑과의 악연과 선미와의 피맺힌 이별의 시간으로, 가슴이 다 녹아버리는 줄 알았던 형도는 모진 시간을 견디며 보냈었다.

 뒤늦게 종갑의 아들인줄 알았던 동수가, 자신의 핏줄임을 알게 되었을 때의 심정은, 칼로 심장을 베인 것 같은 아픔을 느꼈고, 동시에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기쁨도 느꼈다.

 라스팔마스에서 돌아온 형도는, 김 사장이 운영하던 가자미 배를 인수키로 하고, 원양어선 타며 번 돈과 몇 년간 저축해놨던 돈을 탈탈 털어 대금을 지불하고 계약서를 작성했다. 하지만 허위로 이중계약을 작성한 김 사장의 사기행각으로 배의 소유권은 법적효력이 없어졌다. ‘삼원수산’도 실제 사장은 서울에 있었고, 김 사장이 대리로 위탁운영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형도는 겨우 통통배로 바다사람의 명맥을 유지하고 있었다. 형도가 죽이겠다고 쫓아다녔던 김 사장은, 목포의 폭력조직과 결탁한 지능적인 사기꾼이었고, 몇 번이나 폭력배들에게 죽을 고비를 넘긴 형도는 만신창이가 되어 마음을 비우고 울산으로 돌아왔다.

  결국 못 받아낼 돈이었다. 엎친 데 덮친다고 했던가. 일이 꼬이려니까 형도의 전처인 정숙이, 석구를 데리고 부산 친정에 다녀오기 위해 시외버스터미널로 가던 중, 뺑소니 트럭에 받혀서 뇌사상태였다가 병원에서 숨을 거두고 말았다. 다행히 어린 아들 석구는 가벼운 찰과상 외엔 별다른 이상이 없었다.

 형도는 그 충격으로 한동안, 매일 알코올에 의존하면서 폐인이 돼 갔다. 젊은 날 연인 사이였던 선미가 석구를 전 남편인 종갑의 아들 경수와 함께 친아들처럼 돌봐주었다. 형도와 선미는 그렇게 다시 인연이 되어 세 명의 아들을 두게 된 것이다.

 

 시간은 다시 그 낡은 액자 속으로 거슬러 올라갔다. 선미식당 기둥에 걸려있던 벽시계 바늘이 거꾸로 돌고 있었다. 선미의 머리도 어지러워지며 과거로 시간여행을 떠나고 있었다.

 지금의 방어진 항구보다 더 시끌벅적하고 활기가 넘치는 모습이다. 줄산 따라 이어진 묏봉우리들처럼 동력선들이 엔진 소리를 통통거리며 저마다 기침을 토해내고 있다.

 “야 이 자슥아, 밧줄을 그리 헐렁하게 매 놓으머 우야노 쉐키야, 배 떠내려 갔시머 우얄뻔 했노, 확 고마. 야 인마 홋줄 단디 잡어라 잘 못 하머 디진다 자슥아”

 가끔 강풍에 정박된 선박과 연결된 홋줄(로우프)이 끊기거나 튕겨져 맞으면, 중상이나 사망에 이르는 사고들이 있었다. 노련한 갑판장이나 선원들이 소리를 지르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형님, 어제 방구다방 송양하고 어데 갔던교? 오늘 본께 얼굴이 퀭하구마. 솜씨가 보통 넘는다 카던데, 행님 기(氣) 다 빨리고 온 거 아인교? 오늘 멀리까지 나가야 하는데 큰일이네"

 “이놈아 자슥이 아~ 들이 못 하는 소리가 없노? 너거 집 아재한테도 그런 소리 하나? 쪼맨한 것들이요 까분다이”

 “형님 우리도 인자 다 컸는데 알 거는 다 압니더. 우리도 이해 합니더”

 “씰데 없는 소리 하지 말고 퍼뜩 로우프나 감아올리라. 한번만 더 로우프 헐렁하게 매 놓으머 콱 디진다이"

 한 떼의 동력선들은 먼 바다로 떠날 준비들을 하느라 부산을 떨었고, 다른 한 떼의 배들은 만선의 기쁨으로 항구가 활력이 넘쳤다.

 “너거 신진호는 오늘 출항 하는가베? 물때 좋을 때 마이 잡고 오이라이. 다음 주는 바람이 마이 분다던데, 쉴 요량하고 이번 주에 바짝 땡기라”

 “형님도 고생 많았심더. 아~ 들 하고 한잔 하고 푹 쉬시이소. 근데, 웬만하머 송양은 좀 가만 두시이소. 내 얼굴 보고 좀 봐 주소”

 신진호 갑판장 덕수는 동창호 기관사 용호에게, 방구다방 송양은 침 발라 놨다고 접근금지를 요구했다.

 “야 인마, 마누라 놔두고 뭐 하러 그런 델 갈기고? 송양이 고래 잘 해 주더나? 천하에 황덕수가 뿅 갔네” 

 

 망개산 너머 소나무 가지 끝에 아침 해가 걸쳐지고, 선창가에는 울산과 타지에서 온 배들이 교차하며, 경상도 억양과 전라도 억양 등 다양한 고성들이 오고 간다.

 물때만 잘 맞으면 물 반, 고기 반이라는 동해바다는, 바다를 생업으로 잇는 사람들에겐 늘 어머니와 같은 존재이며 생명의 젖줄이었다. 울산 바다는 그들에게 피붙이 바다였던 것이다. 세상 누구도 그 바다를 뺏을 순 없었다.

 그날도 여느 때처럼 입항하는 선박의 선원들이, 포구의 식당으로 모여들어 아침식사와 해장술을 마시고 있었다. 신진호와 동창호 선원들은 대부분 출어 직전과 입항 때, 선미식당에서 끼니를 해결하고 회포를 풀었다.

 동창호 기관사 용호는, 선미의 전 남편 곽종갑과 중학교 동창이었고, 나중에 남편이 된 형도와도 친구 사이였다. 용호는 해양고등학교에 진학하지 않고 중학교 졸업 후 바로 배를 타고 있었다.

 선원이 되기 위해 선원학교를 간 학생들은, 대부분 무역선을 타고 싶었지만, 3등 해기사로 취업하면 1기사까지 가는 시간이, 해양대학교나 수산대학교 졸업생들에 비해 한참 후순위로 밀리기에, 대형 선박보다 규모가 작은 원양어선을 많이 탔다. 형도는 제복의 매력에 빠져 부산까지 갔고, 젊은 시절 한때 남포동 일대를 다니며 주먹으로 주름 잡았었다.

 “제수씨, 요게 해물된장 뚝배기 하고 소주 좀 주이소. 아이다 소주는 너거가 좀 내 오너라. 제수씨, 고등어는 여게 아~ 들이나 주소. 내는 밥 하고 국물만 있시모 되이까네. 아이고 징그러버라 나도 인자 배 그만 타고 선주나 한번 해야 될 긴데”

 용호는 다른 배에서 겨우 1기사를 면하고 기관장이 되었지만, 그 배의 선장이 수산학교를 나온 중학교 후배여서 자주 다투다가, 하선 후 동창호를 타다 보니 다시 1기사 생활을 하는 중이다.

 동창호 선원 중 나이가 가장 어린 필용이 밥 먹다 말고 자꾸만 동수를 힐끔거리며 중얼거린다.

 “근데요 박 기사님, 저 아지매 작은 아들은 저거 아부지를 안 닮고, 자세히 보이까네 형도 아재를 마이 닮았는데요”

 용호는 큰 기침을 해대며 필용을 나무랬다.

 “어허 이놈아 자슥이, 니 돌았나? 밥이나 무라 인마. 아~ 자슥들이 몬 하는 소리가 없노? 큰일 날 소릴 하고 있노?”

 용호는 밥 먹다 말고 담배를 한대 꺼내며, 선미를 한 번씩 쳐다보고 긴 장탄식 한숨만 내쉰다. 선미도 이제 중년을 넘어 노인 축에 들어서는 나이가 되었다.

 항구의 여인들은, 기구한 운명의 장난을 겪으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았다. 배 지나간 자리에 노를 젓고, 죽 떠먹은 자리에 숟가락질하기처럼, 남자는 배였고 여자는 항구였다. 서로가 침묵을 지키며 애써 모른척하며 살아갈 뿐이다.

 “제수씨도 젊었을 때 참 고왔는데 안 그런교? 까딱 했시머 내 하고도 인연될 뻔 했는데. 그때 내가 도망만 안 갔어도”

 식당 안 기둥에 걸려있던 벽시계가 또 거꾸로 돌아가고 있었다. 용호는 술에 취해 식탁에 머리를 푹 처박고 있다. 건구역질처럼 올라오는 목소리들이 식당 안을 맴돌고, 용호의 머리와 귓가에도 맴돈다.

 “아이고 머리야, 우예 좀 이상타 싶었다. 와 자꾸 글마를 안 닮고 내를 닮아가노? 아 뒷골이야”

 눈앞이 빙글빙글 도는 용호의 귓가에 대고 선미는 이상한 소리를 속삭인다. 여기서부터 갑자가 족보가 뒤죽박죽 돼버린다.

 “인자 알었나 머스마야, 그때 당신이 얼라 맨쿠로 하도 보채서, 하룻밤 방에 들였던 게 요래 가심이 아프다”

 “하룻밤 아인데, 또 있었는데”

 선미는 죽은 듯이 엎드려 있다가 벌떡 일어나 눈을 치켜뜬 용호에게 속삭인다. 용호는 무슨 소린지 이해할 수 없었고 그대로 잠이 들었다.

 “석구 아부지 말조심 하소. 죽은 석구 오마이 들으머 벌떡 일어나가 쫓아온다. 동네 소문나면, 다 늙어서 무신 챙피당할 일 있나?”

 “누가 무신 소리 한다꼬? 홀아비캉 과부캉 좋아 지낸 기 머시 흉이고? 동네서 둘이 붙여줘도 뭣할 판에 뭣이 챙피시럽노? 그때 그리 됐시머, 쟈도 내 자식인데 내가 책임 지야제”

 “이 양반이 다 큰 아~ 한테 무신 충격을 줄라꼬 그라는교? 함부레 말하지 말고 모른 척 하고 있으소.”

 쏟아지는 폭우 속에서 둥지로 들어온 형도는, 소주 뚜껑을 입으로 따고 그대로 타는 목젖을 적셨다. 가게 안에 엎드려 있는 용호를 힐끔 노려보며 기분 나쁜 듯이 중얼댔다.

 “인마 이거는 언제부터 와 있었노? 오늘 일 안 나갔나? 아이제, 일 마치고 들어 온 기가? 이 자슥 당신한테 또 찝적거리더나? 친구만 아이머 확 직이삤을 긴데, 불쌍해가 봐 줬더이 또 술 퍼마시고 자빠졌네”

 “아이고 고마 놔두소. 술 깨머 집에 가겠지요”

 그때 죽은 듯이 엎드려있던 용호가 벌떡 일어나며 옆에 앉은 형도를 쳐다보고 소릴 질렀다.

 “야 인마, 니 와 우리 마누라한테 집적거리노? 와 내 자석한테 니 아들이라꼬 소문내고 다니노? 니가 그라고도 사람이가?"

 형도는 손가락을 머리에 갖다 대고 빙빙 돌리는 시늉을 했다. 용호가 제 정신이 아닌 것 같다는 표정이다.

 “이 자슥이 이거 와 이라노? 니 돌았나? 술 묵었시머 집에 들어가서 곱게 디비 잘 일이제, 와 여서 헛소리를 해쌋노? 뭐어? 동수가 너거 아들? 이기 뭐 잘못 묵었나? 뭐어? 선미가 너거 마누라? 와 이거 오늘 돌아뿌겄네”

 선미는 길길이 날뛰는 형도를 진정시키고 쓰러져있는 용호를 일으켰다. 형도는 식탁을 발로 차며 용호에게 소릴 질렀다.

 “빨리 일나라 자슥아. 여게가 너거집 안방이가? 앞으로 인마 이거 술이고 밥이고 멕이지 마라. 이기 어데서 헛소리를 하고 말이야. 당신은 평소에 인마하고 무슨 일 있었나? 잘 해주고 친한 척하고 와 그래?”

 형도는 선미와 용호를 번갈아가며 보고 얼굴이 벌게지며 씩씩거렸다. 선미는 당황해하며 형도를 만류하고 용호를 흔들어 깨웠다.

 “아이고 와 이 카십니꺼? 나이 묵도록 장가도 못가고 요래 늙어가니까, 불쌍해서 밥 묵으러 올 때 말이라도 들어주고 했지. 우찌됐던 당신 친구 아이요?"

 “친구? 친구 같은 소리 하지마라. 당신도 요 자슥 요거 조심해야 돼. 이 자슥도 알고 보머 죽은 종갑이 하고 똑 같은 놈이라 아나? 을매나 얍삽한 놈인지 모린다. 요 새키 사람 아이다. 당신 조심 해라이”

 

 라스팔마스로 떠나던 날, 형도는 선미를 혼자 남겨두려니 마음이 놓이지 않았고, 공연히 부아가 치밀었다.

 “종갑이 그 자슥만 아니었으면 선미캉 내캉 알콩달콩 재미나게 살았을 텐데, 일찍 죽을 놈이 와 그런 못된 욕심을 냈을고”

 형도는 선미를 두고 일찍 죽은 종갑이 원망스러웠다. 선미가 종갑의 마수에 걸려 족쇄를 차고 있을 때도, 소용없는 구조신호 같은 애절한 눈빛을 보였다. 싫으나 좋으나 남의 아내, 그것도 친구의 아내가 돼버렸으니 어쩔 수 없었고, 쓰라린 상처를 간직한 채 세월을 보냈다.

 형도를 더욱 비참하게 만든 건 종갑의 죽음이었다. 형도는 종갑의 죽음에 차라리 시원하게 잘 됐다는 생각도 들었었다. 가로챈 결혼을 하고도 또 한 번 형도와 선미를 비참하게 만든 종갑이 놈을 다시 깨워서 두들겨 패주고 싶었다.

 “이럴 거면 우리 둘을 그냥 좋아하게 내버려두지, 왜 그때 그런 못된 짓을 했어”

 형도는 종갑의 장례식에서 내내 욕만 하다가 돌아왔다. 하얀 소복을 입은 선미를 꽉 안아주고 싶은 걸 간신히 참고 장례식장을 빠져나왔다. 선미의 흰 소복이, 형도에겐 자꾸만 눈부시게 아름다운 웨딩드레스로 보이는 것이다. 형도는 깊은 장탄식을 내뱉었다.

 “아아, 종갑이 이 자슥, 불쌍한 우리 선미.”

  선미는 두 사람의 남자를 알게 되었고, 두 명의 아들을 낳았다. 형도는 그런 상황이 너무 비참했고 죽은 종갑이 원망스러웠다. 두 명의 아들 중 한 명은 종갑을 너무나 빼닮았고, 둘째는 형도를 판박이처럼 닮아가고 있었다.

 “차라리 둘 다 종갑이 아들이거나 둘 다 내 아이였으면”

 형도는 라스팔마스로 향하는 뱃머리에서 그런 부질없는 생각을 하면서, 긴 뱃고동 같은 한숨을 내뱉었다.

 

 입항한 신진호 갑판장 덕수와 선원들이 해장 겸 소주를 마시러 우르르 일개 분대 병력이 들이닥쳤다. 오늘은 수확이 좋은지 어판장에서 경매 끝에 남은 고기들을 한 망태기로 직접 가지고 왔다.

 “형수, 밥 주이소. 이거는 돈 안 받을 테이까네 형님하고 아~ 들 하고 찌지 묵고 남은 거는 장사하는데 쓰이소”

 “아이고 그라머 안 되지. 한두 번도 아이고. 그라머 오늘 밥값은 그냥 줄테이까 소주도 맥주도 실컷 묵고 가소"

 “오늘은 형수님, 우리캉 해장술이나 한잔 하민서, 형님 젊은 시절에 한가락 하던 이바구나 좀 해 주시이소. 이 동네서 형도 형님 전설 모리머 간첩이지. 여게 얼라들도 형님이 한가락 했다 카는 거는 다 아는데"

 신진호 선원들은 대부분 젊은 선원들로 교체가 돼 있었다. 눈이 똘망똘망한 게 선미의 아들 뻘 되는 젊은이들이다.

 “어데, 아~ 들  앞에서 케케묵은 소릴 하라 캐쌋노? 벨로 좋은 일도 아인데 뭐 자꾸 과거지사를 묻노?”

 “형수님, 그때 못된 놈들 때리 잡던 전설의 스토리 안 있십니꺼? 여게 앉아 보시이소. 소주 한잔 하시고예. 오늘 장사 접으이소. 우리가 오늘 매상 다 올려드릴 테니까예”

  덕수는 소주를 가득 부어주며 흐뭇하게 웃는다. 뱃일의 고단함에 피곤한 모습 보다 어획고가 흡족할 만큼 만선이어서 더 활기차고 신이 났다. 선미는 평소에 말을 아끼다가 소주라도 한잔 들어가면, 옛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 놓는다.

 “그때 라스팔마스 갔던 작은 아~ 아부지가 안 왔더나. 그 소식을 듣더이, 불같이 화를 내는 기라. 알고 보이까네 작은 아~ 아부지도 노름을 좀 했던 갑더라꼬. 그 불여시 겉은 가스나 하고 패거리를 잘 알더라꼬. 저거 오야지가 중학교 동창이고 같은 고등학교 댕기다가 퇴학당했다 카데"

  덕수는 눈을 위로 치켜든 채 한참 생각하더니, 뭔가 기억이 났다.

 “아, 그라머 그 형님이었는 갑다. 그 자슥은 형님도 아이제. 그 자슥을 이 동네서 모리는 사람은 간첩이지. 나쁜 짓이라 카는 나쁜 짓은 다하고 동네 사람들 괴롭힌 놈 아이가. 사람 같지도 않은 자슥"

 “자네도 아는 갑네. 한날 저거 아부지가 시부지기 집을 나가더이, 해걸음에 들어오는데, 그때가 아마 석구 오마이가 죽고 얼매 안 됐지. 저녁 때 들어오는데, 온 얼굴이 터지고 째지고 피범벅이 돼가 난리도 아이더라꼬. 뭐를 부시럭거리더니, 신문지로 뚤뚤 말은 거를 내 앞에 툭 던지더라꼬. 뭣인고 싶어 봤더이 돈 뭉친 기라. 가들한테서 다부(다시) 받아 온 돈하고 차용증이더라꼬”

  그랬다. 섬이나 뭍이나 바다 사람들의 삶이란 떠도는 바람 같았다. 왁살맞게 드잡이하고, 뚝장군처럼 무쇠 낮짝을 하고 억척배기로 살아야 생존할 수 있는 곳이다. 여차하면 여자 팔자는 뒤웅박 팔자라고 오그랑바가지가 될 수도 있었다. 그래서 바다의 여자들은 거칠게 완력이 있고 의리가 있는 남자에게 기대는 지도 모른다.

  각다분하고 구지레한 일들이 많았고, 말도 많고 탈도 많았다. 그래도 늘 부둣가 어선의 이물 깃대엔 출항과 만선을 기대하는 희망이 있었고, 떠나간 이와 기다리는 가족들이 있었다. 바다의 삶은 누구나 손끝에 갱물(짠물) 마를 날이 없었다.

 “그래 갖고 가게는 겨우 다시 건졌는데, 다른 일이 꼬여버렸지. 그 양반이 가자미 배 한번 해보고 싶다고, 라스팔마시 꺼정 가서 목심 걸고 번 돈하고, 십 여 년 모아뒀던 돈으로 동력선 한대 산다꼬 하더이, 김 사장인가 하는 사기꾼한테 다 털리고 사기를 당했어. 목포 무안 가서 돈 찾으려다가 깡패들한테 죽도록 맞고 겨우 목심만 붙어서 왔더라꼬.

 거기 놈들은 기냥 깡패가 아이고 서울 대전까지 전국으로 하는 조직패라 카더라꼬. 김 사장인가 머시긴가 하는 인간은 여기저기 죄를 마이 지었는지 결국 칼 맞아서 죽었다 카더라꼬. 저거 패거리끼리 치고 박고 하민서 지역 이권 다툼하다가 그리 됐다 카더라꼬. 그 목포 무안 사람들 징한 기라. 

 그때 저거 아부지 이 세상사람 아이고 저승 갈 뻔 안 했더나. 그 생각하머 지금도 가심이 철렁 내려앉는 기라. 그놈들 우찌 그리 야무지게 패고 찌르던지 쟈 아부지 그때 살아도 빙신 될 뻔 했는 기라. 옛날에 한가락 하던 게 있어서 싸움 하나는 기가 막히게 해서 목심은 구해 왔는 기라”

 어디서 나타났는지 형도는, 소주에 불콰해진 얼굴로 방어진 항구 쪽을 바라보더니 씩 웃으면서 소릴 지른다. 그 모습이 참으로 넉넉한 사내 대장부였다. 덕수에게 손사래를 치면서 또 웃는다.

 “시끄럽다 고마, 뭐 그리 다 지나간 옛날이야기 하고 있노? 내가 당신을 다 사랑하이까네 요래 같이 안 사나. 덕수야  너거 형수 말 다 듣지 마래이, 전라도 아~ 들한테 돈 다 털린 기 무신 자랑이라꼬”

 “아이고, 입은 삐뚫어졌어도 말은 바로 하자. 당신이 하도 얼라 맨쿠로 보채싸서 내가 받아준 거 아이가?”

 “그래 맞다, 인자 그 이야기 고만하자. 할마시 벌시로 치매 왔나? 와 했던 이바구 또 하고 그라노?”

 “저 양반이 지금 낼로 치매환자 취급 하노? 그런 거 아이라니까. 당신이 좋아서 옛날이야기 좀 한 기요”

 “할마시 다 늙어가 뭐를 그래쌋노? 너거 형수한테 올 때마다 술 좀 멕이지 마라. 너거 행수는 소주 한두 잔만 묵어도 취해가 헬렐레 한다 아이가 봐라”

  형도는 식당 문을 반쯤 열고, 삐시감이 기대어 담배 연기를 길게 내 뿜는데, 그 모습이 노련한 선장이었다. 젊어서 그런 험한 일만 없었으면, 지금쯤 동창호 선주 겸 선장이 되었을 것이다.

 “내가 그 가자미 배만 제대로 굴렸으면 요래 통통배 타지는 안 했을 긴데”

 동창호 갑판장 덕수도 형도에게 한마디 거든다.

 “그렇지요. 형님이 딱 선장을 맡았시머 우리도 분위기 좋았을 긴데요. 인자 통통배 버리고 우리하고 합류 하소 고마, 행님 실력이머 금세 동창호 선장감이요”

 “시끄럽다 고마 술이나 묵어라. 내가 인자 와 갖고 너거 밑에서 선원생활 할 끼가? 니 겉으머 그리 하겠나 이 사람아. 자네는 선장 한번 안 해 볼끼가? 좀 있시머 선장 할 거 아이가?”

 “형님, 내가 공연한 말을 했네요. 형님 성질을 아는데, 아무리 어렵아도 그리 하실 분은 아이지요”

 “형수님 잘 묵고 갑니다. 오늘 술값은 내가 계산할 테이까네, 여게 얼맙니꺼?”

 “와예? 벌시로 일어납니꺼? 오늘은 괴기도 마이 갖다 줬으이 우리도 미안타. 그냥 가이소”

 “그라머 안되지, 자 받으이소 잘 묵고 갑니데이, 형님도 쉬시이소”

 형도는 손사래를 치며 선미에게 돈을 받지 말라고 했지만, 덕수 일행은 돈을 탁자에 놓고 나갔다.

 “저 자슥들은 내가 그동안 신세진 것도 있는데, 그냥 가라 캐도 말을 안 듣노? 오늘 푹 쉬고 또 놀러 오이라이 고맙다이”

 한바탕 밀물처럼 왔다가 썰물처럼 빠져나간 사람들의 그림자가 사라진 텅 빈 식당 안에는 적막감만 맴돌고 있다.

 

 동수가 다니던 조선소는 조선 경기 불황이 장기화되어 2년 넘게 휴업상태가 지속되었고, 원청업체인 ‘대현조선’은 채권단들이 강도 높은 구조조정을 요구하며 압박을 해왔다. 노조원들이 극렬하게 저항했지만, 단계적으로 회생절차를 밟으면서 구조조정을 받아들였다.

 협력업체 조선소는 오랫동안 매각이 되지 않았고, 긴 휴업기간에 버티지 못한 직원들은 뿔뿔이 흩어져갔다. 동수도 여기저기 크고 작은 플랜트 공사업체를 전전하며, 임시직공 생활을 해오다 2년 만에 퇴사를 하고, 식당일을 도우며 지내고 있었다.

  ‘대현조선’이 본격적으로 재가동이 되면서, 구조조정을 통해 내 보냈던 인력만큼 추가로 대규모 경력사원을 모집했다. 예전만큼의 대우는 아니지만, 동수는 경력직으로 지원해서 정규직으로 채용이 되었다.

  중소 협력업체의 경력은 대기업에서 중요하게 생각지 않고, 일을 할 수 있느냐는 것으로 채용 결정을 했다. 동수도 예전 협력업체에 다닐 때를 생각하면, 원청 조선소의 급여나 복지체계가 하늘과 땅 만큼이나 그 간격이 크게 느껴졌기에 열심히 일했다.

  형도도 작은 통통배를 탈 재미가 없고 수입도 변변찮아서 헐값에 팔아버리고, 틈틈이 선미의 식당 일을 도우며, 생선 배따는 일이나 허드렛일로 소일을 하고 있었다. 그 후 신진호 갑판장으로 있던 덕수가 후배 기관사와 포구에서 수리업체를 운영하게 되면서 자리가 나게 되었다. 1년만 계약하고 배를 탄다는 게 3년째 갑판장으로 있었고, 신진호 박 선장이 급성 간암으로 세상을 떠나게 되어 형도가 그 자리를 대신하게 되었다.

  선원학교를 졸업하고 십오 년만 배를 타면, 웬만한 규모의 배에서는 3항사 2항사 1항사를 거쳐 선장이 되거나, 3기사 2기사 1기사를 거쳐 기관장이 될 수 있었다. 대형 무역선을 타면, 해양대나 수산대 나온 사람들보다 훨씬 승급하는 기간이 길다. 수산고 나와서도 갑판장과 선장까지 가는데 15년 정도면 무난했던 시절이었지만, 형도는 무려 30년 넘게 먼 과정을 에둘러 60대가 다 돼서 선장이 되었다.

  물빛과 하늘빛이 구분되지 않을 정도로 화창하게 맑은 날, 형도는 이물(뱃머리)에서 폐부 깊숙이 바다의 신선한 공기를 마음껏 집어넣고 긴 숨을 내뱉었다. 이날을 얼마나 기다려왔나 회상에 잠겼다. 늘 포구에서 머물며 맡던 선창가 짠내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시원한 바람이 뺨을 스쳐간다.

 고물(선미)쪽에서 “형님”, “선장님” 하는 후배들의 소리가 왁자지끌 했다. 조타륜을 꽉 잡은 손에 꼽꼽하게 땀이 차왔다. 신진호는 이미 오래 전부터 가자미 철이 아닐 땐, 동창호와 함께 일반 쌍끌이 저인망 조업으로 전환해서 움직이고 있었다. 흩어져서 따로 조업할 때도 있지만, 가자미 배들은 대부분 함께 조를 맞춰 움직일 때가 많았다.

  형도는 반짝이는 햇살 속에서 떼를 지어 움직이는 어군을 포착했다. 어군탐지기가 따로 있었지만 오늘은 형도의 감으로 때려잡기로 했다. 무전기를 들어 동창호를 호출했다.

 “동창호 동창호 여기는 선진1호다. 자, 지금부터 투망을 실시한다. 준비됐나?”

   동창호에서 ‘오케이’ 신호가 왔다. 형도는 무전기를 내려놓고 핸드 마이크를 들었다. 두 척의 배가 동시에 투망하려면 서로 신호가 맞아야 하고, 그물도 동시에 투망을 실시해야 한다. 조금이라도 신호가 맞지 않아 제각각 두 척의 배가 따로 놀고, 투망 속도가 다르면 그물과 로프가 어긋나 끊어지든지, 양쪽 배에 하중이 걸려 방향이 어긋나게 된다.

 형도는 다시 한 번, 신진호와 동창호 양쪽 선원들에게 핸드 마이크로 신호를 보냈다. 갑판원 한명이 깃발 신호를 보내주지만, 째지는 마이크 소리가 더 정확하고 빠르다.

 “준비 됐나?”

  동창호 쪽에서 선장과 갑판장 모두 손을 흔들고 고함을 질렀다.

 “됐나?”

  선원들 모두 일제히 소리를 질렀다.

 “됐다!”

  형도는 가슴 깊숙이 심호흡을 하고 ‘후’ 내뱉으며 힘껏 소리를 질렀다.

  "투 마 앙!…"

  두 척의 어선에서 동시에 풀려나간 네트와 로프가 롤러 끝부분에서 ‘철컹’소리를 내며 묵직한 무게감으로 배 전체에 와 닿았다.

  대형선박이 아니라서 조리장 겸 갑판원으로 일하는 판수가, 늦은 아침으로 해물라면과 바지락 무침, 소주를 내왔다. 해물라면엔 게와 전복, 낙지 같은 해산물이 들어가서  국물이 시원하고 달았다.

 “선장님 소주 한잔 하시고 국물 좀 드시이소. 라면 하고 건데기도 많십니더”

 “건디기는 너거나 마이 묵어라. 내는 그 대접에 소주 가득 붓고 국물만 좀 도고”

 어느새 신진호와 동창호 양쪽에서 스피커를 통해 항구의 뱃노래와 트롯가요가 흘러나왔다. 불콰해진 얼굴과 얼큰해진 뱃속이 불편하기보다 오히려 시원함과 함께 새로운 기운이 솟는다.

  뱃전을 때리는 바닷바람이 신선하게 느껴진다. 쿠르륵 뱃전을 두드리는 요란한 엔진 소리가 쿵쾅거리며 뛰는 심장소리 같다.

 “하아 요거, 아무 것도 아인 걸 갖고, 요까지 오는데 을매나 시간이 걸맀더노? 세월 참 마이 흘렀네. 오늘 따라 와 이래 기분이 좋노? 판수야 노래 한곡 불러봐라. 엔진 소리가 내 벌떡벌떡 뛰는 가심에 심장소리다”

 엔진소리가 점점 더 크게 들린다. 아직 만선은 안 됐지만, 두 척의 배에선 만선 깃발이 휘날리고 있다. 만선을 기원하는 깃발임과 동시에 만선을 알리는 깃발이다.

 “선장님, 그리 기분이 좋십니꺼? 참 오랜만이다 그지예? 형님이 진작에 선장이 됐시야 하는 긴데 마이 늦었다 그지예?”

  동창호 선장 상식이가 핸드 마이크로 소리쳐온다.

 “형도야 마이 묵으라이 소주 한 잔 해라”

 “오냐, 알었다. 니도 마이 묵으라. 오늘 만선 해가자”

  갑판원 종수가 선실에서 뭔가 부스럭거리며 가져왔다. 뚜껑을 여는데 익숙한 냄새가  확 퍼진다.

 “야, 뭐야 그거? 내가 정해진 부식 외엔 사식 반입하지 마라 캤는데, 묵고 탈나면   조업 지장 있는 거 모리나?”

 “아입니더, 이거는 형수가 새벽에 출어할 때 주고 갔십니더. 뭐 끓여 묵을 때 넣어라 카미 주던데예. 해물하고 양념하고 다져 넣은 깁니더. 그냥 안주로 씹어 묵어도 되는 긴데예”

 “여편네가 별거 다 챙기주노? 우리가 다 알아서 챙기 묵을 긴데. 그라머 아까 판수가 끓인 라면에 그거 넣었던 기가? 우째 좀 시원하더라”

 “아니예, 판수가 끓인 라면에는 따로 뭐 넣는 기 있십니더. 근데 형수님이 주신 요거 넣어모 그거 보다 더 맛이 기똥 찹니더”

 “기똥차기는 뭣이 기똥 차노? 니 똥이 차나? 내사 같이 살다 보이까네 그 맛이 그 맛이더마는. 너거나 마이 묵으라. 내는 국물이나 좀 퍼도고”

 “와예? 선장님은 건디기는 안 드시고 국물만 묵십니꺼? 그래가 힘이 납니꺼? 혹시 이빨이 안 좋아가 그랍니꺼?”

 “저 자슥이 와 이빨 타령이고? 인마 그냥 묵어라 자슥아. 내도 묵을 거는 다 챙기 묵는다. 신경 쓰지 마라”

  그때였다. 동창호쪽에서 경적소리가 울렸다. 대형 선박의 장대한 뱃고동 소리와 달리 중소형 선박은 대형 화물트럭의 경적 같은 소릴 낸다.

 “벌시로 다 찼십니껴?”

 “오냐 오늘은 오랜만에 만선이다. 기분 댓길이네. 언제 적이고? 진짜 오랜만이네”

 돌아오는 뱃길 따라 멀리 하얀 백고래가 보인다. 대왕암 언덕위에 얹힌 울기등대다. 뱃사람들에겐 난폭한 바다의 신 포세이돈이 나타나면 미리 알려주는 안전의 신과 같은 존재다.

 “저 백고래가 있어서 우리가 사는 기라. 저기 여게 동해바다 신인 기라 신. 그래서 여게 방어진 옆불데기에 대왕암이 있는 기라. 봐라 저 게가 우리 집 아~가 일하는 조선소다. 저기도 고랜 기라 고래. 동해바다 고랜 기라”

 이글거리던 동해의 태양도 이제 ‘울기등대’ 언덕 너머로 기울고 포구엔 짙은 노을이 내려앉고 있다. 집으로 갈 시간이다.〈끝〉

 

 

 

 

 

 

▲예시원 : 작가·문학박사
〈월간문학〉짬뽕 한 그릇 〈한국소설〉짬뽕 두 그릇 등단 / 소설집『토영 통구미 아재』 시집『누가 바다의 이름을 부르는가』 수필집, 평론집 다수 발간 / 한용운문학상, 한국문학상, 박남수문학상 수상
한국문인협회, 한국소설가협회, 한국수필가협회, 서울시인협회, 경남소설가협회, 경남시인협회 회원 / 한국문학비평가협회 이사, 계간『시와늪』주간·심사위원, 한국문학세상 심사위원, 문학춘하추동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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