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폭력·평화·생명에 관한 문학작품 공모전 당선작 4
☞ 고은영 시인의 시 <바람을 기다리다> ☞ 김성용 시인의 디카시 <빅뱅> ☞ 김수진 시인의 시 <부부> ☞ 문임순 시인의 디카시 <삶의 방정식> ☞ 성백광 시인의 시 <약속 - 남은 가족 아프지 않게 하기> ☞ 한지선 시인의 디카시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바람을 기다리다 / 고은영
편의점 조끼를 입고 계산대에 서는 순간 역할로 살게 됩니다 냉장고에서 바람 소리가 나면 명찰에 새겨진 이름은 지워지고 생기를 난도질당한 고시원의 비린내를 진열대 여기저기 풍기기 시작합니다 가로등 불빛에 버찌 터지는 소리가 들리는데 살갗을 비비던 잎맥은 찬란하게 빛나는데 바람은 자이살메르 사막에 알을 낳은 전갈을 돌보느라 아직 나에게 닿지 못합니다 비자가 허락되지 않은 은빛 모래들이 뱃속에 가득한데 그림자는 아직도 낙타의 혹에 걸려 사막을 헤매고 있는데 바람은 별똥별의 축하를 받으며 전갈을 지키고 있습니다. 사막에서 밤을 지새울 때는 땅을 파야 하는 것을 아시나요? 죽은 듯이 밤을 지내 야 살아남을 수 있는 아이러니를 아시나요? 내가 묻힌 곳이 모래 둔덕이 되지 않음 을 감사하는 아침을 아시나요? 이스트 넣은 빵처럼 부풀어 올라 바람을 기다립니다 이제, 날아갈 준비가 되었습니다
빅뱅 / 김성용
치솟는 두 개의 힘 한바탕의 번쩍임 눈 씻고 찾아봐 누가 남았는지
부부 / 김수진
검은 눈이 내린다 자동차는 하향등을 켠 채 교행하며 달린다
가까운 것부터 해결하려다 저만치에서 구부정하게 걸어오는 흰 사람을 놓쳤다
바퀴 밑으로 녹아든 그 사람은 전신주의 테이프 자국으로 남았다 (전국에는 약 850만 개의 전신주가 있다)
차근차근 사라지는 이름과 편지와 쥐 고양이 문방구 학교 집 거리 그리고,
발생개요: 1997. 01. 09(목) 00시 13분경 자택 xx로 xx번길(xx동)에서 운동 간다고 나와 현재까지 귀가하지 않고 있음 인상착의 및 특징: 하얀색 패딩, 하얀색 바지, 회색 부츠, 키 (178cm), 마른 체형, 얼굴 긴 형
이십 년도 넘었는데 그만 새 출발 하시죠 굴러온 검은 말에 하늘로 젖혔던 노파의 허리가 꼿꼿하게 선다
잊다[읻따] <동사> 1.「…을」 다리가 수백 개 달린 벌레가 침실 방바닥을 기어 다니고 있어 침대 위에서 벌벌 떨다가 검은색 바구니를 던져 가둬 놓았지 나중에는 그 위에 무거운 물건을 하나씩 올려두기까지 해 이제 벌레는 침실에서 사라졌을까?
보도블록 위 모두가 제 시간을 걷고 있을 때 우두커니 앉아 클로버 무리 속 네 잎을 찾는 것처럼 오래된 이야기를 하는 노파가 다시 하늘로 고개를 젖혀 얼어붙은 흰 점을 본다
저만치에서 보이는 구부정한 흰 손짓에 이만치 빛나는 검은 눈동자 고층빌딩에서 교차하는 내려가는 빛과 올라가는 빛
검은 아스팔트 위로 유령 같은 첫눈이 내린다
삶의 방정식 / 문임순
풀었다 마음 빗장
분노, 탐욕 내보내니 온유와 자애의 빛 한가득
약속 - 남은 가족 아프지 않게 하기 / 성백광
오돌거리는 햇살이 미소처럼 번지는 해 질 녘 황사로 덮인 아파트 화단에 노란 폴리스라인 퇴근길을 적신다
솔잎에 매달린 비명의 무게만큼이나 꽁꽁 언 발걸음을 금세 붉게 물들이고 아스팔트 위에 그려진 붉은 스프레이 병든 사슴 곁에 아픈 사슴이 와서 앉듯 별이든 까만 밤이 칸칸마다 길을 잃은 어둠 속으로 먼지만 남기고 떠난 사이렌 소리 부러진 발톱을 움켜잡고 남은 가족의 울음소리가 슬픔을 견디지 못한 이웃마저 화단을 서성인다
나의 생명은 그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가족과 이웃이 함께 한다는 걸 왜 그 남자는 몰랐을까?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 한지선
발가락 하나도 꼼지락거리지 마! 초록 무좀균이 간질간질 쥐가 날 것 같아도
그대로 멈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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