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모토리 1
하루를 바재다가 너 보러왔다 벳낙질 가을볕이 어떻게 부서져 촉석루를 붉게 물들이고 자물리는지
무쇠구두처럼 산다는 것이 술막길처럼 그리 만만치 않지만 구름 지나가면 어느새 맑아질 것을
달그리매로 유등에 담근 술이 봉그슴하게 참 맛있구나 한 잔에 강물을 다 마셔버리겠다고
다모토리 2
시원한 물회 한 그릇은 창랑이 되고 하루의 노동이 씻기는 붉살의 저녁
불소주 백비탕을 다모토리로 묵은 감정이 널펀히 녹아내리고
짠내음 가득한 무위도 언덕 너머 이쪽저쪽 열기도 이제 곧 식을 테지
거뭇발어둠에 익숙해질 무렵 맑은 술 기운에 하루가 익는다
청새치와 코끼리 다리 1
늙은 어부 산티아고는 왜 일생을 큰 물고기를 잡으려 그렇게 헤맸을까 기껏해야 청새치 한 마리였을 뿐인데
그것도 각다귀패들에게 시달린 노인처럼 상어 떼에게 다 뜯어 먹히고 앙상한 뼈다귀만 남긴 채 무얼 할까
또 다른 이들은 왜 일생을 코끼리 한 마리 찾기에 혈안이 되어 헤맸을까
다리와 코를 장님처럼 더듬거리며 그렇게 조각모음을 해서 무얼 할까
청새치와 코끼리 다리 2
필사의 노력으로 커다란 참치 한 마리 잡으려는 어부의 몸부림 옆엔 대형 트롤어선이 수백 마리의 참치를 끌어 올리는데
지금도 그 어부는 참치 한 마리 때문에 바다를 헤매고 동료들은 참치 한 마리 잡은 그를 진정한 사나이라고 엄지 척을 해준다
청새치와 참치 한 마리, 코끼리는 뭐가 다른가 늙고 불편한 육신으로도 엄지 척의 사나이는 다시 한번 힘을 내본다
오늘도 열심히 각자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그대들 어이 당신 진짜 사나이야 행운을 한 번 잡아봐
소주 한잔
저 달이 내 술잔에 빠질 땐 내가 마시면 되지만 저 달이 강물에 빠져버리면 시방 누가 건져낼까
가도 가도 제 자리인 저 달은 누구를 따라 다닐까
달 따러 가는 아희야 이리 와서 내술 한잔 받아라 그 달 이 안에 있다 달 따려면 맑은 술을 마셔라
사랑을 할 땐 목숨을 걸지만 동말랭이 달그리매 건질 땐 백비탕 한잔이면 된다
▶예시원 『시와사람』 시 등단 / 계간 시와늪 주간 시집 『아내의 엉덩이』 외 다수 / 평론집 『화채 한 그릇의 이야기』 외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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