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미 울음소리
이덕대
밤에도 더위가 수그러들지 않는다. 해 질 녘 어룽진 방충망에 매미가 찾아왔다. 더위에 방향감각을 잃은 건지 시원해 보이는 아파트 안이 부러워서인지 모를 일이다. 나무가 아닌 아파트 창틀에 붙어 양껏 울어볼 심산인 모양이다. 매미가 운다는 아내의 말을 듣는 순간 올림픽을 시청하는 소리에 놀랄까 봐 텔레비전 소리부터 줄였다. 한여름 더위를 잊을 정도로 청량했던 고향의 매미소리가 문득 생각난다. 아파트 창문에 붙어 우는 매미라니. 이 더운 여름에 갈 곳 없는 신세이기는 너나 나나 매한가지라고 속으로 중얼거리며 고양이 걸음으로 다가간다. 시골에서 본 매미와 사뭇 모양도 다르고 크기도 적은 놈이 엄청난 소리로 운다. 울음소리는 애매미이나 생김새는 쓰름 매미다. 한바탕 울더니 슬금슬금 발을 옮기며 다시 자리를 잡는다. 오랜만에 듣는 매미소리는 순간적으로 더위마저 잊게 한다.
도심 속 매미 울음소리는 듣기에 따라 전원 고향악(故鄕樂)이다. 거미줄을 칭칭 감은 겨릅 매미채를 들고 이 산 저 숲으로 뛰어다니던 생각에 젖는다. 산은 짙푸르고 하늘은 맑았다. 소나기 한줄금 내리지 않는 누릿한 염천 하늘이 아니었다. 고향의 여름 아침은 청신한 매미 울음소리로 맑고 시원했다. 빌딩 숲에서 길을 잃은 매미가 안쓰럽다. 해줄 수 있는 것이 기껏 텔레비전 소리 줄이기라니. 우리 선조들은 매미소리도 풍류로 즐겼다. 옛 가인(歌人)은 노래했다. ‘매암이 맵다 울고 쓰르라미 쓰다 우니’ 하면서 초야에 묻혀 사는 한적한 삶을 매미 울음으로 읊었다. 미루나무 꼭대기에서 우는 매미는 폭염을 제대로 누리는 여름 예찬자다. 유년 시절, 여름은 매미로부터 시작되었다. 벚나무나 오리나무에 지천으로 붙은 털매미가 여름을 불러왔다. 신작로 늘어선 미루나무에는 말매미가 울었고 숲 팽나무에는 날개가 벼슬살이들의 익선관 같은 애매미가 여름 그림을 그렸다. 아이들은 매미를 잡으려 늙은 팽나무를 조심스럽게 올랐고 어른들은 매미소리를 벗 삼아 낮잠을 청했다. 우는 매미를 성가셔하지 않았고 호롱 불에 마음 뺏긴 밤 매미가 찾아들면 조심스레 풀숲으로 돌려보냈다.
한밤중 도심 매미소리가 공해라며 대책을 세워야 한단다. 창문을 꼭 닫고 에어컨을 틀고 사는 집은 괜찮겠지만 골목바람으로 더위를 쫓는 집들은 밤을 낮 삼아 우는 매미소리가 성가시긴 하겠다. 번식을 위해 며칠 우는 매미조차 받아들이기 힘든 도시의 신산한 삶이다. 마음껏 울 수 있게 매미를 위한 숲을 도심 속에 조성했으면 싶다. 매미 일생을 들여다보면 염천 더위에 애달플 정도로 울어댐이 이해된다. 수년간 땅속 생활을 하다가 일 년 중 가장 더울 때 보름 정도 짝을 찾아 유전자를 남긴 후 생을 마감하니 그 시간이 얼마나 소중할까. 갈 곳 없는 도심 속 매미소리를 소음공해로 탓하는 것은 너무 박절하다. 자늑자늑 다리를 끌며 옥색 눈을 반짝이던 매미는 한바탕 소리를 더 내지르고는 멀리 들판 쪽으로 날아간다. 잠깐 멈추었던 차들의 경적소리와 잔망스레 몸을 흔들고 굉음을 내며 지나가는 오토바이 소리가 한꺼번에 창문 안으로 훅 밀려온다. 매미가 가져온 무더운 날 어스름 평온도 여지없이 깨진다. 매미 울음소리가 어떤 이들에게는 자연이 만들어주는 치유지만 다른 이에게는 짜증을 유발하는 소음공해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무더운 도심에서 매미소리마저 사라지면 아이들은 무엇으로 여름을 기억할까.
▲이덕대 * 공군사관학교 졸업 및 공군대령 예편 * 김포문학(2017) 및 한국수필(2021) 신인상 * 한국수필 2023 ‘올해의 좋은 수필10’ 선정 <감나무 가지에 걸린 달빛으로 자라기> * 수필집 출간 <감나무 가지에 걸린 달빛으로 자라기(2023)> <내 마음 속 도서관(2024)> * 시인투데이 작품상(2024) <한통속 감자꽃> * 한국수필가협회 및 한국문인협회 김포지회 회원
<저작권자 ⓒ 시인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댓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