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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월 칠석 이야기 / 이덕대

유세영 기자 | 기사입력 2024/08/06 [14:09]

칠월 칠석 이야기 / 이덕대

유세영 기자 | 입력 : 2024/08/06 [14:09]

칠월 칠석 이야기

 

이덕대

 

 

  마당에는 쪼갠 대나무로 만든 평상이 놓이고 할머니 거친 손은 삼베 등걸 밑의 보들보들한 손주 등을 연신 쓸어내린다. 어둑발이 내리기 전 뒤란을 돌며 감나무 아래서 곡예비행을 하던 수베이(말 잠자리)들은 대숲으로 들어가 잠을 청하는지 자취 없다. 가는 바람에 대나무들이 우쭐대더니 그마저 잦아드는지 사위가 고요하다. 박덩이 돌담 위에 덩실한 텃밭께는 가을 길목의 풀벌레 소리 가히 교향악이다. 밤에만 우는 철써기는 해가 떨어지자마자 차캬차캬 울어댄다. 방울벌레는 맑은 소리로 리~잉 리~잉 화음을 맞추고 대청마루 밑에서는 귀뚤 귀뚤이 울음소리 정겹다. 줄베짱이는 츠—츠--츠-츠-츠츠츠츠츠치읏치읏-치읏--치읏 울고, 실베짱이는 츠르르르릇... 츠르르르릇 가는 여름을 아쉬워한다. 긴꼬리쌕새기는 치릿-치릿 울고, 여치는 찍-지이이익... 찍-지이이익... 하고 소리를 낸다. 초가을 밤의 최고 연주가 풀종다리는 후-이리릿릿 하며 전원 교향악을 마무리한다.

 

  모깃불 연기는 지난봄 자식 떠나보낸 옆집 아주머니 풀어헤친 긴 머리 타래처럼 진양조 가락으로 흔들린다. 밤이 이슥해지자 골바람 잦아들며 하늘로 곧추서서 피어오른다. 마른 쑥 냄새 은은하다.

 평상 위에 누워서 바라보는 하늘은 별들로 가득하다.  푸른빛이 도는 은하수는 남에서 북으로 흐른다. 긴 장대로 휘젓기만 하면 모든 별들이 한꺼번에 우두둑 쏟아질 것 같다. 앞산 마루 너머로 별똥별이 긴 꼬리를 그리며 자꾸만 떨어진다.

 아이는 무섭고도 신비로운 여름밤 하늘 밑에서 토옹 잠을 이루지 못한다. 할머니는 잘게 쪼갠 대나무에 문종이를 붙여 만든 부채를 천천히 부쳐댄다. 연신 손주 등을 어루만지시던 할머니는 잠투정을 하며 보채는 손주 등쌀에 오늘 밤도 견우직녀 이야기를 읊조리신다. 뒷산 돌감나무에서 부엉이 운다.

 

  “옛날 하고도 옛날, 이전하고도 자전에 하늘에는 소를 돌보는 견우라는 목동이 살고 직녀라는 옥황상제 손녀도 살고 있었단다 야. 너 옥황상제가 누군지는 알제? 상제님이 썽이 나서 정지에 있던 솔가지 불을 던지모 그기 번개라. 그라고 애들이 말을 안 듣거나 해서 되기 썽이 나면 솥단지를 걷어차는데 이때 소리가 뇌성벽력인기라. 머슴인 견우와 옥황상제 손녀인 직녀가 서로 좋아하다 정신이 빠져 일은 안 하고 게으름만 피우자, 썽이 난 옥황상제는 불도 던졌다가 솥단지도 걷어찼다가 할 수 없이 두 사람을 은하수 동쪽과 서쪽으로 갈라 놓았단다. 견우는 동쪽에 직녀는 서쪽에......, 야가 이제 자나?”

 

 장마가 끝나고 며칠이 지나면 칠월 칠석이다. 할머니의 거친 손바닥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우습고 무서웠던 견우직녀와 옥황상제 이야기는 어디서 들을 수 있을까. 지글지글 끓는 가마솥더위가 맹위를 떨치고 있으나 칠월 칠석이 지나면 땀띠가 사라지듯 곧 삼복더위도 수그려 들 것이다. 자연의 순행은 한 치도 틀림이 없다.

 신의 이야기가 신화다. 사랑이 있는 신화는 신의 이야기라기 보다 인간의 이야기다. 별똥별이 떨어지는 평상에 앉아 부엉이 울음소리 무서웠던 여름밤이 그립다.

 

 



 

 

▲이덕대

공군사관학교 졸업 및 공군대령 예편

김포문학(2017) 및 한국수필(2021) 신인상

한국수필 2023 ‘올해의 좋은 수필10’ 선정

  <감나무 가지에 걸린 달빛으로 자라기>

수필집 출간

  <감나무 가지에 걸린 달빛으로 자라기(2023)>

  <내 마음 속 도서관(2024)>

시인투데이 작품상(2024)

  <한통속 감자꽃>

한국수필가협회 및 한국문인협회 김포지회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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