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정리역*
이종근
조치원역에서 전의역을 지났다 노구를 이끌고 몇천, 몇만 번 뚜벅뚜벅 걷는 소정구길, 다람쥐 쳇바퀴 돌듯 철로 건널목마저 옮겨 이르면, 아뿔싸 소정리역은 혈류가 굳게 닫혔다
소정쉼터에 켜놓은 텔레비전은 굽은 허리를 일으키듯 지지직거리고 연신 첫 번째 할아범은 제 나이를 쪼개어 어린나무의 나이테로 옮기는 중이다 내 살에 나무줄기로 돋는 붉은 피멍까지 덤으로 다 가져가거라
폐가를 빠져나온 고양이가 교회 기도문을 다녀간다 우체국과 파출소에 남긴 계리직과 순찰직의 낡은 건축이 군부대 정문 틈바구니에서 제비집을 짓는다 내 살에 곡교천으로 흐르는 푸른 핏방울까지 덤으로 다 가져가거라
철로 건널목에서 두 번째 할아범은 꾸벅 졸지 않으려 눈자위에 안간힘 쓰듯 깃봉에다가 콧바람 불어대곤 노쇠한 무기력을 허공에 날려 보낸다 내 살에 보건지소 태양열 집열판 덕에 검게 아문 피딱지까지 덤으로 다 가져가거라
소정리에 쏙아 소정리를 지키는 세 번째 할아범 건너, 두툼히 쌓인 빈 컨테이너가 아날로그로 녹슬다 피폐의 역으로 얼룩진다
소정구길 순번을 따라 n 번째 할아범은 방랑으로 배슥거리듯 흰 구름이 에누리 없이 잘도 흘러간다
* 소정리역(小井里驛)은 세종특별자치시 소정면 소정리에 있는 경부선 철도역으로 컨테이너 및 유류화물을 주로 취급함. 지금은 여객 업무가 중단됨.
▲이종근 시인 한국문인협회 시창작과정 수료 및 중앙대학교(행정학석사). 『미네르바』신인상. 《서귀포문학작품상》, 《박종철문학상》, 《부마민주문학상》등 수상. <천안문화재단>, <충남문화관광재단>등 창작지원금 수혜. 시집 『광대, 청바지를 입다』(2022), 『도레미파솔라시도』(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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