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아이가 되는 날
이덕대
매일 어린아이가 되었으면 좋겠다. 상을 받는 것은 어린아이가 되는 것이다. 어린아이가 행복해하는 것은 별 게 아니다. 옆집 할머니의 사소한 칭찬이나 건네는 사탕 한 알에 즐거워한다. 세상은 매일 시끄럽다. 화재 참사에 물 폭탄을 동반한 장마가 온다고 난리 법석이다. 어느 하루 조용한 날이 없다. 고요 속에 자신을 가두기가 어렵다. 상을 받는 날은 마음이 달뜬다. 상의 무게만큼이나 어린아이 같아지는 마음의 달뜸은 나이와 상관이 없다. 밤부터 억수비가 온다고 했지만 뜨거운 햇살 아래 아직 바람은 엽렵(獵獵)하다. 주말이라 지하철 안은 한적하다. 차를 타기 전 온몸을 감쌌던 열기가 금방 사라진다. 행사 장소를 다시 확인한다. 한 시간쯤 지나서 도착했다. 한 학년이 끝나는 날 선생님께 상을 받으러 나가는 학생 같은 마음으로 조심스럽게 건물 안으로 들어선다. 마이크 시설이 되어 있고 피아노도 놓여 있다. 여염집 같기도 하고 시골 초등학교 강당 같은 분위기도 풍긴다. 촌닭이 오일장에 팔려온 것처럼 어리둥절하다. 어떤 이는 먼저 도착하여 행사장을 꾸미느라 열심이다. 무슨 행사든 안 보이는 곳에서 수고하는 이가 있기 마련이다.
행사장은 아담하다. 음식점을 겸한 곳이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에어컨 시스템이 말썽이다. 땀이 삐죽삐죽 난다. 선풍기를 여러 대 돌리고 냉풍기까지 동원했지만 열기를 식히기가 만만치 않다. 그래도 다들 행사 준비에 진심이다. 멀리서 어떤 문우가 보냈다는 참외를 깎아 식탁에 놓는다. 시골 계모임에나 볼 수 있는 정겨움이 묻어난다. 바쁜 농사철이라 참석하지 못하는 이의 서운하면서도 따뜻한 마음이 느껴진다. 시상식 행사는 소박하다. 행사 전례 중 먼저 가신 문인들에 대한 묵념은 다소 생경했으나 의미는 남달랐다. 언뜻 가난과 풍요가 마음을 관통한다. 예부터 문인들은 가난하다 했다. 문인이라 가난한 것인지 가난해서 문인이 된 것인지 알지 못한다. 물질적으로 풍요로우면 좋은 글을 쓰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는 말은 이해된다. 배부르면 글보다 노래가 어울린다. 문인들의 멋은 질박한 일상과 고졸한 풍류를 즐기는 것이다. 글을 쓴다는 것은 세상에 자신을 드러내는 일이다. 거만과 도도함의 글로 자신에게 다가오는 사람에게 상처가 되지 않도록 조심하고 또 조심해야 한다. 부와 명예가 함께 하는 상 받기를 소망하는 사람은 많다. 권력과 권위를 가진 사람으로부터 상을 받고 싶어 하는 이도 적지 않다. 반면 문학을 통해 자신과 타인의 행복을 만드는 사람, 오로지 글이란 수단으로 세상을 자유롭게 만들고자 하는 이들로부터 받는 상도 세상의 어떤 이름난 상보다 고귀하다. 뜻하지 않게 받는 상이라며 부끄러워하고 겸손해하는 이들과 함께 받는 상이 세상을 따뜻하게 만든다고 믿는다.
서로가 서로를 축하하며 시상식은 끝났다. 참석한 이들이 가지고 온 술이며 특산품을 곁들인 비빔밥 한 그릇으로 행사의 마지막을 장식한다. 나눔과 어우러짐의 절묘한 조화다. 시상식 서두와 말미에 땅을 헤적이며 쓴 글이 부끄러워 덮어버렸다는 시 낭송과 오로지 행복을 위해 시를 쓴다는 어느 시인의 말이 오래도록 귀에 쟁쟁할 듯하다. 시끄러운 세상에서 아이로 살 수 있다면 그것만큼 행복한 일이 없다. 글을 쓴다는 것은 타인과 자신의 연민을 어루만지는 일이며 사람들이 불편해하는 틈을 메꾸는 일이다. 글로써 상을 받는 것은 아직 세상에 많은 위로가 필요하다는 말이기도 하다.
▲이덕대 * 공군사관학교 졸업 및 공군대령 예편 * 경남일보 칼럼니스트(2018년~현재) * 김포문학상 수필부문 신인상(2017년) * 한국수필 신인상(2021년) * 한국수필 “올해의 좋은 수필 10선”에 [감나무 가지에 걸린 달빛으로 자라기] 선정(2023년) * 한국수필가 협회 및 김포문협 회원 * 에세이집 [감나무 가지에 걸린 달빛으로 자라기]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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