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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기도 / 이한명

유세영 기자 | 기사입력 2024/05/29 [22:07]

어떤 기도 / 이한명

유세영 기자 | 입력 : 2024/05/29 [22:07]

어떤 기도 

 

이한명 

 

 

 

  탕!! 스물다섯 해에 쏘아 올렸던 오발탄 같은 것이었을까. 

 

  깜깜한 나락으로 곤두박질치던 그 겨울 산정의 혹독했던 시련 앞에 나를 멈춰 세웠던 것은.

 

  무엇이 나를 죽음의 암흑 속에서 불러 세웠던 것일까.

 

  사람들은 누구나 저마다의 꿈꾸는 길이 있다.

  드러난 길이든 맘속 깊이 숨겨진 길이든 꿈의 부피가 다를 뿐, 지향하는 이상은 같으리라.

 

  설악 그 깊은 심처를 오가며 옆에 두고도 항상 지나쳤었던, ‘한 편의 시를 위한 길’이라 명명된 저 릿지 길.

  내 인생의 완성을 위해서는 마지막이 되어도 좋다고 생각했던 그 길.

 

  그러나 그 꿈에 다가가기도 전에 문경 산정에서 길을 놓쳐 길이 아닌 길에 발을 들였고, 

  깊이를 모를 어둠으로 추락하는 도중에 나를 불러 세웠던 그 소리,

  그것은 내 나이 스물다섯 해에 쏘아 올렸던 오발탄 소리였다.

 

  하늘의 별도 손에 쥘 것만 같았던, 무엇을 해도 자신감이 넘치던 젊은 시절의 나는 직업군인이었다. 

  86 아시안게임을 앞두고 치러질 전군사격대회, 사단 대표로 선발되어 매일 귀가 먹먹하도록 쏘아 올렸던 청춘의 붉은 신호탄,

  내 자만의 질풍노도 같았던 발걸음에 경종을 울리는 것인가.

  탕! 

  잠깐의 방심으로 일어난 오발 사고로 우측 엄지발가락 관통상을 입고도 청춘의 끝을 놓지 않았던, 

 

  그 천만분의 일의 행운을 다시 잡으려는가.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없다 했지만, 잠깐의 시공에 머문 듯 황홀하기까지 했던 내 의식 속엔 분명 날개가 있었다. 

  깜깜한 나락으로 떨어지던 몇 초간의 까마득한 높이의 절벽, 그러나 내 의식 속에서는 엄청 긴 시간이 흘러갔다.

 

  그날따라 겨울의 하늘이 어쩜 그리도 아름다웠던지.

  맘이 들뜬 나머지 혼자 그 꼭대기에 먼저 오르지 않았다면, 절벽 아래에 있던 촛대처럼 생긴 바위를 사진에 담으려고 공간도 없는 그곳으로 내려서지만 않았다면, 

 

  아득한 정신을 일깨우듯 다가들던 충격에 의식의 끈을 놓지 않으려 얼마나 바둥거렸던가.

  지면에 닿기까지 크고 작은 세 번의 충격은 온몸을 산산이 부수어놓을 듯 흔들었다.

 

  그날 상처의 흔적을 훈장처럼 가슴에 새긴 뼈아픈 교훈을 매일 마주하며 

  ‘이러다 내가 죽을 수도 있겠구나, 제발 떨어지는 내 몸 밑에 돌이나 바위만 없게 해 주세요.’ 하고 빌었던 몇 초도 안 되는 그 짧은 순간의 기도를 되뇐다.

 

  그 기도 덕분에 이렇게 나는 살아서 또다시 ‘한 편의 시를 위한 길’을 떠난다.

 

  ​1월의 산 정상 그것도 뼛속을 샅샅이 헤집고 다니듯 매서웠던 문경의 한겨울에 물을 데워 물병에 담아 가슴에 품어주고 주물러 마사지해 주던 동료가 없었다면 구조를 기다리는 그 3시간 동안 얼어 죽었을지도 모른다.

  비록 3시간을 산정에서 떨며 지냈지만 구조를 위해 달려와준 구급대원분들과 헬기수송을 해준 ㅇㅇ 지역 분들께 감사를 전한다.

 

  이렇게 나는 또 한 번의 생명을 받았다.

  감사하고 감사할 일이다.

  이 세상 모든 것들에게 남겨진 빚으로 인해.

 

  언젠간 내 인생의 완성을 위해 남겨 둔 ‘한 편의 시를 위한 길’ 그 여정을 위해.

 

 

 

 

 

 

 

▲이한명

1993년 동인시집 『통화 중』, 경향신문, 국방일보 등에 시를 발표하면서 작품활동 

<문학광장> 신인상 수상, 시 부문 등단

강원일보 DMZ문학상, 경북일보 객주문학대전, 영남일보 독도문예대전 등 공모전 수상 

보령해변시인학교 전국문학공모전 대상, 강원경제신문 코벤트문학상 대상, 문학광장 시제경진대회 장원 수상

2015 대한민국 보국훈장 수훈

현재 격월간 문예지 <문학광장> 편집위원으로 활동 중이며

시집으로 『 카멜레온의 시』 , 『그 집 앞』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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