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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때꽃 / 박기준

유세영 기자 | 기사입력 2024/02/12 [13:15]

라때꽃 / 박기준

유세영 기자 | 입력 : 2024/02/12 [13:15]

라때꽃 / 박기준

 

 

샛별의 고백에 달개비 부끄러워 고개 숙인 밤

강남 불패라는 수도꼭지와

헤비급 폭우에 춤추는 뉴스

우레가 소란을 떨자 창문도 덩달아 밤을 흔들고 있다

 

콧소리 흥얼거리는 부침개 붓을 들고

단풍을 잘 그리는 막걸리 화가가

아내의 볼에 발갛게 색을 칠한다

 

고단했던 아내,

하얗게 탈색된 ‘라때’*가 바닐라 커피 향을 풍긴다

 

거나하게 흥이 돋은 할머니의 막걸리 심부름

거품을 주둥이로 품어내고 그걸 날름 받아먹었던

뙤약볕에 갈증 난 길바닥

몸을 가눌 수 없는 길과 가벼워진 심부름이 취했던 어떤 날

 

손 편지를 들고 달동네의 다 닳은 손금을 헤매던 아버지

검은 봉지 안에서 취한 막걸리가 연신

아빠의 청춘, 브라보를 노래하며 꼭대기로 향한다

통닭으로 몰려드는 선잠 깬 병아리들을

타오름달이 창문으로 몰래 훔쳐보는 저녁

 

장맛비 속 막걸리가 행성이 된 아버지와

기억의 창문을 열고 들어오셨다

그 곁에

라때꽃 향기에 취해 본숭만숭 졸고 있는 아내

 

막걸리 한 사발에 웃으시던 아버지

나는 지금 막걸리 한 사발에 눈시울이 뜨겁다

 

 

 

*라때-예전에 내가, 왕년의 내가, 나 때는 말이야 등의 말을 희화화하는 신조어

 

 

 

 

 

▲박기준

-제1회 한국디지털문학상 수상-수필

-제27회 경기 노동문화예술제(시부문) 수상

-2023 국민일보 신춘문예 수상

-2023 직지콘텐츠 (시부문) 수상

-제 44회 근로자문학제(수필) 수상

-2024 오륙도신문 신춘문예(시 부문) 수상

-2024 시사불교매너리즘 신문 신춘문예(수필, 디카시)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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