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때꽃 / 박기준
샛별의 고백에 달개비 부끄러워 고개 숙인 밤 강남 불패라는 수도꼭지와 헤비급 폭우에 춤추는 뉴스 우레가 소란을 떨자 창문도 덩달아 밤을 흔들고 있다
콧소리 흥얼거리는 부침개 붓을 들고 단풍을 잘 그리는 막걸리 화가가 아내의 볼에 발갛게 색을 칠한다
고단했던 아내, 하얗게 탈색된 ‘라때’*가 바닐라 커피 향을 풍긴다
거나하게 흥이 돋은 할머니의 막걸리 심부름 거품을 주둥이로 품어내고 그걸 날름 받아먹었던 뙤약볕에 갈증 난 길바닥 몸을 가눌 수 없는 길과 가벼워진 심부름이 취했던 어떤 날
손 편지를 들고 달동네의 다 닳은 손금을 헤매던 아버지 검은 봉지 안에서 취한 막걸리가 연신 아빠의 청춘, 브라보를 노래하며 꼭대기로 향한다 통닭으로 몰려드는 선잠 깬 병아리들을 타오름달이 창문으로 몰래 훔쳐보는 저녁
장맛비 속 막걸리가 행성이 된 아버지와 기억의 창문을 열고 들어오셨다 그 곁에 라때꽃 향기에 취해 본숭만숭 졸고 있는 아내
막걸리 한 사발에 웃으시던 아버지 나는 지금 막걸리 한 사발에 눈시울이 뜨겁다
*라때-예전에 내가, 왕년의 내가, 나 때는 말이야 등의 말을 희화화하는 신조어
▲박기준 -제1회 한국디지털문학상 수상-수필 -제27회 경기 노동문화예술제(시부문) 수상 -2023 국민일보 신춘문예 수상 -2023 직지콘텐츠 (시부문) 수상 -제 44회 근로자문학제(수필) 수상 -2024 오륙도신문 신춘문예(시 부문) 수상 -2024 시사불교매너리즘 신문 신춘문예(수필, 디카시)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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