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 / 정이흔
한 치 아래도 보이지 않는 짙푸름 그 안에 대한 두려움의 발원은 무지함
두려움을 주는 경외감의 깊이는 도무지 알 수 없다 본능적으로 그리워함은 수십억 년을 흘러온 기억의 흔적일 뿐 인내심의 한계를 시험당하듯 그저 무언의 수행을 감내하고 있다
수많은 생명을 잉태한 채 억겁의 세월을 지켜오며 내게 준 것은 육신과 피 애초부터 아무런 보답은 바라지도 않았다 대 자연의 소중한 자궁
같은 곳에서 태어나 서로 싸우는 무지한 족속들은 내면의 자아를 상실한 채 날뛰는 한 떼의 미치광이다 자신이 한 짓조차 기억하지 못하는 무리는 당한 쪽이 기억하고 있다는 사실조차 모른다
겨우 찾은 고향은 기다림과 인내의 한계는 뒤로한 채 마침내 떠나기로 결심을 굳힌 듯
이대로 떠나보낼 수 없다 언제 잊힌 지 기억조차 없는 망각의 기억을 이제부터라도 잊지 말고 살아가야 한다
지금까지를 속죄하면서 지켜내야만 한다
겨우 찾은 고향인데
▲정이흔 제21회 시인투데이 시부문 작품상 수상 짧은 소설 모음 <초여름의 기억> 단편소설집 <섬> 에세이 <벚나무도 생각이 있겠지> 시집 <흩뿌린 먹물의 농담 닮은 무채의 강물이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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