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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 평론] 시의 원형 『옴파로스』​ / 송재옥

유세영 기자 | 기사입력 2021/06/10 [02:48]

[시집 평론] 시의 원형 『옴파로스』​ / 송재옥

유세영 기자 | 입력 : 2021/06/10 [02:48]

시의 원형 『옴파로스』​ / 송재옥


 

나는 시 읽기를 즐긴다. 짧은 글에 은유로 긴 울림을 주는 시인들을 동경하기도 한다. 밥 먹는 것처럼 시도 편독을 하는 편이라서 인터넷 공간에 떠도는 낭만적인 인기 시보다는 시인의 혼이 읊은 것 같은 즉 시마가 시인의 가슴을 빌려서 쏟아낸 듯한 글이 좋다. 내가 좋아하는 손귀례 시인의 두 번째 시집 “옴파로스”에 실린 72편의 시가 그렇다. 손귀례 시인은 마치 시 제조기처럼 시를 참 쉽게 쓴다. 바꿔 말해서 자판만 옆에 있으면 톡톡 두드려서 시를 만드는 것 같다. 시인이 이 말을 들으면 날벼락을 내릴 것이다. 하지만 시집을 읽으면 어리석은 생각이었다는 걸 바로 알게 된다. 끊임없는 사고와 확장으로 쓴 시들이 시인의 가슴에 얼마나 깊은 고뇌로 쌓여 있었겠는가 싶어서 잠시라도 그런 생각을 한 무지함을 탓한다.

시인은 하찮은 사물 하나도 벌로 보지 않는다. 바닷가 몽돌에서, 저 모든 인류의 처절한 삶인 시지프스 신화를 쓴다.

몽돌은

동그랗게

동그랗게

제 몸을 말고

파도 자락에

제 몸을 맡긴 채

밤이나 낮이나

달그락달그락 설거지를 한다

몽돌은

바다의 시지푸스다

'시지푸스’ 전문

시인은 시지푸스처럼 매 시각 시를 짊어지고 산을 오르는 것이다. 한 편을 부려놓고 내려오면 또 써야할 시어가 출렁거리니 쉴 틈이 없다. 사회 문제는 왜 그리 많고 부조리가 널려 있는 세상을 견디기는 몸서리치게 힘이 드는 것일까. 시인은 고민에 빠져서 시를 짊어지지 않으면 생의 산을 오를 수가 없다. 그렇다고 짐을 무거워 했다면 무게에 눌려서 지레 포기했을 세월을 살았다. 언어의 바다에는 무수한 고기들이 산다는 걸 아는 시인은 월척을 척척 잘도 낚아낸다. 그래서 그의 시는 무겁되 유머스럽고 깊되 가볍다. 그리스어로 ‘배꼽’이라는 뜻인 옴파로스를 책 제목으로 한 것은 큰 의미가 있는 것 같다. 배꼽은 삶의 시작이고 원형이다.

아기가 엄마 품에

동그랗게 안겨

고요히 젖을 빤다

동그란 입으로

동그란 젖꼭지를 빤다

완벽한 고요다

엄마는 아가와 동그란 눈을 맞추고

아가는 엄마와 동그란 눈을 맞추고

동그랗게 동그랗게

아가와 엄마가 동그라미가 되었다

우주의 원형을 보았다

사랑은 ㅇ이다

사랑은 동그랗다

사랑은 우주의 배꼽이다

'옴파로스' 전문

 

시인은 젖을 먹는 아기와 먹이는 엄마의 모습을 O으로 뭉쳐 놓는다. 누구나 시를 읽으면 끄덕끄덕하겠지만 이런 완벽한 고요를 세상에 내놓기 위해 몇 밤을 새웠을까. 이렇게 우주의 배꼽으로 시작한 아가의 생이 완벽한 고요 충만으로만 이어진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세상은 출렁이는 파도와 같아서 언제 무슨 일이 덮칠지 아무도 모른다. 어느날 소풍 가방을 메고 나선 수백의 목숨이 바다 밑으로 가라앉고 아가가 떨어져나간 원형은 반형이 아니라 쪼그라지다 못해 짜낼 눈물마저 없는 마른 풀이 되기도 한다. 시인이 이런 역사의 큰 층계를 놓칠 리가 없다. ‘울어리 울어리랏다/울돌목이 울어리랏다/삼별초 넋 잡고 울어리랏다’ ‘진도 별곡’의 마지막 연이다. 청산별곡의 운율에 흥겹게 남도를 노래하다가 느닷없이 독자를 울리고 만다. 세월호란 말은 단 한 마디도 하지 않지만 누군들 이 시를 읽으면서 수마의 넋이 된 수백의 영혼을 떠올리지 않으리. 다른 시, ‘부재의 기억’에서는 ‘세월호는/ 판도라의 상자가 되어 가고/있습니다’라며 직설을 하기도 한다.

'그리스인 조르바’ ‘목마와 쿠키’ ‘장미의 이름’ 등 제목만 봐도 시인의 독서량과 수준이 짐작이 된다. 논술학원을 운영하며 아이들의 사고력을 키우는 일을 하고 있는 시인답게 어떤 시에서도 시인의 독특한 시선이 보인다. 시인의 명함을 한 장 받아들고 질투심이 생기는 이유가 낯설게 보고 표현하는 그만의 개성은 따라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태양의 명함은 불이고

지구의 명함은 물이다

노인의 명함은 표정이며

부모의 명함은 자식이다

산의 명함은 나무이고

나의 명함은 이것이다

'명함’ 전문

부록으로 지도하는 아이들의 시를 몇 편 실었는데 ‘귀례는 시인이 되겠구나’라고 했던 초등학교 때 선생님 말씀을 떠올리며 아이들에게 용기와 격려를 주고 있다. 시인으로서 또한 꿈을 심어주는 단단한 대지 같은 선생님으로서 오늘도 창작열에 타고 있을 손귀례 시인. 시인은 역사와 문학 그리고 자연을 빌려서 삶의 무게를 재거나 덜어내며 오늘도 시의 메타포에 빠져 있을 것이다.

문학공간시선 373 옴파로스 손귀례 2019년 한강출판사 발행

♣ 송재옥 작가

순수문학 2000년 수필 등단

중랑문인협회회원

한국식물연구회회원

제1회 평사리문학상

방송대 통문제 장원

중랑문학 대상 등 수상

♣ 서른을 먹고도 한참을 지나서야 소녀시절의 꿈을 안고 글을 쓰기 시작했다. 일기처럼 마구잡이로 쓰다가 내가 향하는 곳은 자연이라는 걸 금세 알아채게 되었다. 일에 매여서 긴 시간은 못 내지만 틈나는 대로 산에 다니면서 자연을 관찰하는 게 취미이자 특기이다. 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 벌레 한 마리를 들여다보다가 기억하고 싶거나 느끼는 걸 수필과 디카시로 쓰곤 한다. 짬짬이 붓을 들어 좋아하는 시로 화선지를 적시기도 한다. 먹물이 피워주는 글 향을 매우 좋아한다. 어느덧 생의 초가을의 뜰을 거닐고 있다. 변한 건 늘어난 주름이 정겹게 느껴지는 것일 뿐, 들꽃 찾아서 산에 다니고 글을 쓰고 글씨를 쓰는 여전한 청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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