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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사랑

유세영 기자 | 기사입력 2023/12/10 [19:08]

한사랑

유세영 기자 | 입력 : 2023/12/10 [19:08]

한사랑

 

장시백

 

 

  이른 아침, 평온히 잠든 아내와 아이들의 모습을 눈동자에 스케치하고 집을 나섰다. 너무도 오랜만에 고생 끝에 마련한 가게를 아침마다 들뜬 마음으로 들어섰다. 먼저 주전자에 물을 끓여 컵라면과 커피 한 잔으로 아침 식사를 해결하고 나서 가게 안팎을 청소하고 컴퓨터를 닦았다. 그러고 나서 전날에 주문받은 컴퓨터를 조립하고 운영체제와 프로그램을 설치했다. 그럴 때면 꼭 건물주 할아버지가 커피 한 잔 달라고 하며 들어와서 눌러앉아 수다를 떨었고, 신문지국 아저씨는 상품권이 든 봉투와 스포츠 신문과 일간지를 들이대며 통사정을 하다가 결국에는 젊은 사람이 너무 야박하다며 돌아서 나간다. 나는 바쁜척하며 건물주 할아버지의 이야기를 끊고 컴퓨터를 여기저기로 들어 옮기는 척하면 건물주 할아버지는 느린 걸음으로 다음 행선지인 옆 가게 부동산 사무실로 자리를 옮긴다. 그다음으로는 참새방앗간 들리듯 찾아오는 친구가 있다. 어릴 적부터 함께 자란 동무 봉식이는 내가 사업에 실패하고 생활이 어려워지면서 모든 친구와 연락을 끊고 지내는 동안에도 유일하게 관계를 유지해 온 친구였다. 자동차 보험 영업을 하는 봉식이는 늘 유쾌하고 호탕한 성격에 의리도 있어서 영업도 잘하고 대인관계도 좋다. 친구들 간에도 평판이 좋고 누구와도 격의 없이 잘 지내는 친구다. 그런 봉식이가 커피잔을 들고 무언가 망설이는 눈치다.

  “뭘 망설여 인마, 돈 꿔달라고?” 

  농담에도 반응이 없다. 나는 조금 시간을 주었다가 다시 물었다.

  “왜 그러는데?”

  “철구야, 오늘 저녁에 나랑 어디 좀 가자.”

  “어딜?”

  봉식이는 또 한참을 머뭇거렸다. 나는 한동안 지켜보다가 소리쳐 물었다.

  “어딜 가자고?”

  “상가.”

  “상가? 누가 죽었는데?”

  “은진이 남편이 어제 사고로 죽었대.”

  봉식이의 입에서 은진이란 이름이 나오는 순간 가슴 안에서 바윗덩어리가 내려앉는 듯 숨이 막혀왔다. 꿈속에서도 떠올리기 싫었던 이름이면서도 좀처럼 꿈에서 떠나지 않았던 존재가 은진이다. 나는 냉장고에서 캔맥주를 꺼내 단숨에 들이켜고 나서 창밖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은행나무에서 몇 장 남지 않은 이파리들이 이른 추위에 떨고 있었다.

 

  나는 군대 동기인 영훈의 여동생 영순과 결혼했다. 군 제대 후 영훈이가 여동생을 나에게 소개했고, 영순이와 나는 2년 가까이 교제한 후에 결혼했고 아이들을 낳아 행복하게 살았다. 그러나 내가 직장을 그만두고 시작했던 사업이 절친한 친구의 꼬임에 넘어가 사기를 당해 처참하게 망한 뒤로 형제, 친척, 친구들과 연락을 끊고 가족의 생계만을 위해 허덕이며 살았다. 유일하게 관계를 유지해 온 친구 봉식이와 나, 그리고 처남인 영훈이는 같은 날 입대하고 한 부대에서 근무했던 군대 동기다. 그래서 그들은 은진이와 나의 관계를 가장 잘 아는 친구들이다. 

 

  헬기 레펠 훈련 중에 다리를 다쳤다. 헬기 레펠 훈련은 침투를 위해 헬기에서 뛰어내리는 훈련이다. 큰 부상은 아니었지만 걷는 데 지장이 있었기 때문에 훈련에서 열외가 되었고 몇몇 환자들과 막사에 남아 있었다.

  “강철구 일병!”

  “네, 일병 강철구!”

  “밖에 나가서 막걸리 한 병 사 와라.”

  “네, 알겠습니다.”

  말년 병장 박순철은 매일 낮잠 자다 일어나면 아무나 붙잡고 막걸리 심부름을 시켰다. 막사를 둘러싼 울타리 한구석에는 막걸리 조달에 쓰이는 개구멍이 있었고, 그 개구멍을 낮은 포복으로 기어나가면 막걸리와 사제담배를 파는 구멍가게가 있었는데, 그 앞에는 공중전화가 있어서 졸병들은 은근히 고참들의 심부름을 기대하기도 했다. 막사 밖으로 나가자마자 나는 집에 전화를 걸었다. 대입 시험을 마치고 집에서 쉬고 있는 여동생이 전화를 받았다.

  “엄마, 아버지는?”  

  “동네 어떤 할아버지 환갑이라고 잔칫집에 가셨어, 근데 어떻게 전화를 다 했어?”

  “밖에 잠깐 심부름 나왔어. 시간이 없으니 빨리 말할게. 언제 면회 좀 와 주라.”

  “응, 그래 알았어. 근데 얼마 전에 은진이 언니 만났어. 오빠한테 면회 가게 되면 꼭 알려달라고 하던데.”

  “그래? 그러면 같이 와.”

  “알았어. 은진이 언니한테 얘기해서 같이 갈게.”

  누구에게 들킬까 봐 조심스러워서 초조하게 주변을 살피며 통화하던 나는 서둘러 전화를 끊고 막걸리와 쥐포를 사서 서둘러 막사로 돌아왔다.

 

  은진이는 중학교 때 내가 다니던 학교로 전학 온 친구다. 중학교 3학년 여름, 방학이었는데도 고등학교 입시 준비로 학교에 나가 열심히 공부하던 때였다. 교실에는 봉식이를 비롯하여 공부하러 온 몇몇 친구들이 있었고, 모두 조용히 자기 자리에서 열심히 공부하고 있었는데, 교실 창밖으로 보이는 수돗가에서 여학생들이 물을 뿌려대고 떠들며 시끄럽게 장난을 치고 있었다. 나는 벌떡 일어나 창가로 가서 소리쳤다.

  “조용히 좀 해! 학교에 장난치러 왔니?”

  “그렇다고 뭘 그렇게 소리를 지르니!”

  “공부하는 걸 방해했으면 사과를 먼저 해야지, 넌 애가 못돼먹었구나!”

  “못돼먹었다고? 뭐 저런 거지 같은 게 다 있냐!”

  여학생 중에 키가 크고 얼굴이 뽀얀 한 아이가 따박따박 소리치며 대꾸하더니 휑 돌아서 갔고 다른 여학생들도 그 뒤를 따라서 사라졌다. 나는 어이가 없어서 혀를 차며 여학생들이 사라진 자리에서 시선을 떼지 못한 채 교실에 있는 친구들에게 물었다.

  “저거 뭐냐?”

  “은진이, 너 모르냐?”

  “은진이?”

  “몰랐구나, 전학 온 지 좀 됐는데!”

  봉식이가 잘 아는 듯이 은진이에 대해서 말해 주었다.

  “봉식이, 너 수상한데…. 어떻게 그렇게 잘 아냐?”

  “그게….”

  “이놈 봐라, 아직 아랫도리에 털도 안 난 놈이!”

  “지금은 났거든….”

  봉식이는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해지더니 말까지 더듬기 시작했다. 추궁을 해보니 혼자서 좋아하며 밤잠을 설칠만큼 속만 끓이고 있었다고 했다. 은진의 대꾸에 화가 치밀어 올랐던 나는 다시 만나게 되면 혼을 내줄 참이었는데, 봉식이가 좋아하고 있다는 말에 그냥 잊어버리기로 했고, 짝사랑으로 애만 끓이고 있는 봉식이를 위해 도와줄 방법을 궁리하다가 대신 편지를 써주었다.

  “자, 읽어보고 무조건 보내.”

  “답장이 올까? 안 오면 어쩌지?”

  “그건 나중에 생각하고 일단 보내.”

  “싫다고 하면 어쩌지? 소문이라도 나면 쪽팔릴 텐데.”

  “그런 각오도 없이 어떻게 여자 친구를 만드냐, 인마!”

  봉식이는 은진이에게 내가 써준 편지를 보냈다. 답장은 오지 않았다. 일주일이 지나도, 한 달이 지나도 오지 않았다. 봉식이는 기가 죽었다. 다시 보내라고 해도 싫다고 했다.

  “봉식아, 내가 한번 보내볼까?”

  나는 봉식이에게 은진이의 콧대가 얼마나 센지 알아보고 싶다고 했지만, 솔직한 마음은 은진이란 여자 그 자체가 궁금했었던 것 같다. 봉식이는 풀이 죽어서 맘대로 하라고 했다.

  “너, 나중에 딴소리하기 없기다! 친구의 여자 친구를 가로챘느니, 뭐 그런 소리….”

  “맘대로 하시라고요. 난 이제부터 공부나 하렵니다.”

  나는 바로 은진이에게 편지를 써서 보냈다. 지난번에 수돗가에서 더 할 말이 있었는데 도망쳐서 못했다고 다가오는 토요일 오후에 학교 근처에 있는 어린이 놀이터로 오라고 했다. 그날이 되어 놀이터로 갔더니 은진이가 두 손을 허리에 올리고 전투태세로 서 있었다. 다가오는 나를 보자마자 은진이가 쏘아붙였다.

  “더 할 말이 뭐니? 넌 내가 도망친 거로 보이니?”

  “아니, 난 그때 일은 다 잊었고, 그렇게 해야 여기 나올 거 같아서, 미안.”

  “기가 막혀, 넌 네 멋대로인 애구나! 난 내가 여기 더 있을 이유가 없을 거 같은데.”

  날카로운 소리를 내뱉으며 은진이는 빠른 걸음으로 돌아서 갔고, 나는 또 어이가 없는 듯 은진이의 뒷모습이 사라질 때까지 바라만 보고 있었다.

  은진이를 다시 만났던 건 고등학교에 들어가서였다. 시골에 있는 중학교를 졸업한 나는 도시에 있는 고등학교에 들어갔고 혼자서 자취생활을 했다. 부모님과 떨어져 산다는 게 처음이라서 무척이나 불편하고 쓸쓸했기 때문에 시외버스를 타고 두 시간 걸리는 시골집으로 부모님을 뵈러 갔다. 그러던 어느 주말에 시외버스를 탔는데 버스 중간쯤에 앉아있는 은진이를 발견했다. 그 옆자리는 비어있었고 나는 그 자리에 앉아서 조심스럽게 말을 걸었다. 은진이는 밝은 얼굴로 나의 말을 받아주었다. 속으로 다행이라고 생각하자 마음이 좀 놓여서 편하게 말을 이어갈 수가 있었다. 어느 학교에 들어갔는지, 어디에 사는지, 시골집엔 자주 가는지 등을 물었다. 같은 도시에 있는 학교지만 내가 다니는 학교에서 꽤 멀리 떨어진 학교에 다닌다고 했고 그 학교 근처에서 혼자 자취한다고 했고 은진이도 나처럼 혼자 사는 것이 적응이 되지 않아서 주말마다 시골집에 간다고 했다. 나는 전화번호를 물었고, 그 당시에는 전화기가 흔치 않았던 시절이라서 우리는 서로 자취하는 집의 주인집 전화번호를 교환했다. 시골집까지 두 시간 걸리던 시외버스는 너무도 빠르게 달리는 듯했다. 우리는 다시 만나기로 약속했다.

  그 후로는 은진이도 나도 시골집에 자주 가지 않았다. 주말마다 만나서 공원에도 가고 극장에도 가고 분식점에서 맛있는 떡볶이와 쫄면도 함께 먹었다. 우리가 만나는 주말까지 기다리기는 일주일이 너무 길게 느껴졌다. 그래서 나는 평일에도 자주 학교 수업이 끝나자마자 야간 자율학습을 빼먹고 은진이가 있는 곳으로 갔다. 은진이는 여자상업고등학교에 다녔기 때문에 언제나 일찍부터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렇게 세월 가는 줄 모르고 지내다가 2학년이 되었고 중간고사 후에 담임 선생님과 상담했는데, 1학년 초에는 상위권이었던 성적이 계속 떨어지기만 한다고 걱정하며 그러다가는 대학에 가기가 어려워질 거라고 했다. 그제야 나는 현실을 깨닫고 고민하기 시작했다. 공부를 너무 오래 하지 않았더니 학교 수업을 도저히 따라갈 수가 없었다. 그 후로 나는 은진이를 만나지 않았고 공부에 집중했다. 기말고사를 보았는데 성적이 오르지 않았다. 고민이 더 크게 밀려들었다. 그때의 내신성적으로는 내가 가고자 했던 대학을 가기란 불가능했다. 큰 결심을 해야만 했다. 학교를 그만두었다. 검정고시로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학력고사 점수로 내신등급이 정해진다고 하여 그 당시에는 내신성적이 좋지 않았던 학생들이 유행처럼 써먹던 방법이었다.

  나는 대학교에 들어갔고, 은진이가 가끔 생각나긴 했지만, 그럴 때마다 더 열심히 공부했다. 그것이 은진이와 나에게 더 좋은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2학년이 되자 아버지가 농사일에 실패하여 큰 어려움에 부닥쳤다. 실수로 못자리의 모를 모두 죽여서 논농사를 지을 수 없게 되었다. 실의에 빠진 아버지는 한동안 술에 의지해서 살았고 내게는 학비를 보내주지 않았다. 군대에 가기로 했다. 휴학하고 입대할 때까지 시골에서 농사일을 도왔다. 그러다가 입대를 일주일 남겨두었는데 은진이가 찾아왔다. 상고를 졸업하고 직장에 다닌다고 했고, 여동생에게 내가 군대 간다는 말을 들었다고 했다. 은진이는 주저앉아서 한동안 펑펑 울어댔다. 나는 미안하다는 말밖에는 다른 할 말이 없었다. 다만 아무런 약속도 하지 말자고 했다. 인연이 있다면 다시 만나질 거라며….

   

  주말마다 면회를 눈이 빠지게 기다렸지만, 여동생과 은진이는 면회 오지 않았다. 다리 부상은 회복되어 정상적인 훈련과 일과가 가능해졌다. 몰래 밖에 나가서 전화할 기회는 좀처럼 주어지지 않았다. 너무 궁금했다. 온다고 했던 여동생과 은진이가 왜 오지 않았는지. 필시 무슨 좋지 않은 일이 생겼을 거라고 생각되어 견디기가 힘들었다. 그래도 하루하루 견디다 보니 국방부의 시계도 가긴 간다는 걸 알았다. 드디어 첫 휴가일이 되었다. 부대를 벗어나자마자 집에 전화를 걸었다. 어머니가 받았다. 여동생 소식이 궁금해서 물었다. 서울에 있는 대학에 들어갔다고 했다. 여동생이 다니는 학교를 물어 여동생을 찾아가서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물었다. 그때 나와 통화를 하고 나서 은진이와 주말에 면회 가기로 약속을 했는데, 은진이가 버스 정류장에 나타나지 않아서 기다리다가 버스를 놓쳐서 오지 못했다고 했다. 그 후로는 연락이 닿지 않았다고 했다. 나는 부모님이 계신 시골집에 가기 전에 은진이 부모가 사는 집을 먼저 찾아가서 은진이가 지금 어디에 있는지, 그때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물었다. 은진이 어머니는 그때 은진이가 갑자기 몸이 아파서 약속 장소에 가지 못했고, 지금은 멀리 부산에서 직장을 다닌다고 했다. 그런데 왠지 느낌이 좋지 않았고 뭔가를 숨기는 것 같았다. 직장 이름과 사는 곳을 알려 달라고 했는데 알려줄 수 없다고 했기 때문이다. 동네 친구들과 선후배들에게 모두 찾아가서 물어도 모두 모른다고 했다. 부모님과 하룻밤을 자고 나서 무작정 부산으로 갔다. 아무것도 모르면서 그래도 혹시 마주치지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부산 시내를 며칠 동안 쏘다녔다. 뒷모습이 조금이라도 비슷한 여자를 보면 무조건 앞으로 달려가서 확인했다. 그렇게 찾아다니다 보니 은진이가 점점 더 보고 싶어졌다. 찾아다니다가 힘들면 주저앉아서 펑펑 울기도 했다. 군대에 복귀하기 전에 은진이의 부모를 찾아가서 다시 물으며 엎드려 빌기도 했으나 나를 쫓아내고 다시는 문도 열어주지 않았다. 부대에 들어가기를 망설이다가 복귀 시간이 늦어서 중대장에게 그동안 있었던 일을 이야기했는데 그것은 나의 큰 실수였다. 병사에게 여자 친구에 관련된 문제가 있다면 그것은 관심사병 제1호가 되기 때문이다. 정신적으로 너무 힘들어졌다. 은진이에 대한 생각도 문제이지만, 나의 말과 행동은 간부들의 관심사가 되었고 늘 감시당하는 느낌이었다. 그런 부자연스러운 나의 군 생활은 병장 계급장을 달기까지 계속되었다. 그래도 큰 위안이 되었던 건 동기생인 봉식이와 영훈이었다. 영훈이는 동기이고 동갑인데도 늘 형처럼 자상하게 나를 챙겼다. 그들이 아니었다면 나는 정상적으로 군대를 제대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영훈이와 나는 제대 후에 서울 신림동의 고시촌에서 지냈다. 함께 공부하며 힘들 때는 늘 서로를 격려해 주는 사이였다. 가끔 영훈이의 여동생이 음식을 싸 들고 찾아왔다. 함께 관악산에 올라가서 배드민턴도 치고 도시락도 먹으며 영훈이의 여동생 영순이와도 친해졌다. 영순이는 예쁘고 명랑했으며, 특히 큰 입을 가리고 깔깔대며 웃는 모습이 나의 시선을 끌었다. 영훈이도 나의 그 시선을 눈치챈 듯했다.

  시험이 일주일쯤 남았을 때 여동생에게서 전화가 왔다. 은진이가 결혼한다는 소식이었다. 예식장과 시간도 알려주었다. 그 후로는 음식을 먹으면 목구멍으로 넘어가다가 걸려서 더는 넘어가지도 않고 가슴 속을 콕콕 찌르는 듯이 아파서 밥을 못 먹고 술만 마셨다. 책은 한 글자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은진이 결혼식장에 가야 할지를 고민했다. 그날은 공교롭게도 일 년을 넘게 준비했던 시험 보는 날이기도 했다. 하루는 관악산에서 영훈이에게 코피가 나도록 얻어맞기도 했다. 그래도 나는 정신을 차리지 못했으며, 결국 시험장에도 예식장에도 가지 않았다.

 

  이십 오 년이 흘렀다. 그동안 가슴 속에서 파르르 떨고 있던 이파리 하나가 아직도 심장의 한구석을 찌르고 있는데, 그녀는 왜 아직도 나의 주변에 머무르며 무슨 신호를 보내려고 하는 것일까?

  “봉식아, 넌 그걸 어떻게 알았는데?”

  “얼마 전 우리 동창들 대화방에 은진이가 들어왔는데, 그걸 너한테 말해야 할지 말아야 하는지를 몰라서 망설이고 있었어. 그런데 은진이가 어제 부고장을 대화방에 올렸더라. 그것도 네게 알리는 게 맞는 일인지는 모르겠는데, 판단은 네가 하는 게 맞는 것 같기도 해서….”

  “그래, 잘했다. 가 보자.”

  봉식이는 저녁에 다시 오겠다고 하며 나갔는데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나는 가게 전등을 끄고 문을 안에서 걸어 잠갔다. 전화기도 끄고 간이침대에 누워서 하루를 보냈다. 창밖이 어두워지고 봉식이가 다시 와서 문을 두드렸다.

  “어이구, 내가 너 이럴 줄은 알았어도 생각보다 심하네! 미안하다, 괜히 말했나 보다.”

  “내가 잘했다고 했잖아. 가자, 장례식장이 어디라고 했지?”

  “대전. 내 차 타고 가자.”

  봉식이 차를 타고 한 시간 정도 걸리는 대전의 어느 장례식장으로 들어서자 밖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는 동창 친구들이 보였다. 인사를 나누고 나서 나도 끊었던 담배를 하나 얻어 피웠다. 머리가 핑 돌았다. 그래도 맑은 정신으로 들어가는 것보다는 느낌이 나았다. 장례식장 안으로 들어가니 은진이의 모습이 보였다. 거의 30년이 지나서 보는 얼굴인데도 금방 알아볼 수가 있었다. 무표정한 얼굴로 은진이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초췌한 모습에 다소 지친 기색도 보였다. 눈빛만 주고받았을 뿐 은진이와 나는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둘 다 일부러 다른 친구들에게 더 반가워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나는 친구들 사이에 끼어 앉아서 소주만 한 잔씩 들이켜며 가끔 왔다 갔다 하는 은진이의 얼굴을 훔쳐보듯이 쳐다보곤 했다. 한쪽에서 수군대는 친구들의 표정을 살피기도 했는데, 아마도 한동안 은둔 생활을 했던 나에 관한 이야기를 하는 것이거나 아니면 은진이와 나 사이에 있었던 이야기를 하고 있었을 거라고 생각되었으나, 남들이 수군대는 말 따위에는 아무런 신경도 쓰고 싶지 않았다. 오로지 은진이에게 어떻게 다가가서 어떠한 말을 어떻게 할지, 무엇을 물을 것인지를 생각했다. 그러나 생각만으로 시간을 다 허비했고 친구들과 장례식장을 나와서 봉식이 차에 타려고 하는데 나의 옷 주머니 속으로 은진이의 손이 재빨리 들어왔다 나갔다는 것을 알아챘다. 친구들은 모두 흩어졌고 은진이의 시선은 내가 탄 봉식이의 차가 멀어지기까지 바라보고 있었던 것 같았다. 차 안에서 주머니에 든 은진이의 편지를 구겨지도록 꼭 움켜쥐고 꺼내서 읽지 않았다. 

  “봉식아, 내 가게로 가자.”

  “왜! 집에 안 들어가려고?”

  “술 많이 마셨잖아. 술 냄새 풍기고 들어가는 것보다 가게에서 자고 아침에 가는 게 더 나아. 내일 휴일인데 뭐.”

  봉식이에게는 술에 취한 척했으나, 나의 멀쩡한 정신은 주머니 속에서 움켜쥔 은진이의 편지에 대한 궁금증으로 꽉 들어차 있었다. 봉식이의 차가 사라지는 것을 확인하고 가게로 들어가서 의자에 앉아 편지를 꺼내 읽기 시작했다. 은진이의 편지를 든 나의 두 손이 창밖에서 떨리던 은행잎처럼 파르르 떨고 있었다.

 

  철구야!

  정말 많이 불러보고 싶었던 이름 철구야!

  고등학교 때, 네가 날 떠났을 때는 원망도 많이 했고 힘들었지만, 난 언제나 너를 다시 만날 거라는 확신으로 살았어. 그리고 너 군대 갈 때 우린 아무런 약속을 하지 않았어도 난 나와 약속을 했어. 널 기다리고 또 찾겠노라고. 그래서 난 널 늘 지켜보고 있었어. 네가 나 때문에 힘들어하는 걸 알았을 때는 나도 많이 울었어. 네 사업이 망해서 힘들어할 때도 그랬어. 몸은 떨어져 있어도 난 늘 너와 함께 있었어. 그래서 지금까지 견딜 수도 있었고.

  철구야!

  동생이랑 너 면회 가기로 했던 전날에 회사에서 회식이 있었는데, 나를 계속 따라다니던 직원이 회식 후에 나를 납치하고 나쁜 짓을 했어. 나는 그 남자의 아기를 낳았고 그 후에 결혼도 했어.

  너를 다시 만날 수는 없겠지만, 그 이유는 너도 알아야 한다고 생각했어. 그 남자의 아기는 잘 자라서 얼마 전에 취직도 했고, 나는 그런 날이 오기만을 기다리며 견뎌왔어. 그래서 그날 그 남자가 죽었고, 나는 그 남자가 죽어야 너의 얼굴을 단 한 번만이라도 볼 수 있겠다고 생각했어. 옳은 생각이 아니었을지는 몰라도 어차피 세상을 잘 살아내는 완벽한 방법은 없는 것 같아. 

  철구야!

  이젠 됐다. 나는 됐어. 괜찮아.

  너도 편해지길….

  안녕! 

 

- 한평생 한 사람만 사랑했던 은진이가 철구에게

 

[끝]

                           

        

 

  

▶ 장시백

시인, 소설가, 소설미학작가협회장, 한국사진문학협회 대표, 계간 문예지 『우리글』, 『한국사진문학』 발행인, 인터넷 신문 <시인투데이>, <시민투데이> 발행인, 도서출판 한국IT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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