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섭지코지의 바람 / 민은숙

유세영 기자 | 기사입력 2023/02/16 [17:56]

섭지코지의 바람 / 민은숙

유세영 기자 | 입력 : 2023/02/16 [17:56]

섭지코지의 바람 / 민은숙

 

 


때로는 과감한 결단이 필요한 순간이 있다. 그걸 기특하게도 막내가 해낸다. 엄마의 산수연을 맞아 온 가족이 제주도를 꿈꾼다. 명분 있는 여행이니만큼 흔쾌히 따라나설 것이라 엄마를 지레 짐작한다. 작년과 다른 체력을 절감한 엄마는 야속한 멀미까지 한다. 부풀었던 꿈은 주연의 캐스팅 거절로 푸시식 바람이 빠지고 만다.

지혜롭고 영리한 동생은 지칠 줄 모르는 추진력이란 모터를 장착했다. 허를 찌르는 예약과 선입금으로 시동을 걸었다. 취소 위약금이란 이마를 동여맨 금전 손실은 예리하다. 엄마를 꿰뚫은 날카로운 통찰로 꿈이 현실로 대류 하고야 만다.

산수인 엄마도 여전히 여자이다. 햇볕에 비친 내 옆얼굴을 보고 놀라신다. 깨끗하던 피부에 드리워진 그늘을 보신다. , 주근깨 또 갓 올라온 기미가 도드라진 것이리라. 함께 피부과에 가서 점을 빼자 하신다. 농인지 진담인지 애매하다. 나도 그냥 사는데 팔순인 엄마께 자연스럽게 살자 했다. 엄마는 귀엽게 발끈하신다. 마음은 봄에서 멈춤인데 노화만 가을에서 더 질주한다.

여행은 어른도 아이처럼 들뜨게 한다. 뭍과는 사뭇 다른 섭지코지 바다와 현무암, 꼬리를 늘어뜨린 말, 스카프를 잡아끄는 봄을 품은 바람은 잔잔한 마음에 파문을 일으킨다. 하늘과 바다란 경계를 짓고 싶지 않은 수평선이 손짓한다. 이에 어우러지는 패러 글라이딩의 모터 소리는 자진모리장단처럼 발걸음을 춤추게 한다. 관절이 있어 조심스러운 엄마도 이들의 합동 유혹에 넘어가 한 폭의 풍경 속으로 자연스럽게 스민다. 젊어진 입가에 부드러운 곡선이 유려하다.

남은 뒤란이 제각각인 삼대는 깊이는 다른 한길을 걷는다. 계단을 한 줄로 올라간 정상에서 내려다본 절경이 여인이 풀어놓은 머리채 같다. 어중간한 기로의 지천명, 앞길이 구만리 열 살, 기약할 수 없는 앞이 아련한 산수는 같은 모양 바위를 본다. 새끼 돌고래가 꼬리로 파도를 두드리는 것만 같아 눈이 초승달처럼 휜다.

얕은 눈망울과 깊은 심연은 다른 시간 추 따라 저속과 고속으로 걷고 있다. 쉬었다 일어설 때면 삐걱거리는 무릎이 지난 세월을 읊어준다. 지난해 차에서 내릴 때 덜걱거린 다리로 우린 철렁한 가슴을 부여잡았던 적이 있다. 한 해가 다른 운동 기능은 내년을 기약할 수 없다.


쇠잔한 가동력과 따로 노는 영혼의 간극을 메울 수는 없을까. 오랜 담금질에 무쇠가 되듯 사람도 그러하면 산수는 다이아몬드가 될 터인데.
무정하게 현무암을 때리고 누르는 파도가 질곡의 지난 시간만 같다. 바라보는 가냘픈 산수의 뒤태가 애잔하다.

 

 

 

 

 

♣ 민은숙

서원대학교 대학원 석사 졸업

시인, 수필가, 문예평론, 칼럼니스트. 브런치 작가

한국사진문학협회 SNS백일장 당선

대한민국문화예술대상

명인명시 공모전 아티스트 대상

대한민국문화교육대상

코스미안상 수상

전국여성문학대전 당선

문화도시 홍성 디카시 수상

명예의 전당 수필 대상

작가문학상 시 금상

공로상 수상

코스미안 뉴스 민은숙 칼럼 연재

코스미안 민은숙의 시의 향기 연재

공저 향촌의 사계 외 다수

시집 삶에서 시를 굽다 외 평론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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