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띠풀 / 박일례

유세영 기자 | 기사입력 2023/01/25 [19:52]

띠풀 / 박일례

유세영 기자 | 입력 : 2023/01/25 [19:52]

띠풀 / 박일례

 

마흔 살을 넘기면서 갈림길에 섰다.

앞으로 나갈 것인가? 멈출 것인가? 멈추었다.

세 아이를 돌볼 수 없는 것이 한계였다.

여덟 살에 학교 문을 처음 들어선 뒤, 교문을 등지기까지 참 오랜 세월 울타리 안에서 보냈다.

대구에서 서울로 와 다녔던 학교에서 맺은 절친이 있었다. 친구는 나와 다른 길을 택했다. 만나지 않는 사이 친구는 세월과 더불어 교육계의 별이 되었다. 동기동창 중에서도 가장 반짝이는 별이었다.

친구가 정년퇴직하고 다시 만났다. 딴 세상 사람처럼 낯설었다. 나는 친구 말투에서 힘을 느낄 수 있었다. 세 자녀도 무난히 잘 자랐단다. 내가 그때 생각한 한계는 기우였음을 알게 해 준 산 증인이 되어 나타났다.

나는 친구와 카페에 들어갔다. 둘은 저수지가 바라보이는 창 쪽에 앉았다. 잔잔한 물 위로 오리가 떠다녔다. 오리가 지나가는 자리 따라 물이 V자를 그리다 사라졌다. 오리도 나를 기 죽였다.

얼마 전의 기억이 퍼뜩 떠올랐다. 성인이 된 아이들이 모여 어릴 적 이야기를 했다. 엄마가 이리저리 앞장서서 끌고 다니며 꼼짝 못 하게 늘 붙어 있어 싫었단다. 내가 택한 최선이 한 방에 평가절하된 순간이었다.

“가까이 있어야 분명하게 보이는 줄 알았지.”

나는 허둥대며 변명하느라 말도 생뚱맞았다.

앞으로 남은 시간. 나를 위해 온전히 살아보자. 그런데 손녀를 어떻게 할지 걱정이 앞선다. 내가 반란을 일으키면 아이는 핸드폰으로 조정당하며 이곳저 곳을 떠돌아야 한다. 온전한 내 삶도 생각하기 나름이다.

얘들아 띠풀 뿌리처럼 함께 가자.

그때 내 친구가 불쑥 말했다.

나는 깜짝 놀라 머리를 흔들어 생각을 뿌리쳤다.

“난 이제 글을 안 볼 거야. 하도 많이 봐서.”

“난 이제부터 봐야 하는데……. 또 엇갈리네. 후후.”

겨울을 보낸 저수지에서 봄이 올라오듯이 내 봄도 해마다 맞이할 것이다.

 

 

 

 

♣ 박일례

한국사진문학협회 정회원

제3회 계간『한국사진문학』신인문학상

제3회 시인투데이 작품상(산문)

한가위 가족사랑 백일장 최우수상(2022) 

제21회, 35회 SNS 백일장 당선

『어쩌다 디카시인』공동시집 출간(2022)

『백살공주 꽃대할배』그림책 출간(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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