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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주차 / 강 현

유세영 기자 | 기사입력 2022/09/30 [18:05]

이중주차 / 강 현

유세영 기자 | 입력 : 2022/09/30 [18:05]

이중주차 / 강현

 

이중으로 주차된 차가 퇴근을 막고 있다

힘껏 밀어보지만 덩치를 감당하지 못한다.

수신을 거부한 누군가를 그녀라 부른다.

다시 젖 먹던 힘까지 밀어 붙이지만

격화소양(隔靴搔癢) 꿈적도 않는다.

 

잠이 든 걸까, 식사 중 일까, 샤워 중 일까

얼굴도 모르는 그녀가 갑자기 내 시간을 점령한다.

느슨하게 풀어졌던 하루가 팽팽하게 올을 감는다.

 

지금은 몇 시쯤 일까,

 

난생처음 오페라 객석에 앉아 신분 상승이라도 된 듯 들떠있던 순간일까,

날기도 전에 심장을 찔린 솟대를 바라보던 슬픔의 찰라 일까,

아니면 느티나무 뒤에서

비눗방울 놀이를 간절하게 바라보던 어느 계집아이의 한때일까,

것도 아니면 마주 오던 검은 개를 피해 도망가다 순식간에 물려버린 아픈 기억일까

 

마침내 까칠한 그녀와 통화가 되고

물기가 뚝뚝 떨어지는 긴 머리의 그녀가 다가온다.

향긋한 냄새가 난다 비눗방울이 톡 터지는 소리가 난다

샤워라고 말하기엔 기다린 시간이 길다

화를 내야 할까 잠시 망설이는 동안

그녀의 냉소적인 시선이 내 몸을 스캔하더니

꿈쩍도 안던 차를 쭈욱 민다.

그 순간 나를 비웃듯 가볍게 밀리는 그녀의 차

마치 주인 명령에 복종하는 검은 개 같았다.

 

 

♣ 강 현

제1회 시인투데이 문학상 공모전 대상

제16회 시인투데이 문학상 공모전 작품상

제1회 제2회 한국사진 문학상 우수상

제3회 제15회 SNS 백일장 당선

지역사랑 공모전 장려상(2022)

홍성 디카시 공모전 동상(2022)

시집 『시간도둑과 달팽이』 (문학의 전당, 2015)

공동 디카시집 『사심가득』 (한국IT,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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