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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치 있는 삶이란 / 민은숙

유세영 기자 | 기사입력 2022/08/24 [21:32]

가치 있는 삶이란 / 민은숙

유세영 기자 | 입력 : 2022/08/24 [21:32]

가치 있는 삶이란

민은숙

 

누군가 내게 20년이 넘는 전직에서 가장 좋았던 기억이 남은 근무처에 대하여 질문을 한다고 하면 주저하지 않고 말할 수 있다. 세종 지점이라고 말이다. 세종 지점으로 인사발령이 직원 공지 사항에 올라왔을 때 솔직히 유쾌하진 않았다. 3년 정도 근무해야만 타지점으로 이동하는 것은 직원이라면 누구나 하게 되는 딴지 걸 수 없는 예정된 규칙이었다.

 

그때까지 운전면허를 1주일 만에 취득하는 행운을 얻었으나 공간 감각이 없어 운전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상태였다. 액셀과 핸들링은 원하는 방향대로 따라와 주질 못하는 빈약한 수준이다. 운 좋게도 내게 운전을 가르친 강사가 마침 운전면허 시험장에 있었다.

그는 T자 코스 주차를 잘하지 못했던 나를 슬쩍슬쩍 힌트를 주어 합격할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 그렇게 얻은 전 국민 국가 자격증이라는 운전면허증을 충청지방청장이 수여했다. 원래는 줄 것이 아닌, 다시 배우고 오라고 했어야만 맞았다.

 

몇 년을 장롱 면허로 보유하고 있어 자가용도 구매하지 않은 상태로 뚜벅이였다.

우리 집 위치에서는 나름 세종이 시내권이라 말할 수 있다. 문제는 아침잠이 많은 저녁형 인간인 내가 부지런을 일찍 떨어야 한다는 거다. 야근은 쉽지만 조기 출근은 저혈압인 나로서는 반갑지 않은 순례길과 같은 것이었다. 택시로 출. 퇴근하기엔 꽤 거리가 있다. 세종으로 쭉 가는 버스는 우리 집에서 10분을 걸어가야 한다.

 

그렇게 시작된 세종 생활의 문이 열렸다.

세종 출신도 있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나의 지역민이 더 많은 수를 차지하고 있다. 위안이 된다. 지점장님은 서울분으로 가장 꿈꾸는 상사의 이상형이라고 말하고 싶다.

그 직장 20년 동안 손을 아무리 꼽아봐도 그분처럼 아래 직원을 진심으로 대한 사람은 없었다. 지금까지도 선명하게 잔상이 뇌리에 남아 있는 것을 볼 때 틀린 말은 아니다.

부드러운 카리스마와 그와는 다른 강한 서번트 리더십을 가지고 있다. 요즘 유행인 말로 아랫사람을 추앙해서 스스로 일하게 만드는 놀라운 능력자다. 배우고 싶어도 그분의 인격을 따라갈 수가 없을 것이다. 전직을 퇴직했을 때, 일부러 전화도 주시고, 서운하다며 작은 선물까지 보내준 따스한 마음을 지킨 신사 중 신사다.

 

처음엔 유쾌하진 않았으나, 제일 나이 많았던 나를 추앙해 줌으로 인하여 직원들이 나를 자발적으로 따라온다. 민 과장이 하자는 대로 하면 된다고 말하며 연장자인 날 배려하였다.

남자는 자기의 가치를 알아주는 사람에게 충성한다고 한다. 제갈공명이 자신을 알아주고 삼고초려를 한 유비에게 충성을 다했듯이. 비록 남자는 아니지만, 그분이 원하는 걸 잡아내 그것을 긍정적인 에너지로 추진할 수가 있었다. 분위기가 화기애애하고 능동적인 지점은 불필요한 회의를 하지 않아도 분기, 반기, 연말 타 지점과의 경쟁에서 늘 탑이거나 우위를 선점한다.

 

그동안 겪은 시설장들은 본인이 먼저 퇴근한다. 물론 그분도 그랬다.

하지만, 그 후가 다르다. 남은 직원들은 늦게까지 야근하고 각종 실적을 만들기 위해 각자 맡은 업무에 고군분투한다. 그러다 달도 지쳐 졸음을 참고 있을 무렵에나 퇴근이란 걸 한다.

어떤 시설장은 퇴근하고 나면, 심지어 본인 책상이 없어질 것만 같다는 망상으로 주말도 없이 직원들이 출근하게 한다. 평일도 늘 자정을 넘기기 일쑤였다. 내가 눈물을 머금고 그만두게 된 계기가 바로 그것 때문이었다. 생각해 보라. 어느 베이비시터가 하루도 아니고 노상 그렇게 애를 봐준단 말인가.

 

자주 바뀌는 저녁 타임 베이비시터로 아이가 이상해진 것을 알게 된다. 돈 보다 한때인 내 아이를 눈물을 머금고 선택할 수밖에 없다. 예를 들면 말이다. 퇴근하려 하면 일거리를 던져준다. 주말에도 출근시켜 전 직원과 함께 있어야 안심된다는 어찌 보면 일 중독자이자 욕심 있는 장이다. 새벽까지 야근한 그곳에서 근무하는 모든 순간이 그랬다.

주말까지 아내가 출근한다고 1365일을 그러하니 남편은 바람이라고 난 건가 싶은 뚜껑을 열고 보면 기함할 상상을 하기도 한다. 애를 대동하고 견본 주택을 찾아온 적도 있다. 모두 그만둔 지금, 그분은 덕소에 나는 청주에서 잘 지내겠거니 한다.

 

인생에서 좋은 기억으로 남은 이는 참 행복하고 가치 있는 삶은 산 거 같다. 보시라는 것이 사실 별거 있나, 사람이 사람에게 잘 대해 주는 것 아닐까 하는 내 나름의 해석이다.

누군가에게 나의 이름을 떠올리면 미소가 지어지는 그런 사람이길 바란다.

누군가가 나를 떠올리면 아프질 않길 바란다.

그랬으면 참 좋겠다 할 것이다.

 

 

 

♣ 민은숙

서원대학교 산업대학원 석사 졸업

열린동해문학연합회 신인문학상 수상

문학고을 신인문학상 수상

열린동해문학연합회 작가 문학상 수상

전국여성문학대전 동화부문 당선

열린동해문학연합회 공로상 수상

 

문학고을 (임원) 공동리더 겸 자문위원

열린동해문학연합회 사무국장

시산맥 회원

시처럼 꽃처럼 인생을 그리다 회원

 

문학고을 2022 여름호

세계문학예술 통권 6호 시를 그리는 작가세상 1

열린동해문학연합회 20226월호 ,7월호, 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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