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뱃심 / 박일례

김성미 기자 | 기사입력 2022/06/29 [08:40]

뱃심 / 박일례

김성미 기자 | 입력 : 2022/06/29 [08:40]

뱃심 / 박일례

 

 

영주 부석사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이 법당 지붕을 받치고 서 있다. 배흘림기둥은 가운데가 불룩해서 붙인 이름이다. 수시로 구박받는 내 배를 닮았다.

2월 어느 날, 친구와 제주도 걷기에 나섰다.

도착한 다음 날, 일어나니 온 세상이 하얗게 변했다. 그 위로 아침 햇살이 내려앉아 눈이 부셨다. 우린 금방 녹겠다고 생각하고, 숙소 주인이 소개한 걷기 좋은 길을 서둘러 출발했다. 길 입구에 들어서자 눈발이 오락가락. 이십 분쯤 걸으면 절이 나온다고 안내받았는데, 두 시간이 지나도록 찾지 못했다. 노루 네 마리가 느닷없이 나타나 앞을 가로질러 달려갔다. 나는 화들짝 놀라 주저앉을 뻔했다. 휴대폰에는 긴급구조 안내 문자만 떠 있었다. 길 따라 가도 가도 눈 쌓인 풍경만 이어졌다.

다섯 시간이 지나 간신히 주차장이라고 쓰여 있는 팻말을 발견했다. 둘은 마주 보고 처음 웃었다. 휴대폰에 배경 화면도 나타나 환호성을 질렀다. 팻말 주변에는 사람 발자국이 찍혀 있어, 서로 애타게 찾다가 만난 사람처럼 반가웠다. 우린 흔적을 따라갔다. 30분쯤 걸으니, 갑자기 길도 발자국도 감쪽같이 사라졌다. 온통 눈을 이고 있는 나무숲뿐이었다. 휴대폰은 또 먹통. 안도감도 잠시, 갈 길이 보이지 않아 막막했던 내 삶의 한 때처럼 위기감이 엄습했다. 나는 혹시나 해서 주변을 살펴봐도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둘은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처럼 주차장을 향해 터덜터덜 되걸었다.

앞으로 내 삶에서 예측할 수 없는 길을 또 얼마나 만나게 될까?’

잠시 생각에 잠겨 있는데, 앞서가던 친구가 소리를 질렀다.

! 저기 봐! 눈 밑에 도로가 있어!”

나는 어처구니가 없었다. 산도깨비에게 쌍으로 홀린 기분이었다. 우리는 산행을 시작하는 입구에 찍힌 발자국을 따라간 것이다. 나는 즉시 숙소 주인에게 전화 했다. 목소리가 떨렸다.

오후 네 시. 산속은 빨리 어두워졌다. 숙소 주인 차를 만나, 타고 가면서 살펴보았다. 우리가 나온 출구가 들어간 입구와 무척 가까웠다. 결국 우리는 숲을 한 바퀴 돌고 나온 셈이다.

식당으로 들어가는데 다리가 후들후들, 머리가 어질어질했다. 화장실에 갔다. 꽉 낀 바지허리가 헐렁했다. ! 튀어나온 배가 사라져 버렸다. 손에 잡히지 않았다. 내 배가 여섯 시간 눈길을 버티는데 한 몫을 했다.

무량수전.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건축물이 육백 년 이상을 버티고 있는 비밀을 알았다. 바로 배흘림기둥 저 뱃심이었다.

♣ 박일례 시인

한국사진문학협회 정회원

제3회 계간「한국사진문학」신인문학상

2022, 신춘 디카시 전국대회 입선

2022, 신춘 온라인 백일장 우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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