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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의 말 외 1편 / 김동근

유세영 기자 | 기사입력 2022/05/21 [00:51]

밥의 말 외 1편 / 김동근

유세영 기자 | 입력 : 2022/05/21 [00:51]

밥의 말

 

 

밥은 참 맛이 있다. 밥은 모든 음식의 대유(代喩)로 쓰이는 말이다. 혀로 밥맛을 먼저 맛보며 그것을 목구멍에 넘긴다. 혀는 말을 하는 데도 비서처럼 주인처럼 입 안에서 행세를 한다. 밥보다 말이 더 중요할 것 같은데 그 반대일 것 같은 생각도 든다. 어느 것이 더 중요한지 혀에게 물어보면 될 것인데 혀는 먹을 때는 밥, 말할 때는 말이라고 답할 것 같다. 지금 이런 글로 쓰는 것도 말이니 말이 더 앞이고 더 중요할 것 같다. 밥에 대한 것을 생각해보는 것, 직접 혀가 작용하지 않아도 말이 함께하는 것이다. 밥의 말이고 말의 밥이다. ‘말의 밥보다 밥의 말이 더 가깝게 느껴져 제목으로 붙였다. 밥은 언제나 맛이 있다. 밥과 함께하는 말도 맛있다.

어머니가 해준 밥, 맛이 있었다. 맛이 없다고 여긴 적이 한 번도 없었다. 다른 밥은 먹어볼 기회가 거의 없었기 때문에 맛이 있었는지 모른다. 성대성이 아닌 절대성의 맛이었다. 그 맛, 평생을 간다.

아내가 해준 밥, 맛이 있었다. 맛이 없다고 여긴 적이 한 번도 없다. 상대성의 경험도 좀 붙은 절대성이랄 수 있는데 내 입에 진짜 늘 맛이 있었다.

우리, 세종대왕보다 더 잘 먹는다. 당신이 해준 밥, 너무 맛있다.”

아내와 마주한 식탁에서 몇 번 한 말이다.

식탁에 앉을 때만 아부한다.”

아내가 받아준 말이지만 아부 아니고 참말이다. 식탁에서만 한 말이 아니다.

여자고등학교 교단에 섰을 때도 그 비슷한 말을 한 적이 있다.

내 아내가 해준 밥, 지금까지 한 번도 맛이 없었던 적이 없다.”

지금까지란 결혼하고 30년 정도 같이 산 세월의 끝인 현재완료의 시점이다. 이 글을 쓰는 지금은 40여 년이다.

에이, 거짓말.”

학생이 반말 비슷하게 반응한 말이다. 가까운 훗날, 어느 남자와 한 식탁에 앉아 한마디 듣고 한마디 반응하고 싶은 말로도 보였다. 그 남편에게 하는 말투였다. 소리로 낸 그 말에 몇 학생들의 소리 없는 동의가 보태어졌다.

거짓말 아니다.”

다시 강조한 말은 나에게 다짐해보는 말이기도 했다. 거짓말이 아니다. 내가 나에게 속으로 다시 말했다. 학교 급식소의 밥도 물론 맛이 있었다. 아내의 밥 솜씨는 그것보다 늘 한수 위였다. 밥만 잘하는 것이 아니다. 예쁘고 착하고 노래도 잘하고 기도도 잘하고 아들 둘도 잘 낳아 키우고 일등이다. 그런 말도 꿈틀거렸지만 참았다. 잘 참았다. 참은 걸 아내에게 직접 농담 반 진담 반으로 한 적도 있다. 진담 쪽으로 기울어져 몇 번 더 말했다.

아내의 밥, 음식이 맛이 있는 이유는 그녀가 TV 음식프로를 자주 보는 이유도 있다. 거기 음식프로가 자주 나온다. 나에게는 재미가 없지만 아내는 그것을 즐겨 본다. 나에게는 스포츠나 바둑 프로인데 아내와 같이 있을 땐 무조건 양보를 해야 한다. TV 프로 때문에 아내가 얄밉고 밥도 가끔 맛이 없을 법도 한데 그렇지 않아 탈이다.

맛이 있는 이유를 더 찾아야 했다. 아내가 해주는 밥을 포기하면 굶어죽는다. 바로 일상의 생명줄이기 때문이다. 그런 의식이 깊이 뿌리가 되어 박혀 있을 수도 있는데 긴 것 같기도 아닌 것 같기도 하다. 좀 다른 이유를 더 찾아야 한다.

아내의 사랑과 희생과 헌신이 섞여 있기 때문이다. 두 아들 키우면서 자기의 취미생활이나 하고 싶은 일들은 포기해야 했던 아내였다. 식구가 늘면서 밥 준비하는 것, 장난이 아니었다. 하루하루, 3끼의 이어짐. 그것은 무서운 전쟁터일 수 있었다. 무서운 전쟁터에서 아내는 온 식구가 죽지 않도록 밥을 내놓았고 가정이란 성을 지킬 수 있었다. 맛이 있는 이유는 그 밥이 바로 아내였기 때문이다. 아내의 모든 것이 거기 들어있기 때문이다. 이런저런 어려웠던 세월과 수고가 녹아있기 때문이다. 말로 다 적을 수 없는 그 이상의 모든 것이다. 밥의 말, 상대성의 경험도 좀 붙은 절대성이란 말을 썼는데 이런저런 깊고 소중한 참맛이 깃들어 있다.

 

 

 

 

 

 

 

 

 

상징의 행복한 고독

 

 

깊은 은유나 대표성을 띤 비유어를 상징이라고 한다. 태극기는 대한민국을, 흰색은 순결을, 검은색은 어둠이나 죽음을 상징한다.

쉽게 그 본의(本義)를 알 수 있는 것도 있고 어려운 것도 있다. ‘한웅이 곰과 결혼하여 단군을 낳았다.’ 우리가 수없이 들은 말, 곰은 상징이다. 고구려 족 여자인데 그것을 모르는 사람들은 그냥 곰인가 하고 생각한다. 본의가 깊이 숨어있어 찾아내기 어려운 경우도 많다. 흰색이 순결을 상징한다고 했는데 흰색이 순결에게 제 몸을 빌려주는 모양도 된다. 그러나 흰색은 흰색이다.

태극기 부대의 집회가 이어지고 있는 걸 본다. 손에 태극기를 쥐었다. 대한민국을 쥔 것이다. 쉬운 일이 아니다. 대한민국은 크고 길고 깊고 무겁고 아름답다. 그 대한민국을 대한민국 사람의 손으로 쥐고 있다. 행복할 수도 있고 고독할 수도 있다. 태극기는 행복한 상징일 수도 있고 고독한 상징일 수도 있다. 집회의 의미, 태극기가 말한다. 상징이 말한다. 그 말하는 것을 외면하는 것, 비겁일 수 있고 위험해질 수도 있다. 잘 표현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잘 읽는 것도 중요하다. 상징은 이런저런 연유에서 고독해질 수가 있다.

흰색은 순결을 상징한다고 했고 흰색은 흰색이라고도 했다. 순결에게 제 몸을 몽땅 빌려주기도 하지만 흰색은 흰색일 뿐이다. 제 몸을 빌려주고도 하얗게 제 자릴 지키는 게 흰색이다. 흰색은 흰 행복과 고독을 경험하면서 산다.

상징은 경음화현상이나 호전현상과는 차원이 속 깊은 세계라고 할 수 있다. ‘으로 바뀌어도 상관이 없다. ㄷ이 ㄹ로 흔들려도 상관이 없다. 속 깊은 의미의 세계에만 집착한다. 경음화나 호전현상은 속이 아닌 겉이다. 속도 중요하고 겉도 중요하다. 겉과 속 둘 다 일상의 언어현실일 수 있는데 일상 먹는 밥처럼 소중하다. 소중한 겉을 앞세워 시를 지어보기도 했다.

속 깊은 의미의 세계를 좀 생각하면서 다시 태극기로 가보자. 태극기를 깃대에 달거나 손에 쥐는 것, 대한민국 품에서 나라를 깊이 사랑하는 일이다. 작은 일로 보여도 작은 일이 아니다. 쉬운 일로 보여도 쉬운 일만은 아니다. 깊이 숨은 일이 머리를 들고 나타나 , 이거.’하고 고개를 끄덕일 날이 오길 바란다. 혹 달지 못했거나 손에 쥐지 못해도 대한민국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흰색이 흰색이듯이 대한민국은 대한민국이다. 태극기가 여기저기서 많이 펄럭여 더 좋은 대한민국이 되었으면 좋겠다. 저 북한 땅에도 펄럭이었으면 좋겠다. 내일의 땅일 수도 있는데 어제의 땅에서 태극기가 펄럭일 수도 있는 거 얼른 생각이 난 하나를 덧붙인다. 그땐 태극기가 없었는데? 에이 그건 태극기가 아닌데........ 맞다. 그러면 그냥 상징이라고도 하자. 상징의 행복한 고독이라고 해보자.

 

거붑하(거북아) 거붑하

마리 내여라(머리 내어라)

 

우리가 잘 아는 구지가의 앞부분이다. 상징의 노래다. 거북의 머리는 가락국일 수도 김수로일 수도 있다. 그 본의, “왕이여 태어나라. 가락국이여 머리를 들라.” 기도문일 수 있다. 구간(九干) 등의 손에 태극기는 물론 없었다. 상징의 깃발을 들고 있었다. 가락국 국기를 입으로 손으로 펄럭이면서 하늘을 향했다. 눈에 보이지 않는 국기, 담대히 상징의 본의를 엿본 그 나라 그 성씨 40대 후손의 말하기다. 3끼 잘 챙겨먹고 태극기 부대에 한 번도 참여한 적이 없어서 슬쩍 옛날의 숲, 봉우리를 기웃거린 사람의 말이다. 구지봉을 기웃거리면서 선두주자처럼 말한다.

우리 대한민국의 일이 머리를 들고 나타나게 하옵소서. ‘, 이거.’하고 고개를 끄덕일 날이 어서 오게 하옵소서.”

상징의 행복한 고독을 맛보며 후원을 하는 맘으로 말하는 기도문이다.

 

 

 

 

 

 

김동곤

1948.11.5. 경남 사천(삼천포) 출생

1988. 동서문학 신인상(소설 철이 아버지’)

2019. 시인정신 신인상(무논이 익어갔다4)

2021. 밀양아리랑공모전 포토에세이 우수상(‘밀양아리랑길 시공간 걷기’)

소설집 흔들리는 갈대를 보았느냐’(대산재단 창작지원금 수혜 작품집) ‘고무신을 신은 남자장편소설 산문집 아버지 이야기

이메일 : kdg48@hanmail.net

Daum블로그 : 김동곤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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