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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니 / 조용환

유세영 기자 | 기사입력 2022/01/22 [05:25]

사랑니 / 조용환

유세영 기자 | 입력 : 2022/01/22 [05:25]

사랑니 / 조용환

 

 

신체 중 유일하게 인간적인 정서와 합쳐진 이름.

볼 수도 만질 수도 있는 단 하나의 뼈.

, 키와 함께 자라는 내 안의 또 다른 생명.

 

껍질을 깨고 나오듯

생살을 뚫고 나오려는 너의 질긴 몸짓에

나는 고통의 단말마를 쏟아내면서도

한편으로는 올바른 생명이 아니라는 이유로,  

어떤 관심도 받지 못한 너라는

존재의 무가치성 또한 가슴 아파한다.      

그로 인해 너를 잉태한 나를 원망하게 되고

통증이라는 본능적인 폭력을 맞이한다.

 

너를 진정시키기 위해 아픈 뺨을 다독인다.     

적자가 아니라는 태생적 한계로

처음부터 세상에 나오기를 거부한 너는

뒤틀린 심정을 고스란히 삶에 투영했다.

비스듬히 올라오거나, 90도로 누운 채 맹출이 되어

매복 하듯 너 자신을 감추려 했다.

매복사랑니라는 너의 숨겨진 이름을 떠오르게 된다.

그것은 나에게 언제 엄습할지 모르는 치통이라는

공포감을 맞보게 하려는

너의 잔인한 복수극이기도 하다.     

 

 

결국 강제 철거 집행에 동원된 용역들처럼

전문가를 불러내 나로부터 너를 분리한다.

철거 현장이 잔혹함과 인권유린의 현장이라면

너를 버리는 것은 오로지 나의 이기심 때문이다.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한.      

 

거울을 통해 너의 부재를 본다.

뿌리째 뽑힌 빈자리에 고인 붉은 피가

너의 격정적 희생을 짐작하게 한다.

그 자리가 새 살로 채워질 때 너를 잊게 될 것이다.    

 

너의 비뚜로 산 삶과는 달리 생성 신화는

대단히 낭만적이고 적이었다.

네가 태어날 때 마치 첫사랑을 앓듯이 아프다 하여

사랑니라 했고,

내가 사리를 분별할 수 있는

지혜가 생기는 시기에 나온다고 하여

지치(智齒)라는 이름으로 불리기도 한다.     

사랑의 고통과 분별할 수 있는 지혜.  

너의 육신적 무가치성이 내게 남긴 영혼의 무한한 가치.

너를 빼내기가 더 힘들고, 더 상처받은 이유이기도 하다.

 

꿈에서 너를 본다. 다른 모습으로 살아가는.

때로는 앞니가 되어 치열한 가운데서 내가 웃을 때마다

너는 아름답고 당당하게 드러났으며,

어금니가 되어 입 안쪽 바닥 깊숙이 뿌리박고 앉아 있을 때는

너를 악물고 버팀으로써 삶의 인내를 배우고 의지를 갖게 했다.   

 

잠이 깨면 너의 존재를 확인해 보지만 

깊은 웅덩이가 된 자리에는

영안실의 온도* 같은 사늘함이

따뜻하게 고여 있는 침과 함께 혀끝에 닿을 뿐이다.

 

소멸하지 않거나 죽지 않는 생명은 없다.

인간 또한 수명이 무한정하도록 진화하진 않았으므로

흙으로 돌아간다.  

비록 너의 일방적 탄생과

선택적 죽음이 비극적이라 하더라도,

시간의 문제일 뿐

육신을 벗은 생명의 끝 또한

너와 같은 모습으로 남겨지리니

먼저 받아들이고 최후를 맞이하라.

사랑니여!

 

 

*서용덕 시인의 시 제목

 

 

 

 

♣ 조용환

브런치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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