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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모님의 엄마 / 조용환

유세영 기자 | 기사입력 2021/12/13 [07:09]

장모님의 엄마 / 조용환

유세영 기자 | 입력 : 2021/12/13 [07:09]

장모님의 엄마 / 조용환

 

 

 

이름 석 자를 새긴 조약돌을 유골함이 묻힌 흙 위에 앉혔다. 땅은 아무 일 없는 듯 고요했다. 남은 사람들은 그렇게 남은 채 돌아왔다. 사라진다는 것은 얼마나 쉬운 일인가.

 

아내 외할머니 상을 치렀다.

구순을 넘기신 지 한참이 지나고 상수에 닿으실 즘이라 천수를 다하고 가신 게 맞았다. 가족들도 항시 준비를 해왔던 탓에 둥개지 않고 차분하게 받아들였다. 호상이라고 호들갑이지만 어제까지 곁에 계셨던 분을 잃는다는 게 어디 즐거워할 일이겠는가. 운명하시기 몇 시간 전 아내와 찾아뵈었을 때 물컹거리는 손마디에선 생의 인연들이 하나둘 빠져나가고 있었다. 들려주실 못다 한 말씀들은 이울고 있는 숨으로 대신하고 있었다.

 

외할머니는 집사람과 아이들에게 각별한 분이셨다. 몸이 약한 아내를 대신에 두 아이 산바라지는 늘 당신 몫이셨다. 빈약한 몸에서 나오는 손바람은 일실함이 없으셨다. 어디 우리 아이들뿐 이랴. 손주든 증손주든 당신 손으로 다듬지 않는 아이들이 없었다. 아무 말씀 없이 몇 주 몇 달씩 집을 비우실 때면 으레 어느 며느리의 산달이겠거니 하고 우리도 계신 곳만 알고 당신을 찾는 법이 없었다. 집안의 든든한 삼신할미셨다. 쩌렁쩌렁한 노인네 호통은 옆집 손자들을 깨우고도 남을 천둥소리 아니었던가. 요 몇 달 동안 머리 한구석 머물러 있던 온전한 단어들이 조각난 말들로 튀어나와 어쩔 수 없이 정신을 놓으신 것 외에는 일변 흐트러짐이 없으셨다. 모아둔 용돈을 매달 맏손자에게 주시며 장례비용을 준비해 두셨고, 수의까지 당신이 직접 마련하셨다는 얘기를 듣고서는 집안 어르신 한 분을 잃은 것이 아니라 잠시 빌려 쓴 삶을 어떻게 갚아야 하는지를 몸소 실천하신 큰 별이 진 것임을 깨달았다.

 

마뜩잖은 가슴앓이를 하신 분은 장모님이셨다. 할머니와는 달리 한없이 여리시고 늘 이성적 판단보다는 감성적 무게로 버거워하셨다. 지병으로 평소 약을 달고 사시면서 노모 걱정에 시름은 깊어갔다. 이제 몸 좀 돌보시라고 입버릇처럼 뇌는 딸 부탁에도 할머니는 대쪽 같은 고집으로 아랑곳하지 않으셨고, 사사건건 가래다 보니 시나브로 마음의 병을 더 키우셨다. 혹여 당신보다 더 오래 남아계시지 않을까 하는, 그 짐을 고스란히 남은 손주들에게 대물림되리라는 안심찮음에 사로자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 딸을 홑벌로 보는 할머니 강단은 더해만 갔으니 어이딸을 곁에서 바라볼 수밖에 없는 우리 자식들 마음도 편하지 않았다.

생의 순리를 거스르지는 않았지만, 막상 보내드린 팔순이 넘은 딸로서는 홀가분하기보다는 결국은 자식으로서 안아야 할 슬픔이 먼저였다. 엄마 영정을 바라보시는 딸 얼굴에는 여태껏 응어리져 내뱉지 못한 감정이 묵은장처럼 담겨 있었다. 애증이 교차하는 모든 감정을 한꺼번에 쏟아내고 계셨을 것이다. 생전에 엄마 치맛자락을 부여잡고 옹이 졌던 심사라도 풀지 못했음을 안타까워하셨을까. 벌어짐을 붙이지 못한 채 나눈 이별은 그을음이 덧입혀지고 쌓여서 결국 응어리가 된다. 이별을 뒤돌아보게 하는 이유이다.

시시포스의 바위 같은 짐을 내려놓으면서도 엄마라는 큰 기둥이 휑하니 빠져나간 빈자리는 허허롭고, 한동안 추억이라는 사슬로 장모님을 묶어둘 것이다. 추억은 깊숙하여 아련하고 고요하다. 존재의 부재에 대해 아쉬움이 아니라 머문 자리를 그리워하는지도 모른다.

 

상실감은 우리가 인생에서 배우는 가장 어려운 가르침 중 하나이다. 소중한 것은 말할 필요도 없고 인연이란 이름으로 잠시라도 스쳐 간 사람조차도 잃는다거나 헤어지므로 받는 고통도 쉽게 내려놓을 감정이 아니다. 하물며 가족과의 이별이야 오죽하겠는가. 때론 거스를 수 없음을 잊기 위해 딴 일에 몰두해 보기도 하지만 한여름 소나기처럼 기습해 안겨주는 슬픔과 공허를 피하지 못한다.‘볼 수 없다’‘잊지 못한다라는 덧없는 말들 때문에 상실감은 더 클 수밖에 없다.

 

태어난 시간을 내가 정한 것이 아니듯 가야 할 시간도 내가 정할 수는 없다. 다만 그 지점은 계속 다가오고 있다는 사실은 안다. 이제껏 살면서 한 가지 깨달은 것이 있다면 기억을 더듬어 반복해서 나아가고 있을 뿐 처음의 자리로 되돌아갈 수는 없다는 것이다. 삶의 궤적이 어떤 모양일지, 레일처럼 직선일지, 평행선일지, 휘어진 곡선일지, 종교적인 관점에서 순환하는 원일지 모르겠지만 지구가 스스로 돌면서 태양을 돌 듯, 우리도 각자의 궤도를 돌면서 따라가다 보면 끝에 이르지 않을까.

 

 

 

조용환

브런치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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