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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장면을 먹으며 / 윤서주

유세영 기자 | 기사입력 2021/12/12 [16:38]

자장면을 먹으며 / 윤서주

유세영 기자 | 입력 : 2021/12/12 [16:38]

  자장면을 먹으며 / 윤서주

 

 

흰 양이 내려와 설법을 들었다는 전설의 백양사

깎아지른 학바위 중턱 약사암에서

백양사 설화 벽화를 구경하고

아픈 사람이 마시면 병이 낫는다는 영천굴 감로수를 마신 후

가벼운 마음으로 돌아오는 길

기차를 기다리며

텔레비전에도 소개되었다는 자장면 집에서

수타 자장을 주문한다

우리보다 먼저 와 있는

고등학생으로 보이는 젊은 남자 손님 넷

잠시의 틈도 없이 수다를 떠는데

좆나와 씨발을 앞뒤로 번갈아 쓴다

씨발 사랑니가 네 개나 났어 좆나 원시인 같어 씨발

아 씨발 군대 가기 좆나 싫어

씨발 오래 살면 뭐하냐? 솔직히 늙으면 아침에 일어나 텔레비전 보는 거밖에 더 있냐? 씨발 그게 사는 거냐? 좆나 짜증나 씨발……

욕쟁이 아이들과의 동석

야단을 맞으며 혼나며 먹는 자장면 한 그릇

저 어린 양들이 제 발로 찾아가 듣고 싶은 설법이 있는 세상

성숙한 어른들의 세상을 못 만들어서

오래오래 함께 살고 싶은 어른이 못 되어서

고개를 숙이고 꾸역꾸역 자장면만 먹는다

입을 막으면 아이들의 질타가 안 들리기라도 한 것처럼

자장면이 감로수라도 되는 것처럼

 

 

♣ 윤서주 시인

- 2016년 계간 <시원>으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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